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의 이야기들(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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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 나들이
반세기 동안 하던 일을 모두 접고 나니 제일 먼저 느껴지는 것이 시간에 대한 해방이다. 일을 할 때는 일자와 시간에 쫓기며 살았는데 모든 일을 접고 나니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시간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제 겨우 석 달이 채 안 되었는데도 모든 관심이 사라져 버리고 무딛어져 버렸다. 시간으로부터 해방되고 나니 오늘 꼭 해야 할 일도 없고 서두를 일도 없다. 그런데도 여태까지 미루어왔던 이런 일 저런 일을 시도하다 보니 시간에 구애되지 않지만, 하루하루가 바쁘기는 매일반이다. 반세기 동안 약업에 종사했던 집사람도 오늘따라 왠지 무료함을 느꼈는지 소래포구나 다녀오자고 했다. 일을 할 때는 시간에 쫓겨 일주일에 겨우 일요일 하루밖에 쉴 수 없었기에 어디를 나들이 나갈 때는 으레 자동차로 움직였는데 오늘은 차도 ..
2024.04.24 -
초원과 같은 삶을 살자
징기스칸의 본명은 이었습니다. 이란 이름은 그의 아버지 가 전쟁에서 패배시킨 적장(敵將)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테무진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불화관계에 있던 정적 타타르족에 의해 독살됩니다. 아버지가 죽자 그의 어머니 호엘운과 테무진은 축출당합니다. 테무진은 하루아침에 왕족에서 영세한 가문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비천한 유목민의 삶이 시작됩니다. 극심한 가난으로 베고 품을 참지 못한 어린 동생은 가족 몰래 도둑질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테무진은 그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동생을 타일러 봅니다. 그러나 당장 베고픔을 참지 못한 동생은 계속 몰래 도둑질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그는 동생이 도둑질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그 자리에서 동생을 화살로 죽이고 맙니다. 테무진의..
2024.03.17 -
갑진년 설날 아침에
갑진년(甲辰年) 설날 아침이다. 자식들은 멀리 있고 찾아오는 친인척도 없어 집사람과 둘이서 호젓이 차례상을 치르고 나니 홀연히 한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전생의 내 부모였을지도 모르고, 내 형제 내 자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부처님처럼 성자도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니다. 하물며 중생의 옷을 벗지 못한 이 몸이 어찌 전생의 삶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만남과 헤어짐에서 초연(超然)할 수 있을까마는 가슴 한쪽에 밀려오는 허전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만남이 그리워셨을까? (중국 법우선사 구룡벽) 서기전 500년 무렵 인도에서 활동하던 6명의 별난 자유사상가가 있었다. 불교 관점에서 말하는 육사외도(六師外道)가 바로 그들이다. 푸라나 ..
2024.02.10 -
눈 내리는 날의 소요산 풍경
눈이 내린 날의 산사는 적막하기 그지없다. 깊은 산속의 절일수록 더욱 그렇다. 웬만한 불심(佛心)이 없다면, 절에 특별한 볼일이 없다면, 누가 미끄러운 눈길을 헤쳐가며 산사를 찾겠는가. 그런데 소요산 자재암은 깊은 산속에 있는 절이 아니다. 웬만큼 큰 눈이 내려도 못 다닐 정도로 위험한 절도 아니다. 자재암은 전철역에서도 그리 멀지 않고, 기온도 영상이라 잠시 나들이하기는 오늘따라 안성맞춤이었다. 느지막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전철을 타고 소요산으로 향했다. 자재암 가는 포장된 길은 이미 눈이 다 녹았고 숲과 계곡에만 눈이 쌓여 있었다. 단풍철이었다면 소요산 자재암 가는 길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겠지만, 눈도 내렸고 또 평일이라서 그런지 오르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젊은이들은 거의 보이지..
2024.02.07 -
야누스(Janus)와 딱따구리
세상사 모든 것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외쳐대는 내로남불 하는 사람, 안면 몰수하고 앞의 말과 행동을 뒤집는 철면피 같은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일러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Janus)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혹자는 이런 사람이 반드시 그릇된 것이 아니라고 반문한다. 사람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눈은 4개이고 입도 2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양면(兩面)을 가진 사람이 하는 말은 보는 눈이 달라서 앞과 뒤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악인(惡人)이 선인(善人)으로 포장되고 비위나 성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정직한 사람, 도덕군자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눈이 네 개이고 입이 둘이라고 하지만 사람은 같은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들 앞에서는 이 말..
2024.01.26 -
갑진년 새해 수락산 매월정에서
어언 30여 년을 수락산을 찾다보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새해 들어 눈 내린 다음 날 수락산을 다시 찾았다. 추운 날씨에다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조금 평이한 매월정 코스를 잡았다. 매월정 코스는 언덕길 같은 오솔길이 길어 양옆 계곡은 눈이 쌓여 있었지만 길은 녹아 있었다. 매월정 코스는 수락산 등산로 중에서도 영원암 코스보다 더 뜸한 코스라 소요(逍遙)하기는 안성맞춤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날도 춥지만, 눈까지 녹지 않아서 등산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등산객이 붐볐던 매월정도 텅 비어 있었다. 수십 번 매월정을 오르내렸지만 갈 때마다 정상을 오가는 등산객이 쉬어가는 코스라 늘 붐벼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했는데 이렇게 텅 빈 매월정을 보기는 처음이다. 정자 안에는 걸린 많은..
2024.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