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 소고(小考)

2012. 7. 26. 22:48붓다의 향기

                  

 

 

무상(無常) 소고(小考)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유월에 핀 꽃은

열흘 굶은 노인네 뱃가죽인데

 

칠월에 핀 너는

누구를 흔들려고

그리도 고혹적인가?

 

아서라, 자랑마라.

네 그리 붉은 본들

한철 피는 꽃인 것을.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데 장미를 보니 한 달 이상이나 가는 것도 있다.

 5월에 본 장미가 7월도 중순이 넘어가는 데도 피어 있는 것을 오늘 또 보았다.

내 모르는 사이에 피고 지고했는가. 어찌 되었던 분명한 것은 핀 것은 지고,

태어난 것은 죽게 마련이며, 만들어진 것은 부스러지고 마모되어 소멸된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인간 역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고,

이 우주 또한 성주괴공(成住壞空)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머물지 못한 무상(無常)함이여, 정녕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가.

모든 것이 무상의 틀 안에 있다면 생(生)한다고 무엇을 즐거워할 것이며,

멸(滅)한다고 무엇을 슬퍼할 것인가. 정녕 무상(無常) 그 넘어 무엇이 없을까?

 

 

부처님의 모든 교리의 핵심은 바로 이 무상에서 시작된다고 하는데 무상의 참 뜻은 무엇일까?

무상의 도리를 깨달아야 부처님이 설한 공(空)의 의미를 깨닫는다고 하는 데...

 

 

무상에 대한 <유마경> 「제자품」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유마거사가 병을 앓자 부처님이 10대 제자들에게 문병을 보내려 하는데

 모두들 유마거사에게 혼이 났던 이야기를 들어 문병을 감당할 수 없다고 아뢴 이야기 중 마하 가전연의 이야기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 가서 병문안 하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옛날에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실 때

법문의 요지를 너무 간략하게 설하시어 제가 그 의미를 풀어

<이것이 무상(無常)의 뜻이요, 고(苦)의 뜻이요,

공(空)의 뜻이요, 무아(無我)의 뜻이요, 적멸(寂滅)의 뜻이요>다.」 라고 했더니

그때 유마거사가 와서 말하기를

 「가전연이요, 생(生)하고 멸(滅)하는 마음의 행을 가지고 실상의 법을 말하지 마십시오.

가전연이여, 모든 법이 필경에는 생함도 아니요, 멸함도 아닌 것이 무상의 뜻이요,

다섯 가지의 수음(受陰)이 공(空)하여서 일어남이 없음을 통달하는 것이 고(苦)의 뜻이요,

모든 법이 구경에는 소유(所有)가 없는 것이 공(空)의 뜻이요,

아(我)와 무아(無我)가 둘이 아닌 것이 무아(無我)의 뜻이요,

법이 본래 그러하지 아니하여 이제 새삼 멸함이 없는 것이 적멸의 뜻이지요.」라고 했습니다.

 

마하 가전연이 누구인가? 마하가전연은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교리에 제일 밝은 자로 추앙받는 자 아닌가.

그런데 그조차 유마거사에게 혼이 났으니...

 

 

                                          

 

부처님이 설한 법(法)이라고 하면 수없이 많지만, 이를 간추려 보면

하나는 유위법(有爲法)이요, 다른 하나는 무위법(無爲法)이다.

유위법에는 무상(無常), 고(苦), 그리고 공(空)과 무아(無我)를 말하고 무위법에는 적멸(寂滅)을 말한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교리에 제일 밝다는 마하가전연이

유마거사에게 혼이 난 이 법문의 요지는 무엇일까?

다른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먼저 무상에 대한 의미만 간략히 살펴보자.

 

 

 

 이 법문에서 난 무상의 의미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생멸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실상(實相)의 법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며,

둘은 법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무상의 의미라는 것이다.

 

 

상식적인 견해로 본다면 생겨나서 없어지기까지 변화하거나

그 반대로 되는 것이 무상의 의미인데

유마거사는 정 반대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1) 무상함이란 변화를 의미하며 한 순간도 머무름이 없거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머문다는 말은 상(常)을 의미하며,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멸(滅)을 의미한다.

 

 

2)변화란 계속적이며 순간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변화하는 것 중에서 어느 특정한 순간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일례로 달리는 기차를 향해 셔터속도 500분의 1초정도 찍으면 마치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그 짧은 시간에도 모든 것은 변하는 데 그 기차만 머물고 있었던 말인가.


 

 

3)존재나 현존의 개념은 머문다는 개념과는 불가분의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일종의 계속됨이거나 머물고 있는 실체이어야 한다.

머무름이 없다는 것은 존재함도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으로 사물들이 순간적이라면 그들은 공(空)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존재란 좌표상의 한 점과 같아서 그 점이 찍힌 공간에 다른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이 있던가. 볼펜 한 개가 차지한 그 공간을 동시에 다른 것이 점할 수 있겠는가?

 

 

 4)실제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은 이른바 머무름의 순간 곧 머무름이 없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이다.

단지 꺼진 상태만이 가능하며 꺼진 상태와 더불어 야만 계속적인 생겨남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함으로 저것이 멸한다는 인연법을 생각해 보라.

 

 

 

5)이러한 머무름이 없음의 머무름이 바로 무상의 본체이며

 나타남과 사라짐의 동시성과 똑같은 것이다.

 

 

 무상함의 의미는 일어남도 아니고(꺼짐이고) 그침도 아니다(나타남이다.).

 말하자면 불생(不生: 사라짐)과 불멸(不滅: 나타남)의 동시성이 무상의 참뜻이라는 의미가 된다. 

 

 

 

번뇌 없는 삶은 없다. 고통 없는 삶은 없다.

열흘 붉은 꽃이 없듯 태어난 자는 모두 죽음의 번뇌를, 죽음의 고(苦)를 벗어나는 길은 없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다. <이것이 고(苦)요, 이것이 고(苦)의 원인이며,

이것이 고(苦)를 없애는 길이요, 이것이 고(苦)를 벗어난 경지다.>라고.

이것이 유명한 사성제의 의미다. 그러나 이를 깨쳐보면 생사일여(生死一如)라고 한다.

이 말은 다름 아닌 무상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고(苦)가 무엇인지 깨치면 고(苦)가 곧 낙(樂)임을 안다는 의미다.

무상을 깨우치면 무상이 곧 열반으로 가는 길임을 안다는 것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의미다.

경전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무상을 디딤돌을 삼아 필경공으로 증오(證俉)한다는 의미이다.

 

 

 

허공을 붙잡으려는 사람은 없다. 허공은 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치를 알면 공허함을 쫓지 않는다. 그것이 깨달은 자의 도리다.

그래서 금강경이 마지막분에서 이르지 않았는가?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이

如夢幻 泡影(여몽환포영)하며

如露亦如電(여로역여전) 하니

應作如是觀 (응작역시관)하라.

<金剛經/應化非眞分>

 

 

 

일체 유위법이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거품이거나 그림자 같은 것이며

또한 이슬 같기도 하며

또한 번개 같기도 하니

마땅히 모든 것을

이와 같이 볼 지로다. 

 

 

 

 

 

  

한철 붉어려고

긴 겨울 지난 꽃이여

시절인연 다하니

푸른 잎은 시들고

붉은 꽃잎은 떨어지는구나.

 

네 가는 것이 서럽다고

내 슬퍼하지 않으려니

또 한 겨울 지나

유월이 오면

다시 필 꽃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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