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한번 차려볼까요?

2009. 8. 28. 22:24붓다의 향기

 

(신흥사 통일대불)

 

살림한번 차려볼까요?

 

예나 지금이나 시집 장가가는 일을「살림 내준다.」

「살림을 차린다.」고 말합니다. 이 <살림>이란 말은

불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경전공부를 한다는 뜻입니다.

원래는「산림(山林)」인데 자음 접변되어「살림」으로 된 것입니다.

따라서 <법화경>을 공부하는 것을 <법화경 살림한다.>고 하고,

<화엄경>을 공부하는 것을 <화엄경 살림한다.> 고 하는 것입니다.

 

산림(山林)이라는 말의 산(山)은 <파인아산(破人我山)>이라는 말에서,

임(林)이란 <양공덕림(養功德林)>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는 무명(無明)이 없는 공덕(功德)의 숲을 키워서

다른 사람들을 이익 되게 해주고

나는 항상 부처님 마음자리를 가까이 해서

하루빨리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어

공덕의 숲을 기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팔만대장경의 방대한 내용도 간추려 보면 사실

『인아산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서 살라』는 뜻이 됩니다.

인아(人我)의 <인(人)>은 남이란 뜻이고, 객관이란 뜻도 됩니다.

<나> 아닌 일체 우주를 남이라고 합니다.

육체 이것만 <나>이고 다른 것은 다 <남>이라고 생각하고

<내 것>, <네 것>만 따지면 <인아산>이 높아집니다.

<인아산>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무명(無明)은 더해가고

사회는 점점 너와 나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

아수라의 전장(戰場)으로 변하고 혼탁해 집니다.

<육체가 내가 아니다> <내것이 정녕 내 것이 아니구나>

이렇게 마음을 돌려 먹어야 아까워할 것이 없기에

이 육체를 가지고, 내 것을 가지고 남을 위해 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양공덕림」이란 말이 뒤에 따른 것입니다.

 

「공덕을 심는 산림」이란 이 말은 육체가 자기 주인인 줄로만 알고

마음이 육체의 종노릇을 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데 쓰자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배우자요, 자식이 되기 때문에

「살림 낸다」「살림 차려 준다」 고 한 것입니다.

 

중생들은 전도된 가치관으로 육신을 <나>라고 하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을 실상으로 여기고 살며

주관 객관을 세워서 <인아산>을 높이고 무명(無明)의 살림을 차립니다.

 

세상에 회자하는 가르침은 참으로 많습니다.

진리인 것도 있고 진리 아닌 것도 많습니다.

진리라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고

진리가 아니라 해서 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많은 가르침 중에서

가장 위대한 가르침은 오로지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로 <나>에 대한 깨달음의 가르침이기 때문이요,

삶의 궁극적 목표를 바로 제시하는 참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혼탁한 이 사회에서 진정으로 <나>의 갈 길을 일러주는

그런 가르침에 살림 한번 차려봅시다.

<아함경>도 좋고, <반등경>도 좋고 <반야경>도 좋고

<유식>이나 <중론><법화>나 <화엄>도 다 좋습니다.

취향에 따라 근기에 따라 시작하면 됩니다.

그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인 이상 근본 말씀이

하나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림한번 차려 볼까요.

그러나 서둘지는 마세요.

진리의 참 맛은 느긋할수록 진국을 느끼게 됩니다.

아름다운 미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덤덤해지겠지만

진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국을 느끼게 됩니다.

 

부처님이 심어신 열매(佛果:깨달음)를 쉬이 따기 위해

첫날밤부터 서둘지 않아도 됩니다.

우물에서 숭늉 바라듯 해서도 안 됩니다.

느긋하게 그저 꾸준히 머리에서 발끝까지

한 구절 한 구절 애무하면서...

그래야 제 맛을 느낌니다.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묵은 술이 향기가 나듯

진리의 향기도 그러합니다.

눈으로 마음으로 푹 익혀야 제 맛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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