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방꾼들

2006. 7. 27. 23:59야단법석

 

 

 

훼방꾼들


자신의 주인을 찾아가는 길은 영적인 수행의 길입니다.

그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완전히 깨어있는 의식에서 일으키는 수행입니다.

무의식적인 상태에 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의미 있는 것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단순한 믿음일 뿐입니다.

아무 근거도 없습니다. 그러나 의식하게 될 때 오직 그때만이

자기가 단지 터무니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들이 믿고 있었던 것은 단지 자기들 자신을 놀리고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수행에는 훼방꾼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허물에 얽매이거나 형식적인 계율에 얽매여 수행의 본 목적을 잊어버리고 겉도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이런 훼방꾼들 때문입니다. 흔히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수행자는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고기도 먹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출가자나 재가자나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얽매여 마음의 갈등을 일으켜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의 독재자요, 전쟁광인이라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술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으며, 고기도 먹지 않았고 오로지 채식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어느 누구도 구도자라고, 수행자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수행의 본분은 이런 외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영적 수행의 길에서 망심으로 말미암아 계율을 범하여 이로 인하여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스스로도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자포자기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인지 부랑자인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나락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는 <증도가>에서 이르듯

『중죄를 범하면 보리를 막는 줄만 알 뿐 여래께서 비결 열어 두심은 보지 못하도다.』라는 말과 같이 궁극적인 수행의 본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수행의 목적은 계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을 찾는 일입니다.

근본만 얻을 뿐 외형적인 형식에 매여서 수행을 방일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재물을 좋아합니다.

영적인 수행의 길에도 최소한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속인이든 출가자이던 간에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금덩이를 좋아합니다. 금은 바로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한때는 허리우드의 <맥케나의 황금>과 같이

일확천금을 노린 <노다지>를 주제로 한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황금으로 유혹하는 훼방꾼들 앞에 현대인들의 진심은 예나 지금이나 무참히 짓밟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이란 어떤 가치를 갖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금에게 부여한 가치는 단지 하나의 관습일 뿐입니다.

금에게는 본래 가치라는 것은 없습니다. 금에게 가치를 부여한 것은 우리들 자신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금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동물이나 새들은 전혀 금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금을 개한테 던져 보십시오. 뼈다귀와 금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개는 당연히 뼈다귀를 선택할 것입니다. 금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어떤 본질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지 사회적인 투영일 뿐입니다.

사회가 그것을 가치 있다고 생각하면 가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치 없다고 생각하면 뭐든지 가치 없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사회적인 투영이라는 것도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변하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국가에서는 다른 종교는 모두가 이교도가 됩니다.

한국은 일부일처제의 제도인데 이슬람은 일부다처제를 신봉합니다.

한국인들은 보신탕을 즐기는데 프랑스인들은 고양이를 별미로 삼고,

태국인들은 산 원숭이의 골을 애호한다고 합니다.

요즘은 다이어트 열풍이 심각할 정도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의 몸무게가 60kg이라고 한다면 비만에 속합니다.

그러나 지구에 있는 동안은 60kg 이지만 만약 인공위성을 타고 달나라에 가서 몸무게를 잰다면 10kg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의 비만이 달에서는 체중미달이 될 것입니다.

달과 지구의 중력 차이가 6분의 1이기 때문입니다.


복지부에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의 최저임금은 87만원이라고 합니다.

이는 가난한 생활자의 수입이 됩니다. 만약 미국에서 이런 봉급을 받는다면 거지와 다를 바 없는 슬럼가의 생활도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라면 하녀까지 두고 생활할 수 있는 봉급이 됩니다.


사회적 환경이 달라지면 가치기준이 달라집니다.

사회적 가치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할 뿐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 변하는 시공간에서 진실로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것은

사회적 가치기준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깨달음이요, 영혼의 향기를 맡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길을 유혹하고 가로 막는 훼방꾼들의 속임수에

유혹되거나 넘어가서 괴로워하거나 고통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