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바라밀을 닦는 이유

2006. 10. 25. 07:01경전과교리해설

 

반야바라밀을 닦는 이유


경에 이르기를

[온갖 중생이 보시의 복처(福處), 지계의 복처,

수정(修定)의 복처와 권도(勸導)의 복처에 나아가고 싶거나,

재물의 복(財福)과 법의 복(法福)의 처소에 나아가려면

당연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고 했다.


또 경(經)에 이르기를

[보살마하살은 간탐(慳貪)하는 마음과

파계(破戒)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嗔心)과 게으른 마음과

산란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고 했다. 그럼으로 진리를 구하고

최상의 아뇩다라삼먁보리를 구하고자 하는 자라면

보살이던 아니던 마땅히 육바라밀을 닦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여섯 가지 마음은 바른 깨달음에 장애가 되고,

나쁜 것이기 때문에 여섯 가지 바라밀을 가지고

무명의 마군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유컨대 보시를 행할 때

만약 간탐 하는 마음이 있으면 보시가 청정하지 않게 된다.

이른바 좋은 물건을 뒤로 놓아두고

덜 좋은 것에 먼저 손이 가게 되니

그 보시는 청정할 수 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기분을 내어 좋은 물건을 베풀어 준다고 해도

많이 주지 못하고,

설령 곳간의 물건은 베풀어 준다 해도

장롱 안의 물건은 주지 못하며,

설령 장롱 안의 물건을 꺼내 베풀어 준다고 할지라도

다 주기는 마음에 거리낌이 남아 모조리 주지 못하나니,

이는 모두가 간탐 하는 마음 때문이다.


진실로 도(道)를 얻은 자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면서

온갖 법은 <나>가 없고 내 것이 없고

모든 법은 모두가 <공>하여 꿈과도 같고

요술과도 같은 줄 깨달아 알았기에

경전에서 나오듯 풀과 나무를 버리듯

머리와 눈과 골수까지도 주저함이 없이 보시하였다.

그럼으로 비록 아직 도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항상 이 간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려면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한다.


진실로 깨달은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도(道)를 얻기 때문에

파계(破戒)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보살 또한 반야바라밀을 행한 까닭에

파계하는 일을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율은 모든 착한 공덕이 머무르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땅은 온갖 만물이 의지하는 곳이 되는 것과 같다.

파계하면 오히려 작은 도(道)도 얻지 못하는 데

하물며 최상의 지혜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는가?


그럼으로 이런 이유로 파계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하며

또 더 나아가 보살이 찾는 진리의 법이란

중생을 안락하게 하는 것이 되어하는데

만일 파계하면 온갖 중생을 괴롭히고

어지럽게 할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 파계(破戒)하는 생각조차도 내지 않아야 하거늘

하물며 어찌 파계하는 일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소승과 모든 범부조차도

오히려 성내는 마음을 절제하거늘

하물며 진정한 보살의 도를 구하는 자로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고 하는 자가

성냄을 이기지 못한다면 달리 무엇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그럼으로 모든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몸은 곧 고통의 그릇이니

모든 행위의 법이 스스로 괴로움을 받게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비유컨대 마치 죄를 범한 사람은

남이 형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은 자기의 업으로 형벌을 오게 한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자기의 마음을 지키면서

악(惡)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마치 사람이 거친 바람과 비와 추위며 더위를 만난다 해도

그 바람과 비와 추위에 대하여 어리석게 성을 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참된 진리를 구하는 자는

곧 부처님이 되기를 구하는 자이니

이는 곧 대비(大悲)로써 근본을 삼는 자가 되어야 함]

을 알아야 한다.


대비란 원이 클수록 크게 이루어지는 것이니,

만일 성을 내게 된다면 뜻하는 작은 원(願)이던 큰 원(願)이던

원을 상실하게 된다.

성을 내는 사람은 세간의 즐거움조차 얻지 못하는 데

하물며 도(道)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는가?

성을 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즐겁게 할 수 없는데

어찌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겠는가?


게으른 사람은 세간의 뛰어난 일조차도 오히려 이루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비유컨대 나무를 비비어 불을 내려 할 때 자주 쉬게 되면

불을 얻을 기약조차 없는 것과 같다.


산란한 마음은 마치 바람 속에 켜져 있는 등불과 같아서

비록 광명은 있다고 할지라도 바람에 흔들려

물건을 잘 비추지 못하는 것처럼,

산란한 마음속에 있는 지혜도 역시 그와 같다.


지혜 - 이것은 바로 온갖 착한 법의 근본이다.

만일 이 지혜를 성취하고자 하면

먼저 마음을 가다듬은 연후에야 이룰 수 있다.

비유컨대 마치 미친 사람이나 술에 취한 사람은

자기의 이익이나 다른 이의 이익이나 곱고, 추한 일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이

산란한 마음도 역시 그와 같다.

세간의 좋은 일 조차 오히려 잘 알지 못하는 데

하물며 출세간(出世間)의 법을 닦을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쉽고도 단순한 일조차 행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미묘하고 깊은 이치를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비유컨대 마치 눈이 없는 사람은

때로는 구덩이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길이 아닌 가시밭길, 자갈밭 길을 들어가기도 하는 것처럼,

지혜 없는 사람도 역시 그와 같아서

지혜로운 눈이 없기 때문에 삿된 법을 받아 집착하고

바른 소견을 받지 못한다.

이와 같은 사람은 세간의 일상인 일조차도 이루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찌 높고 바른 최상의 지혜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행한 이 힘 때문에

이 여섯 가지 폐단을 능히 막고

여섯 가지 바라밀을 청정하게 하듯

진실로 진리를 구하고,

부처되기를 원하는 자라면

마땅히 이와 같은 이유로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대지도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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