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의 단상(斷想) 5 친구 간의 믿음과 신뢰
2025. 3. 17. 12:08ㆍ삶 속의 이야기들
친구 간의 우정은 믿음이 아니라 신뢰다.
신뢰는 뒤돌아 봄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신뢰는 뒤돌아 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의심하는 마음은 언제나 뒤돌아본다.
<신심명>에도 이런 말이 있다.
「소견호의(小見狐疑) 전급전지(轉急轉遲)」라는 말.
좁은 견해로 여우 같은 의심을 내어
서둘수록 더욱 더디어진다.라는 말이다.

가마우지
의심이 일어나면 다른 믿음이 생기고 신뢰는 약해진다.
신뢰가 약지면 다른 탈출구를 생각하고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왜 그랬지?
무슨 이득이 있었지?
다른 좋은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던가?
신중(愼重)하지 못해 마음에 혹(惑)한 것이 아닐까?
의심이 생기는 순간 신뢰는 무너지고
신뢰가 무너지면 친구 간의 우정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믿음은 선택한 마음에서 생긴다.
믿음은 개념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개념은 삶에 관한 것이다.
삶의 길은 이해득실, 시비(是非), 선악(善惡),
미추(美醜)에 좌우된다.

비오리
신뢰는 믿음과 다르다.
신뢰는 결코 개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신뢰는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믿음의 영역이 아니다.
믿음에 따른 행동은 말로 드러나지만
신뢰에 따른 행동은 꼭 말이 필요치 않다.

비오리
벌이 꽃잎의 밖에 있을 때는 윙윙 소리를 낸다.
그러나 꽃으로 들어가
꿀을 딸 때에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믿음은 꽃잎 밖에 있을 때 내는 소리다.
신뢰는 꽃으로 들어가 꿀을 딸 때 침묵의 소리다.

믿음은 경계가 있지만 신뢰는 경계가 없다.
우정이 신뢰를 기반으로 할 때
어떤 이론이나 논쟁이라도 초월할 수 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식성이 다르듯 삶의 길에서는
갖가지 개념을 설정하고 논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뢰하는 자는 단지 침묵할 뿐이다.

(청동 비로자나불/판교출토/고려초)
믿음의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만들고,
모든 행위에서는 이유를 찾으려고 한다.
합리화란 그대 주위에 거짓 장막을 치는
마음의 교활한 속임수 중의 하나이다.

믿음을 확고히 가지는 자는
자신이 만들어 낸 자신의 합리화에 갇히게 된다.
만일 그대가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합리화를 떨쳐 버려야 한다.

우정이란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서 자연스럽게 생기(生起)하는 것이다.
우정 속에는 합리화된 개념은 없다. 오로지 신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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