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의 무주상 보시

2023. 2. 12. 17:55경전과교리해설

 

 

산림청의 이야기를 따르면 전국에서

산새가 가장 많은 산은 불암산이 으뜸이라고 한다.

사실, 불암산을 오르다 보면 어렵지 않게 많은 산새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까마귀와 까치들이 유난히 많다.

까마귀와 까치는 여느 새보다 사람의 인기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다.

그런데 요즘 심심찮게 마을까지 내려와 전깃줄이나

가로등에 내려앉기도 하고, 골목길은 물론 심지어는

아파트 배란다 난간 쪽도 기웃거린다.

산에는 낙엽이 쌓여 있고, 또 지금은 겨울이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이유로 산에는 산새가 먹을 양식이 없어져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불암산 둘레길을 걷다가 조금 외진 쪽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내가 쉬고 있는

바로 뒤편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나를 주시한다.

아주 드문 일이라 웬일인가 싶어 나도 물끄러미 까마귀를 보는데

날아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문득 “아 하! 나보고 뭐 좀 달려나 보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마침 가지고 온 오곡을 얹은 작은 파이 한 쪽이 생각나

조금씩 뜯어서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까마귀는 이를 빤히 쳐다보면서도 내려 오지 않고 나를 쳐다만 본다.

“아 차, 내가 자리를 피해주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떠나 내려왔다. 평시에는 둘레길을 걷을 때는

물 한 병조차도 들고 가지 않았는데 오늘은

점심을 떡 한 조각으로 때우고 오른 둘레길이나

행여 허기가 질까 봐 모처럼 가지고 간 것인데

저 녀석과는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모두 주고 말았다.

이것도 보시(布施)인가?

 

금강경 제4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법에 머무른 바 없이 보시하여야 한다.

이른바 형체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며,

소리, 맛, 감촉,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여야 한다.」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이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말한 것으로

여기서 무주(無住)란 말은 일정한 데 머물거나

안주하거나 집착하거나 함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제목에 <묘행(妙行)>의 行은 길을 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행을 한다는 의미다.

묘(妙)는 빼어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것을 표현할 때 불교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진공묘유(眞空妙有)>라 할 때 그 묘(妙)와 같은 의미로

깊고 그윽하여 있는 듯 없는 듯 불가사의한 최상,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묘행(妙行)은 불법 수행을 의미하는 말이 된다.

 

무주(無住)란 말은 선가(禪家)에서는

<방하착(放下著)>이란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방하착>은 내려놓는다는 말인데 이는 곧 마음을 비운다는 의미가 된다.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말인데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이는 <공(空)>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비유하자면 <빈 병(甁)>이라고 할 때 병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병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주상보시>는 수행을 물론,

보시할 때 모름지기 행하면서 행하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선가(禪家)에서 「於心無事 於事無心」 이란 말과 같이

행하고자 하는 일에도, 행하는 주체자로서

집착이나 아상(我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운남성 민속촌의 라마승

불교 사전에 따르면 보시(布施)는 희사(喜捨), 수혜(授惠)와 같은 말이다.

남에게 주는 것, 돈이나 물품을 주는 것, 그뿐만 아니라

친절한 행동도 보시(布施)이며,

신자(信者)가 승려에게 재물을 주는 것은 재시(財施),

승려가 신자를 위해 법을 설하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는데

통속적으로 말한다면 베푸는 것을 말한다.

복과 이익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 보시이다.

 

보시(布施)는 결국 자비심(慈悲心)의 발로이다.

경전에 의하면 <자비(慈悲)>이란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을 자(慈,

고(苦)를 없애 주는 것을 비(悲)라 한다.

<대지도론 27>에

「대자(大慈)는 일체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이요,

대비(大悲)는 일체중생의 고(苦)를 없애 주는 것이다. 」라고 했다.

 

교학에서는 자비심을 일으키는 단계에 따라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 법연자비(法緣慈悲),

무연자비(無緣慈悲)3연 자비로 구분하고 있다.

자비의 정신은 자(), (), (), ()

4가지 무량한 마음을 일으키는 사무량심(四無量心)으로도 표현되는데,

'무량(無量)'은 무량한 중생을 대상으로 하며

무량한 복을 가져온다는 의미가 있다.

 

영광 법성포 유아의 보시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

중생의 개별적인 모습을 보고 연민의 마음을 일으키고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생각하여 베푸는 자비로서

범부나 아직 번뇌를 끊지 못한 이가 행하는 자비이다.

다시 말해 인연에 의해 베푸는 자비다.

주로 가족과 친척, 그리고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다.

이런 자비는 이해관계가 따르기 때문에

베푸는 마음 근저에 아상(我相)이 깔려있다.

