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제41구 창칼과 독약

2024. 12. 19. 12:39증도가

 

창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롭다.

 

<原文>

縱遇鋒刀常坦坦(종우봉도상탄탄)

假饒毒藥也閑閑(가요독약약한한)

 

불성(佛性)은 만법의 자성(自性)이므로

그것을 법성(法性)이라고도 하며

법성(法性)을 보는 것이 불성(佛性)을 보는 것이다.

선(禪)에서는 이를 견성(見性)을 말하니,

견성은 곧 미세한 번뇌 망상까지 모두 없어진

대무심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무심(無心)은 곧 무념(無念)이니

무념(無念)을 근본으로 삼는 것은 곧 무위법(無爲法)이란 말이며

이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선(禪)에서는

견성을 불성(佛性)을 깨닫는다고 말하며,

이것이 또한 구경각(究竟覺)이라 하는 것이다.

구경각(究竟覺) 곧 일체 상대적인 것을 벗어난

무주(無住), 무상(無相), 무아(無我)의 경지를 말하는 것인데

이는 오로지 증(證: 깨달음)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경지에 오른 사람을 평상심을 지닌 사람이여,

한가도인이라고 앞에서 이미 말한 바 있다.

평상심이란 망념과 습성, 지견과 알음알이

모두 없어진 크게 무심한 자리다.

영가 스님은 물론 이 경지에 오른 사람은

모두가 일체 상대적인 것을 벗어나 있어

생사(生死)에 꺼 달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일찍이 달마대사도

모함당하여 5번 독약을 마시고도 태연하였으며,

격의불교(格義佛敎) 타파에 앞장선

나집(구마라즙) 문하의 사철(四哲) 중 한 분인

제자 승조(僧肇)도 요진(姚秦)의 임금이

제안한 재상 자리 박찼다는 이유만으로

32살의 나이에 참형당하였다.

참형의 죽음 앞에 지은 시는 그의 저 <조론(肇論)>과 함께

후세에 본보기로 널리 널리 회자하고 있다.

「사대는 본래 주인이 없고, 오온은 본래 공하다.

시퍼런 칼날 위에 목은 드리우니,

마치 봄날 춘풍처럼 서늘하구나」

(四大元無主 五蘊本來空 將頭臨白刀 猶似斬春風)

 

남명천화상의 주석서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자(師子) 존자가 계빈국(罽賓國)의 왕과 인연이 있었는데,

왕이 검을 들고 물었다.

“스님께서는 5온(蘊)이 공함을 체득하셨습니까?”

스님이 답하였다.

“이미 체득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5온이 공함을 체득해서 생사(生死)를 여의었습니까?”

스님이 답하였다.

“이미 여의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스님의 머리를 얻고 싶은데 얻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이 답하였다.

“몸뚱이도 나의 것이 아닌데 하물며

머리가 어떻게 나의 것이겠습니까?”

왕이 곧바로 머리를 베었는데,

흰 젖이 1장(丈) 남짓 솟아오르고 왕의 팔이 저절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