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법천사
2021. 8. 24. 20:51ㆍ국내 명산과 사찰
석불이 있다는 여주시 대신면 보통리에 있는 법천사를 찾았다.
원주 법천사지를 탐사하고 귀경길에
법천사지의 옛절 법천사와 혹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뜬금없는 호기심으로 찾아갔지만, 진입로를 찾지 못해
두 번이나 주변을 돌다가 찾게 된 사찰이다.
진입로는 인적이 끊어진 것 같은 좁은 오솔길에다가
설상가상으로 덤불로 덮여 있었다. 간신히 2~300m 정도 진입해 들어가니
공터가 나오고 가람의 전각들이 보였다.
전각이라야 대웅전과 비닐로 가림막이를 한 편액이 없는 전각과 요사채가 전부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누렁이 한 마리가 실없이 짖어댄다.
사찰의 분위기는 너무 적막하여
내가 기대한 사찰과는 너무나 달라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요사채에서 공양주로 보이는 사람이 나오길래
석불이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비닐막이 씌어진 전각 안에 있다고 한다.
돌아와서 여주 법천사에 대해 검색해 보았지만,
사찰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고,
다만 전하는 이야기로는 법천사가 있는 현 위치 아래쪽에 절이 있었는데
그 이후 운흥암이 들어서고 이 운흥암 터에
1970년경에 지은 것이 지금의 법천사라고 한다.
이곳은 옛적에 탑이 많아 탑골이라 불렸는데
일제 강점기에 이 탑들은 모두 수탈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하는 이야기로는 위안동과 당남이 사이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 절을 태웠다고 한다. 그래서 금당은 사라지고
탑만 남아서 탑골 또는 탁골이라 불렸는데
그곳에 세워진 절이 운흥암이라고 하며,
그 절 역시 사라지고 그 터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편액이 없는 법당문을 열고 들어서니 석불이 보였는데 석조여래좌상이었다.
한참 석불을 보고 있는데 주지 스님이 들어와
이 석불을 봉안하게 된 내력을 들려주었다.
주지 스님의 말로는 이 마을의 한 농부가
밭을 갈려고 가래질을 하다가 불두(佛頭)가 없는 불신상(佛身像)을 발견하였는데
어느 날 불두(佛頭)가 또 발견되어 이를 불신에 올려놓으면서
접한 부위의 흔적을 가리기 위해 호분을 두껍게 칠하고,
불좌를 새로 조성해서 법당에 모신 것이 지금의 이 석불이라고 한다.
이 석불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조 여래상으로
광배는 없고 불신은 좌대 위에 봉안되어 있는데
불신에 비하여 하체가 넓어 안정감을 주고 있다.
좌대는 상대와 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석조 여래상은 호분이 짙게 칠해져 원형이 많이 가려져 있다.
불두의 나발은 검게 칠하여져 있고 육계는 호분으로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얼굴은 온화한 상으로 귀는 길고, 목에는 삼도가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착의 되어 있다. 짙은 호분 때문에 분명하지 않지만
가사 안에 입은 승각기는 일자이며, 띠매듭은 보이지 않는다.
어깨 위로 치겨 올려진 주름이나 각진 주름은
조선 시대에 나타나는 불상의 특징 보여주고 있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두 무릎 사이에 희미하지만,
부채꼴 모양의 접힌 가사가 보이는 데
이는 원래 모습이 아닌 좌대를 조성할 때 함께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수인(手印)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으로 불수(佛手)는 짧고
왼손은 무언인가를 쥐고 있는 형상으로 손바닥이 위로 향하고 있다.
좌대의 상대는 앙련이 부조되어 있는데 불상을 앉히고자
최근에 새로 조상한 것이고, 중대 없이 복련이 부조된 하대는
본래 것(원본)이라고 하는데 상대를 새로 조성할 때
석공의 손이 너무 타서 원본이 많이 훼손되어 있다.
이 석조 여래를 혹자는 미륵불이나 석가모니불로 보지만,
마을 사람들은 약사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약사불이라면 이 석조여래좌상의 가사와 승각기의 형상은
정능 봉국사 만월보전과 수락산 흥국사 만월보전에 봉안된
석조약사여래좌상과 흡사하다. 다만 수인이 약함을 쥐고 있는 것만은 다르다.
수인의 형태는 약사여래인 상주 용흥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20호)을 닮았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찰해 보면 법천사의 이 석조 여래상이
약함은 없어졌지만 조선 중기 이후에 경기 일대에서 조성되었던
약사불 중 하나가 아닌가 사료된다.
법천사의 이 석조여래좌상의 조성 시기는 대략 17~18세기로 보고 있는데
위 흥국사와 봉국사의 석조약사여래좌상도 같은 시기에 해당한다.
전각 뒤편에 있는 이 주춧돌은 옛 법당터에 있었다고 한다.
이로보아 옛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석조여래좌상을 보고 나오면서 대웅전에 참배하였다.
전각은 1995년에 지어졌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다포식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법당에는 석가모니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칠성탱, 산신과 독성탱이 봉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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