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명산과 사찰(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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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을 삼각산 화계사 미륵전과 소품들
2018년 12월 화계사 주지 수암(秀岩) 스님의 원력과 신도들의 발원으로 조성했다는 미륵전에는 미륵불과 두 분의 여래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미륵전을 장식하고 있다.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눈팔매짓을 해 보았다. 미륵보살
2021.09.23 -
서울 삼각산 화계사
서울 삼각산(북한산) 화계사(華溪寺)는 고려 광종(949~975) 때 왕사(王師, 광종 19)와 국사(國師, 광종25)를 지낸 법인 탄문(法印坦文)대사가 인근의 부허동(浮虛洞)에 창건한 보덕암(普德庵)을 조선 중종 17년(1522)에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남쪽 화계동(華溪洞)으로 법당과 요사채를 옮겨 짓고 화계사(華溪寺)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광해군 10년(1618) 9월에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도월선사(道月禪師)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가문의 시주를 받아 1619년에 중창하였다. 수백 년이 지나 쇠락하여 보전하기 어려워진 사찰을 1866년(고종 3년)에 대덕 용선(龍船)과 범우(梵雲)스님의 발원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시주를 받아 대방과 요사채를 중수하..
2021.09.22 -
원주 치악산 국형사
강원도 전통사찰 제7호인 원주 치악산 국형사(國享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치악산 향로봉을 오르는 들머리에 있다. 이 절은 신라 경순왕 때 무착(無着)이 창건하여 고문암(古文庵)이라 하였는데, 일설에는 고문암이 아니라 관음보살을 모신 보문암(普門庵)이었다고도 한다. 무착대사는 이곳을 호법 대 도량으로 하여 불도에 정진하였다고 한다. 창건연대가 신라 시대라고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당시의 유물, 유적은 현재 남아 있지 않은 형편이다. 조선조 태조(太祖)가 이 절에 동악단(東岳壇)을 쌓아 동악신을 봉인하고, 매년 원주와 횡성, 영원, 평창, 정선 고을의 수령들이 모여 제향을 올렸다고 한다. 한편 조선 정조의 둘째 공주인 희희공주가 병을 얻자, 절에서 백일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2021.09.17 -
세계 최대 염주를 소장한 원주 치악산 관음사
원주 관음사(觀音寺)는 치악산 기슭에 있는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치악산은 우리나라의 5대 악산(岳山)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주봉인 비로봉은 해발 1,288m의 고봉(高峰)이다. 산이 높으면 계곡이 깊고, 깊은 계곡은 수려하기 마련이다. 원주시는 이들 치악산의 경관을 홍보하기 위해 11코스의 치악산 둘레길을 조성하였는데 이를 통해 입석사를 비롯하여 국향사, 보현사 등 많은 사찰 또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인데, 관음사는 11개 둘레길 코스 중 제1코스로 꽃밭머리길에 해당하는 들머리가 된다. 관음사는 비록 1971년에 창건된 신흥사찰이지만 세계 최대 염주를 자랑하는 통일기원 108대염주를 봉안한 덕분에 불자(佛子)는 물론 산꾼들의 입을 통하여 회자하게 된 사찰이다. 원주 관음사는 따로 일주문..
2021.09.11 -
명성황후의 출생과 관련된 사찰, 여주 대포산 대법사
여주시 가남읍 안금리 대포산(大包山) 기슭에 자리한 대법사(大法寺)는 근대 조선의 여걸로 추앙되는 조선 제26대 고종의 비인 비운의 황후 명성황후 민 씨의 출생과 관련된 사찰이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된 신생사찰이지만, 원래 이곳은 통일신라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통일신라 시대 진성여왕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 높이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하여 ‘미륵당’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다. 미륵당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언제 폐사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데 조선 19대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의 아버지이자 숙종의 장인인 민유중(閔維重: 1630~1687))의 묘막(墓幕)을 관리하던 명성황후 민 씨의 부친인 민치록(閔致祿:1799~1858)이 어느..
2021.08.30 -
여주 법천사
석불이 있다는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에 있는 법천사를 찾았다. 원주 법천사지를 탐사하고 귀경길에 법천사지의 옛절 법천사와 혹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호기심으로 찾아갔지만, 진입로를 찾지 못해 두 번이나 주변을 돌다가 찾게 된 사찰이다. 진입로는 인적이 끊어진 것 같은 좁은 오솔길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덤불로 덮여 있었다. 간신히 2~300m 정도 진입해 들어가니 공터가 나오고 가람의 전각들이 보였다. 전각이라야 대웅전과 비닐로 가림막이를 한 편액이 없는 전각과 요사채가 전부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누렁이 한 마리가 실없이 짖어댄다. 사찰의 분위기는 너무 적막하여 내가 기대한 사찰과는 너무나 달라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요사채에서 공양주로 보이는 사람이 나오길래 석불이 어디에..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