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와 오이

2006. 9. 30. 00:48해학의 경귀들

 

 

 

토마토와 오이

채소 농사를 짓는 철이 엄마와 순이 엄마가 우물가에서 만났다.

순이 엄마가 물었다.

『철이 엄마, 철이 엄마네 토마토는 빠알같게 잘 익었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소.

우리네 토마토는 퍼렇게 크기만 하지 도대체

익을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러자 철이 엄마가 말했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한번 해볼려오?』

귀가 솔깃해진 순이 엄마가 다굳쳤다.

『토마토 농사가 잘 된다면야 무슨 짓인들 못하겠소.

좋은 비결이라도 있으면 빨리 일러주오.』


그러자 철이 엄마가 못이기는 체 하고 말했다.

『마침 보름이 얼마 안 남았으니 말이요,

밤에 옷을 홀랑당 벗고 토마토 밭을 걸어다녀요.

그러면 토마토가 부끄러워 아침에는 새빨갓게 익을거요.』

두 아낙내들은 깔깔대다가 헤어져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두 아낵내는 같은 우물가에서 만났다.

철이 엄마가 물었다.

『내 말대로 한번 해봤수? 그래 어떻게 되었소?』

그러자 순이 엄마가 말했다.

『철이 엄마 말대로 했더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오.

토마토는 그냥 퍼렇게 변한 게 없는데 말이요

글쎄 오이가 10센티나 더 크지 않았겠소.』


유치원 어린애들이라면 이 유머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성인이라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그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성인들이 행동하는

어떤 행동이나 사상, 혹은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영역이나 범위를 나타내는 영역 내지 경계

소위 계(界)란 것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런 우화에 웃는데

유치원 어린애들은 웃지 않는 이유가

바로 어린 아이는 성인의 성에 대한 그런 계(界)와

그 어떤 공통된 느낌이나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경전에 말하는 궁극적 실체에 대한 이해는

주관적인 기반과 객관적인 기반과의 조화에 기초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공통된 혹은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관계자가 같은 계(界)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가령 장님은 신체적으로는 정상인들 사이에 있다고 해도

한 광경을 바라보는 경험이 정상인들이 보는 것처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신체적 현존이 그에게 보는 경험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중생이 부처의 바른 교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부처가 느낀, 깨달은 그 의식과 같은,

공통된 계(界)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또는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존재나 비존재란 단지 하나의 한정된 계가 미리 정해 저 있거나

암시되어 있을 때에만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떤 특정한 계로 제한하는 바로 이런 행위가

중생의 성향과 정각을 이룬

부처의 그것과의 근본적으로 차이인 것이다.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중생들은 기껏해야 문자를 통한 지식이나 경험적 지혜를 통한

그런 제한된 것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조망함으로써 계(界)를 한정짓지만

부처의 깨달음은 총체성의 관점에서 사물을 조망함으로써

바로 그 어떤 종류의 한정이나 속박의 요소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와 중생이 느끼는,

체감하는 계(界)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조사나 부처가 이르는 갖가지 깨달음의 경지는

바로 이런 총체성의 계(界)에 근거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와 같은 공통의 계(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것이며,

난해한 선문답으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불교공부는

곧 인간의 계(界)가 아닌 다시 말해서 18계(界)가 아닌

부처의 차원에서의 계(界)의 공통되는 것을 느끼는

그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육근, 육경, 육식을 벗어난 소위 18계를 벗어난

부처의 계와 공통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삼매요, 선(禪)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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