집착이 있게 마련이다. 가령 불우 이웃 돕기나 자선 행사에 가 보면

보시가 목적이 아니고 사진을 찍고, 일장 연설로

자기를 홍보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상(我相)에 빠진 번뇌 때문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사익범천소문경』에서는 이를.

“범천이여,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린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단바라밀(檀波羅蜜)이라 하며….”라고 했다.

단바라밀은 보시를 의미한다. 내가 이런 보시를 한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은

곧 번뇌(아상)을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주상보시가 아니라고 한 것이다.

 

 

법연자비(法緣慈悲)

일체제법(一切諸法)5(五蘊)의 화합하여 생겨난

()한 것임을 깨닫고 베푸는 자비로

번뇌가 끊어진 성자(聖者)가 일으키는 자비이다.

법연자비는 인연의 유무보다 그 존재 자체가 공()이기 때문에

중생들이 없는 것을 있다고 보거나, 아닌 것을 옳다고 보는

무명(無明)을 깨치기를 염원하여 베푸는 자비이다.

이는 곧 재()보시가 아니라 법() 보시를 말하고 있다.

 

무연자비(無緣慈悲)

온갖 차별된 견해를 여읜 절대 평등의 경지에서

제법의 진여실상(眞如實相)을 깨달은

큰 보살과 부처가 행하는 자비이므로 대자대비(大慈大悲)라고 한다.

다시 말해 무연자비는 불(), 보살(菩薩)의 넓고,

큰 자비를 말하는 데 유무, 법의 인연을 떠나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라하고

소극적으로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을 비()라고 한다.

대자는 일체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며,

대비는 일체중생의 고통을 뽑아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이르길

「불심이라는 이것은 무연자비로써 일체중생을 거두어드리는 것이다

(佛心者大慈悲 是以無緣慈攝諸衆生)」 라고 했다.

 

보타낙가산 해수관음

불교 교학은 사실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번쇄하다.

이를 쉽게 요약하면 자(慈)는 애념(愛念: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이요,

비(悲)는 민념(愍念: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의 고(苦)를 없애주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이 자비는 사랑과 연민의 뜻을 함께 포함한 것으로,

이기적인 탐욕을 벗어나고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의 마음을 극복할 때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이 자비는 철저한 무아사상(無我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고 중생의 고통을 제거하여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내어 주는 지극한 사랑이다.

무주상(無住相) 보시(布施)는 이런 자비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아사상(無我思想)에 따른 보시라고 하면

이는 어느 정도 수행에 이른 수행자나 적어도

보살(菩薩) 이상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 베푸는 자비다.

중생의 관점에서는 중생이 일반적으로 행할 수 있는 보시가

재시(財施) 곧 재물 보시라 볼 수 있다.

일본 속담에 「재물은 귀신도 움직인다.」라고 할 정도

재물에 대한 탐심은 동서고금을 통해 중생이 갖는 탐심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의 근본 개념은

재물의 과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시하는 자의 마음에 따라 평가한다는 것이다.

경전에 나온 <빈자일등(貧者一燈)>과 <아쇼카왕의 전생담>의 이야기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영광 법성포 귀부인의 보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이야기

 

코살라국의 사위(舍衛)에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구걸로 겨우 목숨을 이어 갈 정도로 가난했다.

어느 날 석가모니가 사위성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파세나디왕과 모든 백성은 등불 공양을 올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러나 난타는 수중에 돈 한 푼도 없는 가난뱅이라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가난한 집에 태어나

볻밭을 만나고서도 뿌릴 종자가 없는 것일까?하고

한탄만 하다가 조그마한 공양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아침 일찍 일터에 나가 날이 저물도록 부지런히 일했지만

얻어지는 것은 겨우 하루 1()에 불과했다.

그녀는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기름집에 가서 기름을 사려 했다.

기름집 주인이 물었다.

부인의 1전 어치 기름은 사 봐야 쓸데가 없을 텐데 도대체 어디에 쓰려는 거요?

부처님과 스님들께 불을 켜 공양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진 것이 이것뿐이라 이것만이라도 주세요.

사정 이야기를 들은 기름집 주인은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다.

이를 받았던 난타는 등 하나에 불을 밝혀 석가모니께 바치면서 기원을 드려다.

 

나는 지금 가난하여서 이 작은 등불 하나만으로 부처님께 공양하나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등불이 나의 전 재산을 바치는 것이오며,

따라서 나의 마음까지도 모두 바치는 것이옵니다.

