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4. 23. 11:24ㆍ붓다의 향기
업보와 인연
옛 사람의 가르침에 이런 말이 있다.
『학도선수학빈學道先須學貧)』
도를 배우려고 한다면 모름지기 가난부터 배우라는 의미다.
부자는 보시를 할 수 있으나 도를 배우기 힘들고,
가난한 자는 도는 닦을 수 있으나
보시나 자비 행을 행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말세(末世)라고 하는 이 험악한 세상에 태어났으나 좋은 음식에 갖은 유흥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처님의 세상에 태어났어도 목마르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이가 있었다. 어찌하여 복이 없는 자라면 부처님의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야 할 것인데 태어나고, 복이 있는 자라면 나쁜 세상에 나지 않아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그렇게 되는가?
이는 곧 업보와 인연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니 어떤 사람은 부처님을 뵈올 인연은 있으나 음식의 인연이 없는 이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음식의 인연은 있으나 부처님을 뵈올 인연은 없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이 사바에 태어나시기 전 전생에 일곱 분의 부처님이 계셨다. 그 중 한 분이신 가섭불의 시대에 두 명의 장자가 있었다. 두 명 모두가 출가하여 도를 닦았는데 한 사람은 계(戒)를 지키고, 경(經)을 읽고, 좌선을 했으나 한 사람은 단월(보시)을 행하며 복업만을 닦았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시기 이르러 한 사람은 장자의 집에 태어나고, 한 사람은 큰 흰 코끼리로 태어났는데 어떤 도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힘이 셌다.
장자의 아들은 출가하여 도를 배워 여섯 가지 신통을 얻은 아라한이 되었으나 복이 얇아서 매번 밥을 빌기가 어려운 날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발우를 들고 성에 들어가서 두루 걸식을 해도 끝내 밥을 얻지 못하자 터벅터벅 돌아오다가 임금이 타고 다니는 흰 코끼리의 마구간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흰 코끼리는 임금님이 타고 다니시는 코끼리라 갖가지 값비싼 화려한 장식도구에다 풍족한 음식을 공양 받아 흡족하게 먹고 편안히 지내고 있었다. 배고픔을 참어 가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아라한은 그 흰 코끼리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너나 나나 모두 큰 잘못을 범했구나!]”
이 소리를 들은 흰 코끼리는 충격을 받아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그렇게 잘 먹던 코끼리가 사흘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자 그 코끼리를 돌보던 사람이 혹시 병이라도 나 코끼리가 죽지 않을까 겁이 났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그 아라한을 찾아가
“[당신이 무슨 주술을 썼기에 우리 왕의 코끼리가 병이 나서 음식을 먹지 않는가?] 하고 따졌다.
그러자 그 아라한이 말했다.
『이 코끼리는 전생에 나의 아우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가섭불 때에 출가하여 도를 배웠는데, 나는 다만 계를 지키고, 좌선하고, 경을 읽었을 뿐 보시를 행하지 않았고, 아우는 널리 온갖 보시를 행했지만 계행도 지키지 않고, 학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계행도 지키지 않고, 경전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이렇게 코끼리로 태어났지만 보시의 행을 많이 닦았으므로 오늘날 이렇게 좋은 음식과 화려한 갖가지 도구로 풍족하게 살게 된 것입니다.
나는 도만을 닦고 보시의 행을 닦지 않았으므로 이제 비록 도를 얻었으나 밥을 얻어먹지 못한 날이 많게 되었습니다.』
이는 <대지도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흔히들 대승의 도를 일러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라고 말한다. 보리란 곧 깨달음이니 <상구보리>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하화중생>은 중생의 교화니 이는 곧 자비 행을 말한 것이 된다. 그래서 법당에 가보면 석가모니부처님 곁에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자비 행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볼 수 있고, 아미타불부처님의 곁에는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을 둔 것도 이를 상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실 속에서 깨달음의 공부와 자비 행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진 것이 있다하여 선행(善行)만 고집해서도 아니 되고, 가진 것이 없다하여 보시의 행에 인색해서도 아니 된다.
진실로 깨달음에 자비행이 없다면 그 깨달음은
더없이 고귀한 금이 되겠지만 향이 없는 금이 될 것이고,
진실로 깨달음에 자비행이 따른다면
그 귀한 금에 향기가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업의 과보도 인연 따라 다르다는 이 말을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라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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