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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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피달과 일천제를 어찌할꼬?
경전을 보면 완피달(頑皮靼)과 일천제(一闡提)라는 말이 나온다.완피달(頑皮靼)의 靼은 마름질한 가죽을 말하며 “단”으로도 읽힌다. 이는 가죽이 두꺼워 송곳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만큼 딱딱한 가죽을 의미하는 말로서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귀에 들어가지 않음을 비유한 것이다. 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사람의 마음은 열면 온 우주를 담을 수 있지만 닫아 버리면 송곳 하나 꽂을 수 없다.”라고 한다. 이렇게 생각이 한쪽으로 꽉 막힌 사람을 일러 “완피달”이라고 한다.일천제(一闡提)는 일체 선근(善根)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천(一闡)은 신(信)을 의미하고, 제(提)는 불구(不具)를 의미한다.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다.경에 의하면 일천제(一闡提)는 인과(因果)를 불신(不信)하여 부끄러움이 없고, 미래세라는 것은..
2025.07.01 -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의 속성을 경계하자.
심리학에서 인간의 속성을 정의한 말 가운데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시체 애호증(愛好症)’이란 뜻인데 쉽게 말해서 살아 있는 것보다 죽은 것을 더 좋아한다는 의미다.그런데 문제는 이 네크로필리아적 속성은 모든 사람이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마음의 심층 의식 속에 숨어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활동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토담집이나 통나무집의 향수를 그리면서도 차갑고 매끄러운 대리석 건물을 더 좋아한다. 통나무는 생명을 지닌 식물이지만 대리석은 생명이 없는 차가운 돌덩어리다. 그런데도 우리가 통나무집보다 대리석을 장식한 콘크리트 건물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 이 속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살아있는 동물을 ..
2025.01.12 -
꿈속에서 빌린 돈
꿈속에서 갑돌이는 같은 마을의 갑순이에게 거금(巨金)을 빌렸다.약속한 기일이 되자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전전긍긍하다가 꿈을 깼다.그런데 꿈속의 일이지만 깨고 나서도 무언가 꺼림직한 생각이 든다.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갑순이를 생각하고 전생에 진 빚 갚는다는 심정으로 도와주라는 암시인가? 그런데 꿈속에 빌린 돈만큼 도와주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돈 욕심이 거기까지 이르자 별생각이 다 든다.혹시 내가 준 돈으로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다면 그 우쭐대는 꼴을 어찌 보지. 아니냐. 부질없는 생각이냐. 실없는 분별 망상(妄想)일 뿐이야,허망한 꿈속에서 일어난 일을 왜 내가 고민하지. 자, 그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망상(妄想)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하겠는가? 《원각경소》에..
2024.07.05 -
마음의 덮개 벗어버린 자유로운 삶 개색기(開塞己)로 살자
악마와 신은 상대적이다. 악마는 파괴자이며 사악(邪惡)하지만 신은 창조주이며 절대선을 행하는 자이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신도 있고 악마도 있다. 본래의 마음인 청정심이 신이라면 그 청정심을 파괴하고 덮고 있는 덮개는 악마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파괴하려면 먼저 창조된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과 악마는 어디에 있는가? 신을 믿는 사람에게 신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물어보면 「네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한다. 천지를 창조한 그 신이 내 마음속에 있다면 세상은 아름답고 선한 사람들만 존재할 것이다. 전지전능하며 선한 자가 어찌 사악하고 추한 것을 창조했겠는가. 어느 예술가가 자기가 창조한 작품이 추하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겠는가. 창조된 것은 곧 자신의 분신이다. 선한 자가 악한 것을 창조하지는 ..
2023.01.23 -
불성(佛性)으로 나아가는 길(제4과)
(도봉사의 돌) 불성(佛性)으로 나아가는 길(제4과) 상대성을 벗어나야 계(界)를 벗어나고 불성을 본다. 의식의 바탕에 심어진 한 생각은 그것이 선의 종자이든 악의 종자이든 아니면 무기의 종자이든 하나의 생각으로 자리하면 다른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없게 된다. 한 의식(계)에서 다른 ..
2009.07.22 -
불성(佛性)으로 나아가는 길(제3과)
(능가사의 돌) 불성(佛性)으로 나아가는 길(제3과) 계(界)를 이해하고, 마음의 속성을 바로 알자 중생은 오온이며, 오온은 경험의 덩어리다. 그 경험의 덩어리가 계(界)에 묻혀 굴러가는 것이 중생의 삶이다. “계(界)”의 산스크리트 원어는 <다투(dhātu)>라고 한다. 이는 층(層 layer), ..
2009.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