바라건대 이 인연의 공덕으로 나도 내생에 지혜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의 어두운 그림자를 없애게 하여지이다

 

보타낙가산 해수관음전의 불화

밤이 깊어 가고, 세찬 바람이 불어 다른 등불은 다 꺼졌으나

유독 난타의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석가모니가 잠을 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날 당번이었던 목건련이 입으로 불고, 가사 자락으로 등을 끄려 하였으나

등은 꺼지지 않았다. 이를 본 석가모니가 목견련에게 말했다.

부질없이 애쓰지 말아라. 지금 네가 끄려고 하는 그 등불은

너희들 성문(聲聞)의 힘으로 꺼지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사해의 바닷물을 길어다 붓거나 태풍을 몰아다 끈다 해도

그 불은 끌 수 없다. 그것은 보시한 사람이 자기의 전 재산과

마음을 송두리째 바친 뒤 일체중생을 구원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타를 불러 이렇게 수기를 주었다.

너는 오는 세상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부처가 될 것이다. 부처의 이름은 등광(燈光)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현우경(賢愚經)>

아도세왕수결경(阿闍世王授決經)》에서 발췌해서 편집한 것이다.

 

영광 법성포 아쇼카왕의 석주

@<아육왕의 전생담>

@아소카(Asoka)왕은 경전에서 아육왕( 阿育王),

무왕(無憂王), 아사세왕 등으로 불리며

출생은 미상이며 대략 BC238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인도 마우리아 왕조 제3대 왕이다,

 

아소카는 인도 남부를 제외한 인도 전역을 통일했지만

칼링가국 정복 전쟁 때 수십만 명의 장병이 살생 당한 현장을 둘러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이후 무력 정복을 포기하고 불교에 귀의한 분이다.

비폭력과 사회 윤리에 기초를 둔 다르마에 따라 살며

사회적·도덕적 덕목들을 철저하게 실천하고자 하였다.

다르마의 사절이라는 고위 관리들을 임명하여 어디서나

백성들의 모든 고통을 구제해주며 여자, 변경지역의 주민, 인접한 민족들,

그리고 다양한 종교 공동체의 요구를 보살피도록 했다.

또한 수많은 불교의 탑과 사원,

그리고 종교적 교리를 새겨놓은 석주들을 세웠으며,

국내외에 불교를 전파한 전설적인 왕이다.

 

구봉산 신흥사 빔비사라왕에게 설법함

부처님 왕사성(王舍城) 가란타죽림(迦蘭陀竹林)에 머물고 계실 때다.

세존께서는 날이 밝자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여러 비구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왕사성으로 가시어

차례로 걸식하고자 하셨다. 이때 세존께서는 아난과 함께

거리 가운데 계시다가 작은 아이 두 명을 보셨다.

한 아이의 이름은 덕승(德勝)으로 가장 문벌이 좋은 귀족의 아들이었고,

다른 아이의 이름은 무승(無勝)으로 두 번째로 문벌이 좋은 귀족의 아들이었다.

이 두 아이가 흙을 가지고 노는데 흙으로 성을 만들고,

성 가운데 다시 집과 창고를 만들고는 흙으로 만든 보릿가루를 창고 안에 쌓았다.

부처님의 32 대인상(大人相)으로 장엄하신 그 몸에서

금색의 광명이 나와 성의 안팎을 비추는데,

모두 금색으로 밝게 비추지 않음이 없음을 이 두 아이가 보고는 기뻐하였다.

이에 덕승이 창고 속의 흙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보릿가루라 이름하며

세존께 받들어 올리고, 무승은 옆에서 합장하며 따라 기뻐하였다고 한다.

부처님이 미소를 짓자 동행했던 아난이 그 이유를 묻는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열반한 지 100년 뒤에 이 어린아이는

마땅히 전륜성왕의 4분(分)의 1이 되어 화씨성(花氏城)에서

법을 다스리는 아서가(阿恕伽)라는 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사리를 나누어서 8만 4천의 보탑을 만들어

많은 사람을 풍요롭고 이익되게 할 것이다.」

 

월추산 마애불 국보144호

여기서 말한 덕숭이 바로 아사세왕(아쇼카왕)의 전생의 이름이다.

부처님의 수기대로 그는 인도를 통일하고

불법 전파를 위해 부처님의 사리로 8만4천 개의 불탑을 세웠다.

이야기는 <아사세왕수결경>와

<아육왕전>에 나온 이야기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가난한 노파 난타가 보시한 등유는 값진 것도 아니고,

덕승이 공양한 진흙 덩이가 아름다운 것도 귀한 것도 아니다.

보시란 보시하는 그 재물의 가치가 아니라

보시하는 자의 마음이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난타는 가난하지만 자기가 아닌 일체중생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고,

덕승은 천진난만한 순수한 헌신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무상보시(無相布施)란 단지 이러한 마음으로 행한다면 족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