문화재(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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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성주사지(聖住寺址)
보령 성주사지(聖住寺址) 보령 성주사는 신라말기에 개산된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성주산파(聖住山派)의 중심사찰이었다. 〈삼국유사〉 권1 ‘태종춘추공조’에 의하면 백제 법왕이 창건한 절로 처음에는 오합사라고 불렀으나 신라 문성왕(839~859) 때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 무염(無染)이 가람을 크게 중창하면서 절 이름도 성주사(聖住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오합사가 성주사라는 이 사실은 1960년부터 출토된 기와 조각에서도 확인되었다. 성주산문은 9산선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컸고 많은 승려를 배출한 최대의 산문이었으며, 무염대사는 당시 최고의 선종 승려로 알려져 있다. 백제시대의 사찰이었던 성주사는 백제의 멸망 직전에 이 절에 큰 적마(赤馬)가 나타나 밤낮으로 여섯 번이나 절을 돌아다니면서 백..
2019.07.27 -
우리나라 최초의 사면불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우리나라 최초의 사면불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禮山花田里石造四面佛像) 문경 사불산 사면불 및 문경 지역의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땅거미가 내려앉는 늦은 시간이지만 욕심을 내어 우리나라 최초의 사방불이 있다는 예산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면불로 알려진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禮山花田里石造四面佛像)은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 있다. 도로변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진 야산이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 사면불은 백제 시대의 불상으로 현존하는 삼국시대 불상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오래된 큰 규모의 석불로 알려져 있다. 사면불의 높이는 본존불로 보이는 남면 좌상(坐像)이 120cm, 동면입상은 130cm, 북면입상은 168cm이며,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이라고 도 불리며 보물 제794호로 지정되..
2019.07.01 -
경주 남산 보리사 미륵곡석조여래좌상과 마애불
경주 남산 보리사 미륵곡석조여래좌상(慶州南山彌勒谷石造如來坐像)과 마애불 경주기행 이튿날 미륵곡석조여래좌상을 보러 보리사를 들렸지만, 사찰 들머리를 찾지 못해 보리사 부근을 뱅글뱅글 세 번이나 맴돌다가 결국 포기하고 그다음 날 아침 기림사로 향하는 길에 다시 시도하여 겨우 들머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냉냉한 고요함 속에 잠든 가람을 여명의 여린 빛이 온기로 감싸는데 석조여래좌상 앞에는 연세 지긋한 보살 한 분과 함께 보리사의 비구니 스님이 예불하고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 외지에서 오신 분 같지는 않고 아마도 동네분이 스님과 무언가 축원을 드리는 것 같이 보인다. 빠듯한 다음 행선지와 귀경길 시간에 쫓겨 마애불이 있는 곳으로 먼저 발길을 돌렸다. 마애불을 보고 내려왔지만, 예불은 아직 끝나지 않아 ..
2019.06.25 -
보물 제409호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보물 제409호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삼존좌상 당진 영탑사는 상왕산(210m) 동쪽 기슭에 있는 가람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이다. 주변에는 개심사, 문수사, 국보 제84호인 서산마애여래삼존불 등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영탑사 절 입구에는 연못이 있고 수백년이 된 고목이 늘어서서 일주문을 대신한다. 당진 영탑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현재의 대방(大房) 앞에 5층석탑을 세운 뒤 영탑사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 무학대사(無學大師)가 현재의 법당 자리에 있던 천연암석에 불상을 조각하고 절을 중건하였으며, 대방 앞 정원에 있던 5층 석탑을 법당 뒤의 바위 위로 이전하였다. 1760년(영조 36)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2019.06.15 -
보물 제101호 당진 안국사지 석탑
보물 제101호 당진 안국사지 석탑 (唐津安國寺址石塔) 당진 안국사지 석탑(唐津 安國寺址 石塔)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안국사지의 이 석탑은 남아 있는 석탑 부재로 보아 쌍탑식 가람으로 추정되는데, 오층석탑의 초층탑신에는 3면에만 불상이 조각돼 있고, 나머지 한 면에는 문비(門扉)만 조각돼 있어 일반 사방불의 통례를 깨고 있다. 그러나, 그 옆에 놓인 다른 석탑의 부재(탑신)에는 4면에 모두 사방불이 조각돼 있어서 두 탑이 서로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석탑은 몸돌이 1층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없어져서 지붕돌만 남아 4층만 남아 있다. 탑신부와 비교하면 기단부가 소홀한 편이다. 지상에 2매..
2019.06.13 -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
당진 안국사지 석조여래삼존입상(唐津安國寺址石造如來三尊立像) 보물 제100호로 지정된 당진 석조여래삼존입상과 보물 제101호일 석탑이 있는 안국사지의 안국사(安國寺)는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미상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해미현조에 보면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라는 기록이 나와 있다. 창건연대는 문헌에 나타나 있지 않아 분명치 않으나 백제 말엽 창건되어 고려 시대에 번창한 대사찰로 추측되지만,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석불, 석탑, 석축, 배바위돌 하수구 등이 현존하여 사찰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다만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불소상(金銅佛小像)과 석불입상(石佛立像) 등의 유물들을 통해서 추측하는 것은 출토된 유물들이 고려 시대의 작품인 것으로 보아 고려 때의 창건 사찰로 보인다. 이 절의 폐사연대 또한 ..
2019.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