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라는 종교

2006. 4. 21. 23:40붓다의 향기

 

 

               불교라는 종 교


성철스님의 유명한 법어 가운데 이런 말을 기억할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대 의식이 잠들어 있을 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뿐이다.

그러나 그대가 의식을 차리기 시작할 때, 그대가 종교의 길에 나서는 그 순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마음의 투영에 불과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의식으로 돌아간다면, 그대가 자각을 하였을 그때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이다. 산이 산이 아니기 때문에 산이고,

물이 물이 아니기 때문에 물인 그 의미를 알게 되면 그대는 한 조각 깨달음을 얻은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실체에는 3가지 층이 있다.

첫 번째 층은 대상적 세계의 층이다. 그대의 감각은 주변의 세계, 그것에 관해서 보고 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손으로 만진다.

만일 이 층에 빠지면 그대는 가장 표면적인 층에서 만족하게 된다.


두 번째 층은 그대의 내부에 존재한다. 정신과 마음의 층이다.

사고, 감정, 사랑, 분노, 느낌, 이들은 모두 두 번째 층에 속한다.

첫 번째 층과는 공통된 점이 있다.

예를 들면 만일 내가 손에 사과하나를 들고 있다고 한다면 그대는 그것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공통의 대상물이다. 나도 보고 그대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대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 지는 누구의 눈으로도 볼 수 없다.

그대의 육체는 누구라도 볼 수 있지만 그대의 마음은 아무도 볼 수가 없다. 대상물의 세계는 공통적이며, 이것은 과학의 세계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대상물 전체가 유일한 실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마음의 세계는 볼 수 있는 그런 대상의 세계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로서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정말 존재하는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오직 본인만이 그것이 존재한다고 주장할 따름이다.

그것에 대한 실험은 불가능하다. 볼 수도 없다.

그대가 그것에 대하여 알려준다고 해도 그대는 우리들을 속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대 자신이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의 생각은 물질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대는 잘 알고 있다.


존재하는 것은 물질만이 아니다. 생각도 역시 존재한다.

단지 생각은 개인적이고 사적(私的)인 것이며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이 아닐 뿐이다.

이 첫 번째 층은 대상물의 세계, 과학의 세계이다.

두 번째의 층은 사고(思考)의 세계, 철학이나 시, 사념(思念)이나 감정의 세계가 된다.


그리고 세 번째의 층에 종교의 세계가 있다.

그것은 <주시(注視)>의 세계다.

<자각>의 세계다. 생각을 주시하고 물질을 주시하는 세계이다.

거기에 머무는 사람은 단지 한 사람이지, 절대로 두 사람일 수가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주인공>이라고 했다.

주인공은 둘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대 마음속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자는 그대 자신이외에 다른 사람이 있을 수 없다. 그대가 한 채의 집을 보거나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그 집을 그려보거나 그 보는 사람은 동일하다.

그대가 분노를 주시하거나 사람을 주시하거나 그 주시하는 자는 똑같다.

그대가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삶이 지겹거나, 악몽과 같거나 거기 보는 자는 차이가 전혀 없다. 바라보는 자는 동일하다.

주시하는 자는 똑같다. 이 주시하는 자야말로 유일한 중심이며 그리고 이 주시하는 자를 찾는 것이 바로 불교라는 종교의 세계인 것이다.



< 흐르는 곡: 니체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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