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 13. 20:40ㆍ문화재
보물 제101호 당진 안국사지 석탑 (唐津安國寺址石塔)
당진 안국사지 석탑(唐津 安國寺址 石塔)은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안국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안국사지의 이 석탑은 남아 있는 석탑 부재로 보아 쌍탑식 가람으로 추정되는데,
오층석탑의 초층탑신에는 3면에만 불상이 조각돼 있고,
나머지 한 면에는 문비(門扉)만 조각돼 있어 일반 사방불의 통례를 깨고 있다. 그러나,
그 옆에 놓인 다른 석탑의 부재(탑신)에는 4면에 모두 사방불이 조각돼 있어서
두 탑이 서로 다른 양식을 보이고 있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석탑은 몸돌이 1층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없어져서 지붕돌만 남아 4층만 남아 있다.
탑신부와 비교하면 기단부가 소홀한 편이다.
지상에 2매의 장대석을 놓아 지대석으로 삼았으며,
상면에 낮은 괴임이 표출되었을 뿐 그 위의 중석(中石)은 1매 석을 얹었고
우주(隅柱)나 탱주(撑柱)도 없는 자연석에 가까운 석재이다.
소박한 느낌을 주며, 탑신에 불상을 조각한 점 등 가치가 높다.
받침돌은 단층이며, 자연석처럼 보이는 2장의 길고 큰 돌이 땅 위에 있는데
이 돌은 하대석(下臺石)으로 보이며, 윗면에는 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면석 역시 자연석처럼 보이는 1장의 돌로,
모서리 기둥이나 가운데 기둥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덮개돌은 2장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밑면에는 쇠시리(나무의 모서리나 표면을 도드라지거나 오목하게 깎아 모양을 내는 일. 또는 그런 것.)인
부연(副椽)이 있고 윗면에는 굄이 있지만, 그 표현은 매우 형식적이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쌓았는데,
현재 1층 몸돌과 1~4층의 지붕돌만 남아 있다.
1층 몸돌에는 면마다 모서리 기둥과 여러 조각이 새겨져 있다.
곧 3면에는 여래좌상(如來坐像)이 1구씩 배치되었지만,
나머지 1면에는 문비(門扉)가 조각되어, 사방불(四方佛)의 기본적인 모습은 갖추지 못하였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교해 넓은 편으로, 처마 전체가 곡선을 그리고 있다.
밑면 받침은 4단인데, 추녀 끝에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새겨져 있다.
이로 인해 추녀 끝의 반전(反轉)은 특히 심해 보인다. 상륜부(相輪部)는 모두 없어졌다.
이 석탑은 받침 부분의 구조가 매우 간략하지만,
특이하게도 1층 몸돌의 3면에 여래상이 조각되어 있다.
단층의 받침돌, 지붕돌 밑면은 거의 마모되어 있다.
다만 여래상의 조각 양식 등에서 고려 시대 석탑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규모로 보아, 원래는 몸돌과 지붕돌을 5층으로 올렸던 것으로 짐작된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소박하고, 탑신에 불상을 조각한 기법으로 미루어
고려 중기 석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방불 중 가장 완벽한 것으로는
국보 제312호로 지정된 경주 남산 칠불암이 꼽히고 있다. (본방 남산 칠불암 참조)
석탑의 부재로 보이는 석재들이 남아 있다.
석탑 옆의 이 부재는 사방불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다만 3면과 4면은 마모가 심하다.
사방불 1면
사방불 2면
사방불 3면(좌측면). 탑에 가려 촬영이 어려웠다.
사방불 4면(우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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