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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미생전 본래면목 시심마(是甚麽) (2)
~이 뭣꼬(是什麽)에 대한 小考(6) ~ 혜능(慧能, 638년~713년) 선사는 당나라(618~907) 시대의 선승이며, 선종(禪宗)의 제6조(祖)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이다. 어느 날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가 찾아왔을 때 혜능 대사는 그를 향해 이렇게 물었다.“시십마물임마래(是什麽物恁麽來)?”무슨 물건이 (여기에) 왜 왔느냐는 의미다. 是什麽物(시십마물)은 “무슨 물건이냐?”라는 의미이고恁麽(임마)는 “왜?”라는 의문 조사이며, 來(래)는 왔다는 의미다.이는 곧 어떤 중생이 여기 왜 왔는가? 라는 질문으로여기서 언급된 말이 선가(禪家)에서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말로 “시십마(是什麽)”라는 화두로 회자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의 의미, ..
2026.09.15 -
길 없는 길
길이라고 정해진 길은 없다.여우가 다니면 여우 길이 되고 멧돼지가 다니면 멧돼지 길이 된다.사람이 다니면 인도가 되고, 우마차가 다니면 우마차 길이 된다.길은 정해진 것이 없으므로 중생이 가는 길이라면 모두 길이 된다.삶의 길도 그러하다, 정해진 삶의 길은 따로 없다. 길은 단지 가는 방향을 일러줄 뿐이지 목적지가 아니다.처음은 편안하다고 생각했던 길이 가다 보면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고처음은 힘들어도 가다 보면 편안한 길이 될 수도 있다. 길은 많다. 어느 길을 가느냐는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그러나 길은 그대에게 행(幸) 불행(不幸)의 답을 주지 않는다.그 답은 단지 그대의 사념이 만들어 내는 바램일뿐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그대의 마음속에 경계(觀念)를 만들어 놓고 한쪽은 받아드리고 반대쪽은 버린다는..
2026.09.11 -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
삼계유심(三界唯心)이란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에 있다는 의미다.삼계(三界)는 중생이 머무는 세계를 3가지로 나눈 것으로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욕계(欲界)는 중생이 욕망으로 머무른 세계를 말한다. 색계(色界)는 중생이 머무는 물질세계를 의미하고, 무색계(無色界)는 관념, 이념의 세계를 의미한다. 삼계란 중생이 살아가는 삶의 형태를 3가지 세계로 분리한 것으로,욕망에 의지하고, 물질에 의지하고, 관념, 신념이라는 정신작용에의지하여 살아가는 삶의 양태를 말하는 것이다.그러므로 三界唯心이란 곧 삼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단지 이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것이란 의미다.바꾸어 말하면, 중생의 삶이란 실체가 있는 그 어떤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마음이 만들어 낸 허황된 꿈에 지..
2026.09.07 -
(삶의 길 50) “죽음을 준비하는 자”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 이는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절대적 진리다.부자이든, 가난뱅이든, 학자이든 무지렁이든, 귀하던 천하든 죽음은 필연이다.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오래 살기를 바라면서 나이를 먹는 것을 싫어합니다. 삶과 죽음은 필연적인 관계인데 삶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고대 아테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ouros BC341~270)가 이른 말을 했다.“죽음은 사실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에 이르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과연 그럴까? 죽음에 대한 이런 낙천적인 대답이 해답이 될까?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도 이런 말을 했다. ..
2026.09.01 -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라.
“무명(無名) 무상(無相) 절일체(絶一切)”란 이름도 없고, 모양(相)도 없고 일체가 끊어졌다는 의미다.이는 화엄학의 요지를 설한 에서 법성(法性)의 의미를 설한 말이다.法性이란 곧 佛性을 의미한다. 그 외에도 경에 따라 여러 이름이 있다. 이는 모두 실체를 의미하며, 존재를 의미하는 말이다.법성은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일체 말을 벗어났기게무어라 할 수 없기에 법성이란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 말의 기호에 불과하다는 의미다.X라 불러도 좋고 Y라고 불러도 좋다는 의미다. 이름이란 무엇인가?가령 여기에 한 덩어리의 노랗고 긴 나무 열매와 긴 줄기에 푸른색을 한 긴 열매가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둘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노란색 긴 열매는 바나나라고 하고, 파란 열매는 오..
2026.08.30 -
불행도 행운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삶이 幸運으로만 이어진다면 기쁜 일이지만 꼭 그렇지만 않습니다.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예기치 않은 불행은 일어납니다.그렇게 되면 괴롭고, 분하고, 억울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싫고 괴로울 수밖에 없기에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삶의 행운과 불행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삶은 언제나 幸과 不幸이 교차하는 것입니다.늘 행복한 삶도 없고, 늘 괴로운 삶도 없습니다. 이것이 중생의 삶입니다.幸과 不幸이란 결국 善이냐 惡이냐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善이란 내게 좋고, 이득이 되고, 기쁜 일이 되면 선이라 합니다. 경전을 보면 란 말이 있습니다.善과 惡은 똑같이 因緣生입니다. 善에도 善의 실체가 없고, 惡에도 惡의 실체가 없어서 空의 性이 모두 평등함으로 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곧 라는 뜻입니다.이는 超世間的인..
202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