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말이 돼? 안 돼? (제3화) 내로남불

2023. 2. 4. 21:02경전속의 우화들

 

요즘 우리 사회는 어느새 <내로남불>이

무의식적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인데

이 말이 정치권으로 옮겨져 사사건건

양비론(兩非論)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일례로 하나의 예술작품에 대해서도 창작이다,

외설이라고 하는 양비론이 제기되고,

또 시민의 절세(節稅)를 위한 후원금이라고

한편에서는 주장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특정인의 정치적 목적으로 받은 뇌물이라고 주장한다.

도대체 예술이 무엇인지,

기부금과 뇌물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리송아리송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는 본질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매몰된

아전인수(我田引水)요, 아시타비(我是他非)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편의 말은 따질 것 없이 옳은 것이고,

상대편의 말은 무조건 그르다는 식이다.

여기에 이르면 상식이라는 말도 먹혀들어 가지 않는다.

그런데 내로남불인 줄 뻔히 알면서도 행한 것과

모르고 습관적으로 저질은 행위는 어느 쪽이 더 죄가 무거울까?

형법(刑法)상으로는 고의성의 유무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도덕적인 평가는 다르다.

알고 하는 행위보다 모르고 하는 행위가 더 나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도 알고 한 짓은 나중에라도 고칠 수 있지만,

모르고 한 짓은 되풀이될 수 있기에

모르고 한 짓이 더 나쁘다는 것이다.

 

칠갑산 장승공원에서

문제는 작금의 시민 의식이다.

상식이 결여(缺如)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말은 분명 우리 말인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완전 뚱딴지같은 소리를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뱉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 있다.

어느 시골 마을에 자기 아버지 사망 신고를 하러 더벅머리 총각이 동회에 갔다.

요즈음 말로 하면 주민센터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동사무소 직원이 나와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러자 더벅머리 총각이 하는 말

「마을버스 타고 왔슈.」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어떤 일로 왔습니까?」

「아버지 사망 신고를 하러 왔슈.」

그러자 동회 직원이 귀찮은 듯 묻는다.

「본인이세요?」

「아닌데요.」

그러자 동회 직원이 뱉어내는 말.

「본인 아니면 위임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코미디보다 더 심각한 일들이 우리 주변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때 매스컴에서 미투운동이 요란을 떨더니 요즘은 시큰둥해졌다.

가해자 피해자가 서로 아전인수식으로 싸우다 보니

일반인들은 아예 식상(食傷)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보면 조조에 얽힌 야사(野史)로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삼국지의 간웅으로 일컬어지는 조조는 어린 시절부터 영특하고

기민했으며 임기응변에 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다소 방탕하고

제멋대로인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고도 알려져 있다.

후한 174년에 조조는 스무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효렴(孝廉)>으로 관직에 제수되었는데

이는 효행(孝行)이 있고 청렴결백한 사람을 등용하는

관리임용 제도로 후한에서는

당시 이런 효렴 출신의 관리가 많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낙양 북부위를 역임하게 되고

조조는 이때부터 여러 서적을 공부하고

특히 병법을 열심히 연구했다고 한다.

낙양 북부위로 일하면서 조조는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기로 유명했다.

야간통행금지령을 내려 위반하는 자에게는 10대의 태형을 내렸고,

죄질이 나쁜 자는 때려죽이는 형에 처했다.

당시 큰 권력을 휘둘렀던 환관의 숙부가

이를 어겼을 때도 조조는 지위를 막론하고 법을 집행하여

결국 그를 때려죽이게 했던 인물이다.

말하자면 청렴결백하고 윤리관이 투철한 준법정신을 가진 자였다.

그런데 훗날 제위에 오르자 생판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고 하지만 조조의 취미는 좀 색달랐다.

처녀가 아니라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유부녀만 겁탈했으니 말이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안 돼? 이것 내로남불의 극치 아닌가.

제왕(帝王)은 후안무치(厚顔無恥)라고 항변하지만.

 

향락으로 나라 말아먹었다는 의자왕은 3천 궁녀를 두었고,

중국의 시황제라 칭하는 진시황은 함양에 270개 궁전을 짓고

일 만여 명의 후궁을 두었지만,

유부녀를 겁탈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조조야말로 후안무치의 대명사요, 내로남불의 효시가 아닐까.

 

그런데 말이다. 의자왕, 진시황의 이런 패륜을 질타하면서도

우리 사회는 성직자, 교육자는 물론 예술인, 기업가 등

어느 부류를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성(性) 추문이 야기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로남불은 이제 변명과 반박의 논쟁을 벗어나

사실의 유무와 상관없이 음해(陰害)나

모략(謀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한심하다.

하긴 부처님도 9번〔九惱〕이나 음해를 당했는데

하물며 어찌 중생인들 아니 그럴 수 있겠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우리 사회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