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각산 화계사

2021. 9. 22. 09:58국내 명산과 사찰

서울 삼각산(북한산) 화계사(華溪寺)는 고려 광종(949~975) 때

왕사(王師, 광종 19)와 국사(國師, 광종25)를 지낸

법인 탄문(法印坦文)대사가 인근의 부허동(浮虛洞)에 창건한

보덕암(普德庵)을 조선 중종 17년(1522)에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남쪽 화계동(華溪洞)으로 법당과 요사채를 옮겨 짓고

화계사(華溪寺)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광해군 10년(1618) 9월에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도월선사(道月禪師)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가문의 시주를 받아

1619년에 중창하였다. 수백 년이 지나 쇠락하여 보전하기 어려워진 사찰을

1866년(고종 3년)에 대덕 용선(龍船)과 범우(梵雲)스님의 발원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시주를 받아 대방과 요사채를 중수하였다.

이에 전각 곳곳에는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들이 남아 있다.

이후 대덕 용선(龍船)과 초암(草庵) 스님이 1870년에 대웅전을 중수,

1876년에 관음전을 중창, 1878년에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였다.

이 무렵 조대비의 시주와 상궁들이 출입이 잦아

사람들이‘궁(宮)절’이라고 불렀다.

 

근대에 들어와 화계사는 해외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 30여 년간 해외에서 포교 활동을 해온

숭산행원(崇山行願, 1927~2004) 선사의 포교 활동에서 비롯된다.

이에 따라 화계사는 1984년 국제선원을 개원하여

외국인 스님들의 수행공간을 마련하였다.

 

 

1991년에 정수 스님이 복합건물인 대적광전을 건립하여

기도와 신도 교육을 위한 공간을 갖추었다.

1995년에는 화계사불교대학이 설립되었고,

2018년 3월에 국제선문화체험관이 완공되어

국제선원, 참선 및 템플스테이 체험의 공간으로 운용되고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주지 수암(秀岩) 스님의 원력과 신도들의 발원으로

미륵존불을 봉안함으로써 현재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주요 문화재는 사인비구동종(보물 제11-5호) 과

보물 제1822호인 ‘화계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이 있다.

<자료 출처: 화계사 홈피>

 

대적광전

 

@범종각

범종각 안에는 법전사물(法殿四物)인 법고, 범종, 목어, 운판이 갖춰져 있다.

범종은 유독 2개가 걸려 있는데 작은 범종은 희방사에서 옮겨 온

사인 비구가 조성한 8개의 범종 중 하나다.

사인비구가 제종한 이들 8개의 범종은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종과 법고 사이의 작은 종이 사인비구가 조성한 범종이다

 

 

 

용뉴와 상대
요뉴와 상대의 육자대명왕진언

 

 

화계사의 이 범종은 용통(甬筒)이 없고,

용뉴(龍鈕)는 두 마리 용이 조각되어 있고,

상대(上帶)에는 <六字大明王眞言> 이,

유곽대 사이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 전파를 기원하는

불패(佛牌)가 조각되어 있고,

 

 

하대

하대(下帶)는 보상화문과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다.

(사인 비구의 범종에 자세한 설명은 본방

< 의왕청계사>와 <안성 서운산 청룡사> 참조)

 

옛 목어
(현재 )목어

@사인 비구가 조성한 8기의 동종은 다음과 같다.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보물 제11-1호),

문경 김룡사 동종(보물 제11-2호),

홍천 수타사 동종(보물 제11-3호),

안성 청룡사 동종(보물 제11-4호),

서울 화계사 동종(보물 제11-5호),

양산 통도사 동종(보물 제11-6호),

의왕 청계사 동종(보물 제11-7호),

강화 동종(보물 제11-8호) 등 8구이다.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건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단 위에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항마촉지인을 한 여래가 봉안되어 있다.

항마촉지인을 한 여래상은 대개 석가모니불로 여기지만

신라 이후에도 항마촉지인을 한 아미타불도 많이 있다.

일례로 국보 제45호인 부석사무량수전의 소조여래상인 아미타불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최근에 조성된 것이기는 하지만

협시불이 관음과 대세지보살임을 고려할 때

석가모니불로 보기보다는 아미타불로 보는 것이

삼존불의 배열상 타당한 것으로 사료 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삼존불의 뒤에 봉안된 후불탱이 아미타불 탱화이며,

지금의 이 불상 전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봉안되었다고 한다.

현판 글씨는 근세의 명필인 몽인 정학교가 쓴 것이며,

뒤에 있는 후불탱화는 1875년에 화산이 조성한 것이다.

 

신중탱
대웅전의 벽화사라쌍수 곽시상부(沙羅雙樹槨示雙趺)
대웅전의 벽화(탄생설화의 구룡 전경)

보물 제1822호로 지정된

‘서울 화계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서울 華溪寺木造地藏菩薩三尊像및 十王像一括)’은

지장보살, 도명존자, 무독귀왕의 지장삼존상과 시왕, 판관, 사자(使者),

동자, 인왕 등 총 25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존상이 주존 지장보살상과 동일한 조각 양식을 보이고 있어

영철(靈哲) 등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당당한 신체와 율동적인 옷 주름 묘사 등에서 수연(守衍),

영철로 이어지는 수연파의 작풍을 볼 수 있고,

지장보살상을 비롯한 여러 존상에서 코가 높고

콧날의 윗부분이 양미간의 높이에 비교해 유난히 돌출되게 조각된 것은

영철 조각의 특징으로 보인다.

 

비록 일부 동자상을 잃었지만, 명부전 내부의 주요 존상들은 대부분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명부전의 구성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조성연대, 조각가 및 봉안사찰과

이안 사찰 등에 관한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불상군으로 평가된다.

명부전의 편액과 주련은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라고 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금강역사

 

명부전과 대웅전 사이에 놓인 청동 주물인데 용도를 알 수 없다
삼성각은 대웅전 옆 돌계단 위에 있다.

@삼성각에는 칠성탱, 독성,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

@천오백성전

나한상을 모신 전각으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둔

항마촉지인을 한 여래상을 본존으로 두고

별도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 하단에 봉안했다.

 

 

 

전각명의 의미로 보면 본존은 당연히 석가모니불이지만

협시불인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을 보면 본존은 아미타불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둔 본존불은 무량수전의 본존불인 아미타불이다.

그러므로 이 또한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아미타불로 보아야 타당하다.

참고로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의 유촉을 받은 보살이므로

아미타불의 협시로 대세지보살 대신 모시지만,

석가모니불의 협시로는 모시지 않는 것이 통례이다.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3층의 현대식 건물로 1991년 주지 정수스님이 조성했다.

일 층에는 종무소로, 2층은 대적광전으로, 3층은 설법전으로 이용된다.

대적광전 법당에는 비로좌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불상 사이에 관음 대세지 문수 보현보살을 조성했다.

3존불의 조성 재료는 석고, 화강암이 아닌 두터운 종이(마분지 같은)나

목재패널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옆에는 지장보살의 불상과 후불탱화가 조성되어 있다.

 

좌로부터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불이 앞에 조성되어 있다.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신중탱
지장보살과 후불 지장탱

@보화루 편액은 추사의 제자인 진관호가 쓴 것이라고 한다.

 

 

미륵전 가는 길

 

 

 

(미륵전 앞에는 많은 소품상들이 조성되어 있다. 이는 2부에서 포스팅한다)

입구 좌측에 조성된 화계사 국제선원

@국제선원의 2층에는 <세계일화>라는 편액의 글이 보인다.

<세계일화>는 경허스님의 법맥을 이은

만공스님이 설한 유명한 법어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