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3. 06:51ㆍ삶 속의 이야기들
어떤 만남
일주일 동안 내게 주어진 단 하루의 휴식시간... 일요일뿐이다.
주일 내내 몸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집에서 빈둥 되는 것이 내키지 않아
산행을 나섰다. 지난번 눈 쌓인 길이라 시간에 쫓기어
미처 돌아보지 못한 문수봉의 바위들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일까,
거기다 북한산의 진달래도 궁금했다. 피어 설까 하는.
9시가 넘어서 집을 나섰다.
태능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불광역에서 다시 3호선 갈아타고
구파발로 가서 버스로 이동하여 삼천사계곡에서 문수봉만 오르기로
마음먹었다. 원래 근교산행은 도깨비처럼 가면서 결정하니까.
그런데 멍청하게도 무엇을 생각했는지 불광역에서 그냥 빠져 나왔다.
다른 등산객과 밀려서 생각 없이 그냥 빠져나오고 말았다.
한 시간 이나 걸리는 전철 속에서 엉뚱한 생각에 빠졌나 보다.
사건은 언제나 느슨한 마음, 방심한 상태에서 일어나는가 보다.
불광역에서 오르는 코스는 내 다니는 코스가 아니라 좀 서먹했다.
전철로 다시 돌아갈까 생각하다가 내친 김에 그들을 따라 가 보기도 했다.
버스길을 벗어나 산행으로 들어갔다. 산행 들머리를 보니 알 것 같다.
내 늘 다니는 던 족두리봉 뒤로 연결되는 코스다.
차라리 이 코스라면 독바위역에서 시작되는 코스가 볼 것도 많고 향로봉,
비봉으로 이어지는 코스로는 더 좋은데...
잘못 낀 첫 단추... 산을 오르면서도 마음이 별로 밝지 못하다.
다행이 능선마다 구석구석 진달래 피어 있어 좋았다.
북한산에도 봄은 온 모양이다.
족두리봉을 돌아서 향로봉으로 향했다. 마음이 밝지 못해 열이 난 것일까.
몸이 좋지 않아서 일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갈증이 났다.
찬물은 준비가 없었다. 더운 물만 가지고 간 것이 후회스러워졌다.
그것이라고 마시려고 배낭을 내렸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다람쥐 한 마리가 숲에서 튀어나 나를 빤히 쳐다본다.
무엇을 달라는 가 보다. 목마른 것은 아닐 테고.
언젠가 눈이 쌓인 수락산 계곡에서 산비둘기 한마리가 내 옆에 내려왔든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녀석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싶어 배낭에서 사과 하나를 꺼냈다. 한 입 깨물어 던져주었더니 잽싸게 챙긴다. 몇 입을 베어 던져 주었다. 도망도 가지 않는다. 다람쥐들도 이제 익숙해져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가 보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여기서 나를 기다렸을까?
내가 이 코스를 택하게 된 것도 이상했고,
그리고 쉬어갈 곳도 아닌 여기서 갈증이 나서 멈춘 것도 그렇고 ....
생각하니 참 묘한 인연이다.
만남이란 인연은 참 묘하다. 우연 이라고 치부해버리기는 뭐가 켕기는 듯 한 마음,, 작정한 것도, 생각해 본 것도 아닌데... 그런 인연은 의문이 따른다.
전생에 만남이 있었을까 하는. 그런 인연은 대개 즐겁고 기쁜 장소가 아니라 무엇인가 뒤틀린 그런 날 더하다. 그런 만남은 참 묘한 기분을 남긴다,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다람쥐 눈방울이 참 맑았다.
야금야금 먹는 꼴이 이쁘게도 보였다. 마치 갓난애 옹알대듯 하는 입놀림.
다시 배낭을 챙기는데 왠지 이별이 서럽게 느껴졌다.
흔한 그것도 산에서 만난 다람쥐 한 마리인데.
무슨 인연일까? 전생의 어떤 만남이 있었을까?
문수봉에 이를 때까지 나를 떠나 보내는 다람쥐의 눈빛이 선하다.
(영상: 북한산0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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