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에 비친 허상에 속지말자

2006. 6. 25. 09:16야단법석

 

 

 

거울에 비친 허상에 속지말자


자신의 자화상을 그릴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인간이다.

그 어떤 동물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람은 그 자신을 그릴 뿐만 아니라

그는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다.

그리고 반사된 영상 속에서

그 영상을 보고 있는 자신을 보는 그런 일을 끊임없이 거듭한다.

이 때문에 자기의식이 일어난다. 에고가 탄생한다.

이것으로 인해 실재보다 반사된 영상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그대의 마음을 주시해 보라.

그대는 실재의 여자보다 외설적인 사진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있다.

사진이 인간의 마음을 교묘히 사로잡고 있다.

이렇게 사람들은 허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를 알면 허구는 사라진다.

자기 인식은 허구 속에서는 불가능 하다.

그대는 거짓보다는 진실에 좀더 흥미를 가져야 한다.

거울은 깨어져야 한다. 그대는 본래면목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더 그대 자신과 멀어질 것이다.

영상, 허구, 꿈, 생각, 이미지 같은 것들에 흥미를 갖는

이러한 관심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알 수 없게 하는 근본 원인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쏟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가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것 또한 거울이다. 그대는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 관해서는

전혀 찾아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관해서만 끊임없이 귀를 기울인다.


이리하여 그대는 그대 자신을 장식하는 데 열을 올리게 된다.

그대의 도덕과 그대의 선행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대가 아름답고 착하고 정직하고

종교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장식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손실이 뒤따른다.


그대가 사람들에게 종교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그대가 종교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그대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으로 그대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한번 이 덫에 걸리게 되면

그대는 모든 삶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는 행복에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보다는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왜냐하면 사념(思念)은 그대의 갈증을 풀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념은 그대의 굶주림을 해소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대가 잘 먹고 산다고 생각하든

못 먹고 산다고 하든 이런 것은 별문제 아니다.


그대는 그대의 몸을 속일 수 없다.

진짜 음식이 필요한데 그림의 떡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짜 물이 필요한데

물에 대한 그림이나 화학방정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H2O는 그대의 갈증을 풀어 줄 수 없다.

그대가 일단 이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진실로 진리를 찾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대 자신을 주시하라.

그대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현실이 아닌 허구에 몰입해 있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거울 속의 얼굴은 그대의 참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그대의 표면일 뿐이다. 그대의 외곽일 뿐이다.

어떤 거울도 그대의 중심을 비쳐줄 수는 없다.

그 얼굴은 그대가 아니다. 그 얼굴은 매순간 마다 변하고 있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형상에 사로잡혀 있는가?

왜 진실에 눈뜨지 않는가?


그 자신을 찾고 자신을 아는 데 주의를 기울이려고 한다면

모든 거울을 깨어버려야 한다.


그래서 거울을 깨 버린 자는 함부로 웃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웃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단정 지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웃고 싶을 때에만 웃는다.

그의 웃음에는 꾸밈이 없다.

그는 사람들이나 구경꾼에게 보이려고 웃음을 짓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웃음은 꾸민 것이다. 그는 그의 삶을 <산다>.

그는 언제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기억하라.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내부는

공허한 쓰레기로 꽉 차 있다. 그들에게 무엇 하나 진실 된 것이 없다.

그들의 내부는 강한 욕망으로 들끓고 있다.


그대가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대는 행복할 뿐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해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어떤 눈으로 보든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집하러 뛰어다닐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대가 <나>라고 생각되는 그대의 동일성(identity)을 분석해 보라.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그대에 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것들을 지금까지 애써 수집해 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머니의 의견, 아버지의 말씀, 형제, 친구,

더 나아가서는 사회가 말한 것들-

그대는 이런 것들을 모두 수집해 왔던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런 것들은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거울들에 의해

말해지고 비쳐진 것인 까닭에 모순된 것들이다.


그대의 동일성은 자기 모순적이다.

그대는 이것을 자아라고 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아는

그대가 모순 속에 빠져 있을 때에만 있음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의 첫걸음은

그대의 자아가 이미 그대 안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그대 자신의 내부를 보려고 하는가?

거울을 믿지 말라. 그대 자신의 눈으로 보라.


끊임없이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자신의 인상에 관심을 쏟고

자신이 거울을 통해서

어떻게 자신이 반사되는가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을

어찌 나를 찾아가는 수행자요, 순례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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