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27) 신의는 인간관계의 근본이다.

2025. 2. 24. 13:53삶 속의 이야기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필연적입니다.

혈연으로,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 이해 등등 관계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맺어진 인간관계는 표면상으로 보면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 보면 그들은 서로를 속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 그 자체를 부정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어떠한 인간관계이든 인간관계를 통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는 생각지 말라는 뜻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신의(信義)입니다.

대나무가 칭송받는 것은 곧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칭송받는 것은 신의를 지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변했습니다.

처음 한 말이 중간에 달라지고 끝에 가서 또 달라집니다.

교묘한 말재주로 사람들은 희롱당하고 있습니다.

신의는 어디 가고 인정과 의리는 가난한 데서 끊기고

세상 사람들은 힘 있고 돈 있는 집만 찾아 줄을 섭니다.

 

이성 간의 만남도 그러합니다.

영원한 사랑의 서약을 하고 결혼했지만

서약한 신의(信義)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감추어진 본성과 욕망을 드러냅니다.

돈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낮이 즐겁고

육체로 결혼하는 사람은 밤이 즐거울지 몰라도

처음에 서약한 신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정의 화목도 그러합니다.

가정은 동업자의 결속이 아닙니다.

이해관계로 맺어지는 그런 결속이 아닙니다.

화목은 신의요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가정의 사랑은 정원사의 손길 같아서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아내의 소망은 작아지고

아내의 사랑이 클수록 남편의 번뇌가 작아집니다.

신의가 사라지면 잡초가 자라듯

부부 사이의 갈등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가 기대하고 바라는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신의가 무너지면 심지어 가족이란 개념까지도 무색게 합니다.

돈 많은 부자들은 이해관계로 양자에 서자(庶子)까지 늘이지만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든 가난한 사람은 한 몸도 많다고 한탄합니다.

 

신의는 진실함에서 나옵니다.

진실함이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한 믿음은 내 안에서 나옵니다.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시계 하나를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계는 시침도 분침도 초침도 없었습니다.

받아 든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상한 시계군요. 시침, 분침 초침도 없으니

어떻게 시간을 알 수 있지요?」

그러자 시계를 준 사람이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남의 소리에 의존하기를 좋아합니다.

한 사람의 말은 독백이 되지만

두 사람의 말은 하나의 카탈로그가 됩니다.

한 사람의 소리는 헛소리로 넘길 수 있지만

둘 이상이 되면 그 카탈로그는 목록이 아니라

경전이나 성경처럼 힘을 갖게 됩니다.

베스트 셀러마냥 그 소문은

유일한 독서꺼리 마냥 퍼져나가게 되고 믿게 됩니다.

 

유명 인사의 소리라면 더 껌벅 넘어갑니다.

매스컴의 소리라면 의심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집단으로 맺어진 인간관계에서는

맹종적으로 받아드리게 됩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듣기 때문에

다른 것은 보지도 들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대중(大衆)의 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합리화하기 위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합리화는 거짓 장막을 치는

마음의 교활한 속임수 중의 하나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그러한 합리화된 소리를 떨쳐 버려야 합니다.

부처님 또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해도 그릇될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르다 해도 옳을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특히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무언가 특별한 사람임을

자랑하고 싶은 본성이 내재합니다.

독특함은 모든 사람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때

야심, 비교, 시기 등이 개입하게 되고

정치적 인간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자신의 우월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의든 타의든 상대를 비난하게 되고

질투하고 끌어내리게 됩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기를 쓰기에 때문에 인간관계는 갈등을 빚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신의는 깨어지게 됩니다.

인간관계의 신의는 나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신의는 자기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로 아름다운 것은 사랑과 같습니다.

사랑은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마음입니다.

신의(信義)는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經) 또한

< 신(信)은 마음을 징정(澄淨)시키는 것이다.(俱舍論4)> 하였고,

《보화엄경(普華嚴經)6》에서는

<신(信)은 도(道)다. 원래 모든 공덕의 어머니(母)다.

일체 모든 선법을 증장시키며

일체의 모든 의혹을 제멸(除滅)하고

무상도(無上道)를 개발 시현한다.>라고 했습니다.

 

지식은 머리에서 나옵니다.

신의는 가슴에서 나옵니다.

지식은 분별하지만

신의는 화합합니다.

분별은 나와 네가 있지만

화합은 하나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은 없고 사랑하는 자만 있습니다.

나와 네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의는 깨끗한 마음입니다.

깨끗한 마음은 곧 평등한 마음입니다.

나의 욕심이나 이해관계도 아니고

너의 욕심이나 이해관계도 아닌 사리(事理)를 말하는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 평등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바로 신의입니다.

이러한 신의(信義)가 인간관계의 근본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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