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자아를 찾아 가는 길

2006. 6. 11. 21:22잠언과 수상록

 

 

 

참된 자아를 찾아 가는 길


생명체로서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을 사랑하려면

내 안의 영적인 진실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에게 내재하는 신을 깨달아야 합니다.

불성(佛性)이란 다름 아닌 그대 자신 속에 내재한 신입니다.

거울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거울을 통해서 확인합니다.

거울을 깨트려 버리면 우리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얼굴을 잃어버린 것은 아닙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이미지이지 원형(原形)이 아닙니다.

보는 것이 바로 진짜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주체입니다. 주체가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주체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만을 대상으로 볼 수 있을 뿐

자기 자신을 보지는 못합니다.

 

자아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대가 자아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은

그대의 이미지이지 원형이 아닙니다.


거울이 뒤틀리거나 구부러져 있으면

우리가 보는 이미지도 뒤틀려져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얼굴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거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거울이 바르면 여러분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뒤틀린 거울에서는 뒤틀려진 얼굴만을 볼 뿐입니다.


우리 사람에게 거울은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입니다. 우리들의 본래 면목을 보려면

깨끗하고 투명한, 조용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거울을 깨끗이 하여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청소를 잘 못하여

추하고 이지러진 얼굴만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투명하고 깨끗함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본성(本性)입니다,

선가에서 말하는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다.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보통 마음에 비춰진 자아의 반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신성의 번뜩임이고 신의 이미지이지만

자아는 실제로 신(神)인 것입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하고 정화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건강하고 편안한 몸에

조용하고 침착한 마음이 갖추어지면

자아의 참된 빛, 참된 본성이 드러납니다.

 

 

불성이란 

마음과 몸이라는 두 차양 안에 있는 빛과 같은 것이라서

마음과 몸을 수정과같이 깨끗하게 된다면

빛은 굴절되지 않고 똑바로 비치게 됩니다.

그럼으로 몸과 마음이라는 두 그림자를

가능한 한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잘 다스려야 할 것은 마음입니다.

몸은 마음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몸은 마음의 욕망이나 인상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합니다.

보통 우리는 우리들 자신과 심신을 동일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또 서로 달라 보이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분별하여 규정지으려 합니다.

<나는 미국사람이다.> <나는 한국 사람이다.>

<나는 부자다.><나는 가난하다.>

이런 것들로 스스로를 분별하여 규정지으려 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보아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몸과 마음을

우리들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생겨나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의 본 마음은 평화롭고 안락한 것입니다.

그런 평화와 안락을 해치는 것은

오감의 이기적 욕망을 만족시키려는 욕망과 무지입니다.

그리고 그 안락을 방해할 때에 우리는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훌륭한 것이었으나 그 훌륭함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정된 존재가 되었고 불행하게도

그 족쇄에 갇혀 우리는 더 이상 훌륭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자아를 바로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분별입니다.

우리가 <나는 남자>, 혹은<나는 여자>라고 말할 때에

우리는 스스로를 몸과 동일시하는 것이며,

<나는 변호사>, <나는 똑똑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음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모든 분별들은 상대적으로 조립되고 짜여져 있습니다.

상대적인 것은 밤과 낮의 분별과 같습니다.

빛이 없으면 밤이요, 빛이 있으면 낮입니다.

밤과 낮은 본래 없는데 밤과 낮이란 말은

빛의 유무로 만들어진 말일뿐입니다.

참된 자아는

그런 분별이나 개념들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분별이나 개념들,

무엇을 한정짓는 말은 흙탕물과 같습니다.

<나>라고 규정짓는 그 어떤 말도

모두가 흙탕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된 자아는 그 흙탕물이 가라앉을 때

참으로 바르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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