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8. 24. 22:41ㆍ경전과교리해설
사랑과 증오 속에서 조화를
분노는 끝이 없습니다.
분노는 또 다른 형태의 분노를 낳습니다.
분노는 대상을 바꾸어 또 다른 분노를 낳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분노는 분노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증오는 증오로 풀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법구경>에 이르듯 분노는 분노로 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증오는 증오심으로 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번 분노심을 가지면,
한번 증오심을 품게 되면
사랑도, 자비도 모두가 아수라로 변해버립니다.
아수라가 누구입니까? 아수라는 싸움꾼입니다.
힘이 센 귀신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강자가 되려고,
힘센 자가 되려고 합니다.
모두들 아수라 귀신이 되지 못해 안달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귀신, 재물의 귀신, 애욕의 귀신,
도박의 귀신, 인기몰이의 귀신.....
귀신들은 교활하기 합니다.
분노와 증오심으로
사랑과 자비를 정당화 시키고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으로 회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귀신들만의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아직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랑과 자비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선한 자와 악한 자가 공존 하는가 봅니다.
사랑과 자비심도 함정이 있습니다.
지나친 사랑 뒤에는 미움이 있습니다.
집착하는 자비심의 뒤에는 분노가 있습니다.
증오와 사랑, 분노와 자비심,
이들은 모두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증오하면 사랑을 찾게 되고,
분노하면 자비를 갈구하게 됩니다.
사랑이 지나치면 미움이 따르고
자비심이 지나치면 분노가 따르게 됩니다.
그럼으로 진정한 진리의 의미는
여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상대적인 것을 수용하는 거기에서
조화하는 참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미움이 일지 않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분노가 일지 않는 자비심이 필요합니다.
중도(中道)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사랑입니다.
대자대비의 부처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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