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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51) 분노와 몽중일여(夢中一如)
중생이라면 일상의 삶 속에서 크든 작든 화를 내는 일이 많다. 착한 사람도 그렇고 악한 사람도 그렇다.똑똑한 사람도 그렇고, 우매한 사람도 그렇다.그것이 어쩜 살아가는 중생의 마음일지도 모른다.성을 낸다는 것은 분노를 일으킨다는 의미다.그 분노는 복수에 대한 분노나 앙갚음 등 무겁고 심각한 것도 있지만 소소한 일상의 삶에서도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 논쟁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만, 잠시만 뒤집어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보지 않고 우기거나,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당연한 것을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더 나아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궤변(詭辯)으로 우기면 더욱 화가 난다.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다. 분노가 치달으면 극기야 우발적인 살인까지도 저지르게 된다. 분노(忿怒)를 교학에서는 진에(..
2026.10.05 -
삶의 길과 백두여신(白頭如新)
유행가의 가사처럼 인생을 흔히 나그네로 비유한다. 나그네는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사람이다. 한 곳에만 머문다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애착이라는 것이 생긴다.애착은 결국 병(病)이 된다. 병은 바로 번뇌요 고통이 된다.그래서 삶은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집착이 아니라 유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삶에 머물지 말고 그 순간순간의 삶을 집착함이 없이 그저 존재 자체를 즐기다가 가라는 의미로 새길 수 있다.금강경의 말을 빌리자면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 이요,선승(禪僧)의 말을 빌리자면 「어사무심(於事無心) 어심무사(於心無事)」이다.일을 대함에는 마음을 비우고 마음으로는 일에 대한 집착을 두지 말라는 의미다.삶을 그래서 옛 선현들은 유희(遊戲)라고 ..
2026.09.23 -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시심마(是甚麽) (2)
~이 뭣꼬(是什麽)에 대한 小考(6) ~ 혜능(慧能, 638년~713년) 선사는 당나라(618~907) 시대의 선승이며, 선종(禪宗)의 제6조(祖)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이다. 어느 날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찾아왔을 때 혜능 대사는 그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시십마물임마래(是什麽物恁麽來)?”무슨 물건이 (여기에) 왜 왔느냐는 의미다. 是什麽物(시십마물)은 “무슨 물건이냐?”라는 의미이고恁麽(임마)는 “왜?”라는 의문 조사이며, 來(래)는 왔다는 의미다.이는 곧 어떤 중생이 여기 왜 왔는가? 라는 질문으로여기서 언급된 말이 선가(禪家)에서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말로 “시십마(是什麽)”라는 화두로 회자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의미, ..
2026.09.15 -
길 없는 길
길이라고 정해진 길은 없다.여우가 다니면 여우 길이 되고 멧돼지가 다니면 멧돼지 길이 된다.사람이 다니면 인도가 되고, 우마차가 다니면 우마차 길이 된다.길은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중생이 가는 길이라면 모두 길이 된다.삶의 길도 그러하다, 정해진 삶의 길은 따로 없다. 길은 단지 가는 방향을 일러줄 뿐이지 목적지가 아니다.처음은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길이 가다 보면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고처음은 힘들어도 가다 보면 편안한 길이 될 수도 있다. 길은 많다. 어느 길을 가느냐는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그러나 길은 그대에게 행(幸) 불행(不幸)의 답을 주지 않는다.그 답은 단지 그대의 사념이 만들어 내는 바램일뿐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그대의 마음속에 경계(觀念)를 만들어 놓고 한쪽은 받아드리고 반대쪽은 버린다는..
2026.09.11 -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
삼계유심(三界唯心)이란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에 있다는 의미다.삼계(三界)는 중생이 머무는 세계를 3가지로 나눈 것으로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욕계(欲界)는 중생이 욕망으로 머무른 세계를 말한다. 색계(色界)는 중생이 머무는 물질세계를 의미하고, 무색계(無色界)는 관념, 이념의 세계를 의미한다. 삼계란 중생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3가지 세계로 분리한 것으로,욕망에 의지하고, 물질에 의지하고, 관념, 신념이라는 정신작용에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의 양태를 말하는 것이다.그러므로 三界唯心이란 곧 삼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단지 이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것이란 의미다.바꾸어 말하면, 중생의 삶이란 실체가 있는 그 어떤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이 만들어 낸 허황된 꿈에 지..
2026.09.07 -
(삶의 길 50) “죽음을 준비하는 자”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이는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절대적 진리다.부자이든, 가난뱅이든, 학자이든 무지렁이든, 귀하던 천하든 죽음은 필연이다.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나이를 먹는 것을 싫어합니다. 삶과 죽음은 필연적인 관계인데 삶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ouros BC341~270)가 이른 말을 했다.“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에 이르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과연 그럴까? 죽음에 대한 이런 낙천적인 대답이 해답이 될까?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도 이런 말을 했다. ..
202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