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 5. 23:33ㆍ야단법석
경전은 많지만,
부처님이 열반이 드신 후
2500여년이 지난 오늘 불교는 여러 종파가 생겼고,
소의 경전도 다양해졌다.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열반경, 해심밀경 등등…,
서울은 하나지만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개 이듯
부처님의 집으로 가는 길도 그와 같다.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오묘한 경전들은
부처님의 집에 이르는 한 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제일 당혹하는 것 중에 하나는
갖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수많은 경전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전이라면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게 된다.
그러나 경전이 많다고 해서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진리가 많은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하나이지만 다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그 사람들의 이해력에 맞추어 설하신 까닭에
그 길이 많은 것에 불과하다.
같은 물인데도
장소와 목적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진다.
수돗물, 샘물, 우물물, 약수물, 흙탕물 … 등등.
또 그릇가계에 가보면 여러 가지 모양의 다른 그릇들이 있다.
항아리, 컵, 접시, 물병 … 등등.
그러나 이 모든 그릇들은 똑같은 목적으로 만들어 졌을 뿐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인데
각기 다른 시대와 종파에 따라서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고
이 종파니, 저 종파니 하고
각기 다른 이름과 모습으로 숭배되고 있다.
큰 호수에는 호수가로 내려가는 여러 길이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어느 길을 내려가든지
똑같이 목욕을 할 수도 있고, 물통에 물을 담아 올 수도 있다.
이쪽 길이 저쪽 길보다 훨씬 좋다고 다투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팔만대장경 속의 모든 경전도,
아니 수천만의 가르침도 각각 다른 위치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전하는 한 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으로 경전을 접하는 자세는 무슨 무슨 경전이 아니라
진리에 대하여 가장 진지하고
열렬한 가슴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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