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개인 오후 당현천 요화(姚華)들의 유혹

2021. 5. 24. 00:40포토습작

 

치과에 신경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

느닷없이 일기예보에도 없든 비가 다시 내린다.

나이 들면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 없이 찾아드는 이런저런 병처럼.

다행히 신경치료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 병원문을 나서니 비는 그쳤다.

호랑이는 이빨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귀소(歸巢)하여 삶을 마감한다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상에서 이빨을 고치며 사는 유일한 동물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자부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니

치과병원을 들를 때마다 씁쓰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녕 이렇게도 삶에 애착이 깊었던가.

삶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지는 나이인데.

신경치료 하느라 마취된 것을 풀겸 당현천을 걸었다.

이런저런 부질없는 생각들이 흐르는 물소리처럼 마음에 여울을 짓는다.

 

비 개인 오후라 그런지 물방울 머금은 꽃들이 요염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삭막한 길이였는데

오색의 꽃들로 새 단장을 하고 있었다.

유독 붉은 꽃이 눈에 들어온다. 개양귀비꽃이다.

작년에 심어 놓은 모양인데 어느새 이렇게 자라났다.

개양귀비의 이명(異名)이 우미인초(虞美人草)라 했던가.

여춘화(麗春花)라 했던가.

개양귀비 꽃말이 재미있다.

양귀비꽃의 꽃말은 ‘위안’과 ‘망각’인데

개양귀비의 꽃말은 ‘속절없는 사랑’이다.

하긴 삼라만상(森羅萬象) 그 어느 하나 속절 있는 것이 있던가.

인연으로 왔던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들인데….

그래서 그런가, 어제 내린 비 탓인지

성미 급한 놈은 세상을 일찍 하직하고,

벌써 한 철 누렸다고 골골대는 놈이 있는가 하면,

팔팔하게 물이 오른 놈들은 요염한 자태로 길손을 유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