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향기(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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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에게 남긴 성철 대종사스님의 편지
이 편지는 스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옛적에 해인사를 찾아온 미국인 비더라는 교수와 나눈 대화 중 미진했던 부분을 훗날 다시 글로 회신한 것이지만 불교를 공부하는 신도들에게도 또한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아 소개한다. 한국 불교의 위대한 선승(禪僧)이라는 것에만 매료되어 찾은 이도 있었지만, 불교와는 거리가 먼 한 이방인이 먼 이곳 땅, 그것도 오지인 해인사를 찾아와 스님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일이지만 스님이 직접 글로 써 이방인에게 회신한 것은 대승불교의 목적인 의 참 의미를 실천하신 선행의 길잡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전일 내방하셨을 때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쓸데없는 말들을 너무 많이 해서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자기도 잘 알지 못하면서 남의 질문에 대답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2024.04.13 -
삶의 길(5) 사향노루
냄새는 가장 중요한 성적 감각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기피하고 있다. 냄새는 가장 강렬한 자극제이다. 아름다운 눈을 가진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 눈이 참 아름답다” 또 청각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을 만날 때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은 귀가 참 밝다.” 그러나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은 다르다. “저 사람 참 냄새를 잘 맡는다.” 이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냄새를 잘 맡는다는 뜻은 정반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냄새를 잘 구별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악취를 잘 맡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후각은 이제 악취만을 맡는 기능으로 타락해 버렸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이제 인간의 냄새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자신의 성적(..
2024.03.16 -
시심마(是甚麽) 세 번째 이야기, 삶과 죽음
인생의 시작은 태어남이요 그 끝은 죽음이다. 태어난 자는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부자로 태어나든 가난뱅이로 태어나든, 출세하여 대통령이 되든 거리의 노숙자로 살든 간에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자라면 그 누구도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이요 위험이다. (비바시불) 불교에서는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4가지 고통을 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기증 사실임을 알면서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를 피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꺼리게 되고, 심지어 생각하는 것마저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죽음이 두려워 다른 것에 몰두하려고 애를 쓴다. 우리는 결코 자기 죽음에 대해서..
2024.03.04 -
시심마(是甚麽) 두 번째 이야기 항아리의 비유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7~8십 년을 살면서도 삶 속에 어떤 뿌리를 내림도 없이 떠돌아다닌다. 우리의 삶이란 단지 이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뿐이다. 그래서 삶이 부여하는 것을 음미하지도 못한 채 지내다 보니 모두가 허망한 것뿐이라고 느낀다. 삶은 정녕 의미 없는 것일까? 의미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시심마(是甚麽)? 란 의미이다. 우리는 삶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한가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시심마(是甚麽)? 그러나 이 질문의 대답은 외부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답 ..
2024.03.01 -
삶의 길(제1부) 조고각하(照顧脚下)
조고각하(照顧脚下)란 이 말은 는 의미다. 눈비 내린 미끄러운 길이나 돌밭 너들길을 걸어갈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발밑을 잘 살피고, 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잘 살피며 가라는 의미다, 또 높은 계단을 오를 때, 때로는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런데 이 평범하고 상식적인 말이 어떻게 선가(禪家)의 보도처럼 회자하고 있을까? 『조고각하』란 말은 와 등 여러 곳에서 설해져 있다. 임제종의 오조법연(法演) 선사에게는 뛰어난 제자 세 명이 있었다. 세상에서는 이 세 사람을 삼불(三佛)이라고 불렀는데, 곧 불감(佛鑑 불감혜근), 불안(佛眼 불안청원), 그리고 불과(佛果 불과극근) 선사를 가리킨다. 불과선사는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라고 칭송받는 을 남긴 원오극근 스님을 말한다. 조고각하(..
2024.02.18 -
악착보살(齷齪菩薩)과 극락(極樂)
청도 운문사 비로전에 가보면 법당 천장에 용가(龍駕)가 매달려 있고 그 용가에서 내려온 밧줄에 악착스럽게 매달려 있는 동자를 볼 수 있다. 용가(龍駕)는 극락으로 가는 배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하며, 동자는 악착보살(齷齪菩薩)이라고 불린다.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을 타려고 이를 악물고 외줄 밧줄에 매달려 있는 동자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극락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곳이기에 그렇게 악착스럽게 외줄 밧줄에 매달려 있을까? 극락(極樂)은 불교의 사후세계로서, 특히 정토교에서 중시하는 곳으로 불교의 여러 불국정토 중 서방에 있다고 전해진다. 아미타불이 부처가 되기 전 법장보살(法藏菩薩) 시절 때 세운 48대원에 의해 생겼으며, 아미타불은 이곳에서 설법하고 있다고 경전에 나온다. 명문당에서 출간한 「불교대사전..
202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