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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존자 주리반타카 이야기
부처님의 제자 중에서 기억력이 제일 뛰어난 제자는 아난입니다. 부처님의 생전 말씀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총명했는데 이와는 반대로 게송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여 바보라 불리던 한 비구(比丘)가 아라한(arhat)이 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라한이란 원시불교에서 깨달은 이를 일컫는 말입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슈라아바스테이의 제타 숲 에 계실 때입니다. 그때 비구 스님이 한 명 있었는데 이름을 반특(槃特)이라 하였습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주리반특가(周利槃特迦:suddhipanthaka), 반타카라고도 불립니다. 그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경전에서는 이를 구별하기 위해 존자 반타가 또는 마하반타카(cudapanthaka)라 하였는데 아우 주리반특가보다 먼저 출가하여 아라한 되어 있었습니다. 마하 반타가는 아..
2023.02.21 -
(법구비유경) 네마리의 짐승의 우화
짧은 인생에 하루가 길어 슬픈 짐승이 인간이라고 했던가. 오욕(五欲)의 물결에 떠돌다 가는 부평초 같은 인생.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이 적멸(寂滅)의 낙(樂)일까?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무릇 몸은 온갖 괴로움의 근본이요, 모든 재앙의 근원이다. 마음을 괴롭히고 생각을 태우며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온갖 실마리와 삼계의 모든 곤충이 서로 해치는 것과 우리를 결박해 생사가 그치지 않는 것이 모두 이 몸으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온갖 괴로움을 여의려면 마땅히 적멸(寂滅)을 구해야 하나니, 마음을 거두어 잡고 바른길을 지켜, 말끔하게 아무 생각이 없어야 열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것이 가장 즐거운 것이기도 하다."」 "수없이 먼 옛날 어느 세상에 다섯 가지 신통을 가진 ..
2023.02.14 -
금강경의 무주상 보시
산림청의 이야기를 따르면 전국에서 산새가 가장 많은 산은 불암산이 으뜸이라고 한다. 사실, 불암산을 오르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많은 산새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까마귀와 까치들이 유난히 많다. 까마귀와 까치는 여느 새보다 사람의 인기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다. 그런데 요즘 심심찮게 마을까지 내려와 전깃줄이나 가로등에 내려앉기도 하고, 골목길은 물론 심지어는 아파트 배란다 난간 쪽도 기웃거린다. 산에는 낙엽이 쌓여 있고, 또 지금은 겨울이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이유로 산에는 산새가 먹을 양식이 없어져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불암산 둘레길을 걷다가 조금 외진 쪽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내가 쉬고 있는 바로 뒤편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나를 주시한다. 아주 드문 ..
2023.02.12 -
수심(愁心)
강변의 갈대도 잠이 들었고 행여 깰세라 강물도 숨을 죽이고 흐른다. 밤은 깊어 가는데 저 달은 왜 저리 밝은고. 잠 못 드는 이 밤 더 길어지는구나.
2023.02.07 -
칭추조사(秤錘祖師) 이야기
중국 운남(雲南)에 칭추조사(秤錘祖師)란 분이 있었는데 명나라 때 사람으로 성은 채(蔡)씨이고 곤명(昆明)의 소동문(小東門) 밖에서 살고 있었다. 채 씨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답과 재산이 많아 부족함이 없었지만 검소하게 살았다. 틈틈이 채소를 가꾸어 시장에 내다 팔아 용돈까지 넉넉하게 챙기면서 살았다. 그런데 채(蔡)씨의 아내는 용모가 아름다웠지만 게으르고, 놀고먹기만 좋아했다. 거기다 얼굴값 한다고 끼가 있어 남편 몰래 동네 건달과 눈이 맞아 바람까지 피우곤 했다. 채(蔡)씨는 비록 그 사실을 알았지만 모르는 체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점점 간이 커진 아내는 남편이 채소를 팔러 시장으로 나가기만 하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아예 그 건달을 집으로 데려다 놓고 놀아나곤 했다. 그러던 어느 ..
2023.02.05 -
이게 말이 돼? 안 돼? (제3화) 내로남불
요즘 우리 사회는 어느새 이 무의식적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데 이 말이 정치권으로 옮겨져 사사건건 양비론(兩非論)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일례로 하나의 예술작품에 대해서도 창작이다, 외설이라고 하는 양비론이 제기되고, 또 시민의 절세(節稅)를 위한 후원금이라고 한편에서는 주장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특정인의 정치적 목적으로 받은 뇌물이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예술이 무엇인지, 기부금과 뇌물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리송아리송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는 본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매몰된 아전인수(我田引水)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편의 말은 따질 것 없이 옳은 것이고, 상대편의 말은 무조건 그르다는 식..
2023.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