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자유로워야 한다

2006. 5. 21. 02:50잠언과 수상록

 

 

 

 

진리는 자유로워야 한다.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는 독생자(獨生子)라고.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사생아(私生兒)란 말입니까?

성경은 아름다운 책입니다.

그러나 성경만이 유일한 책이요, 진리라고 한다면

이는 성경을 추하게 만들고 맙니다.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 말씀만 진리고, 8만 대장경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어느 조사어록만이 유일한 진리의 성전(聖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옛 조사님들은

<거리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고까지 강변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8만 4천 법문을 말씀하시고도 열반에 드실 때

[나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는 누구의 율법도 아니요,

어떤 황제의 명령도 아닙니다.

진리는 절대로 누구를 강요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완고하지 않고, 부정도 긍정도 집착심을 내지 않는

자유스러운 마음이 진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자유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유는 무엇이 비추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기 때문에

진리를 자각한 사람을 일러 관조(觀照)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본다는 관(觀)자 다음에 <조(照)>를 더한 것은

곧 자연스러운 흐름을 말한 것입니다.

그럼으로 진정한 구도자라면

비록 성전(聖典)이라고 하드라도

그 이름에 매여 이를 진리라고 맹신하는 덧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는 단지 그대를 사랑하고 도와주면서

그대가 변형되기를 바랄 뿐이지

그대를 변형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무위(無爲)는 진리이지만

유위(有爲)는 거짓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속으로 망설이는 사람은 밖으로 확신에 찬 것처럼 행동한다.』

라고 말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난할수록 부자인체 하고,

무식할수록 유식한 체 한 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 가득 찬 사람은

밖은 요란하면서도 안은 비어 있는 사람입니다.

밖이 요란하다는 말은

사물의 형상에 대한 갖가지 개념이나 정의를 말합니다.

개념이나 정의는 무위가 아니라 유위적인 소산(所産)입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지식이나 편견에 불과합니다. 

상대적인 지식이나 편견은

항상 장애가 따르고 자유스럽지 못합니다.


깨달은 사람이란 안이 찬 사람입니다.

안이 찬 사람은 단지 사실만을 말합니다.

만일 사실이 복잡하다면 그대도 복잡하게 표현합니다.

사실이 모순 된다면 그 말도 또한 모순 되게 표현합니다.

그는 단지 있는 그대로 비추어 줄뿐이다.

그래서 자각의 길은 무심(無心)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바로 그 무심에서 나와야 합니다.

거울처럼 걸림없고, 자유롭게 비춤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유위적인 모든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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