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제18구 마니주와 여래장
2024. 7. 29. 07:25ㆍ증도가
마니주를 사람들이 알지 못하니
여래장 속에서 친히 거두어서 얻는다
<原文>
摩尼珠人不識(마니주인불식)
如來藏裏親收得(여래장리친수득)
마니(mani)는 주옥(珠玉)의 총칭으로
보주(寶珠)를 말합니다.
주옥은 악(惡)을 버리고 흐린 물(濁水)을 맑게 하고
재난(災難)을 피하는 덕이 있다고 하는 보주입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眞心)을 청정한 마음이지만
미망(迷妄)에 가려져 탁한 물이 된 것을
맑게 하는 공덕을 지닌 마니주(摩尼珠)에 비유한 것이다.
마니주는 우리 마음의 자성(自性)
곧 진심(眞心)을 비유한 말입니다.
<화엄경>을 보면
「신(信)이 모든 도(道)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信)은 청정한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 청정한 마음이란 것은,
곧 보리심의 종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보리심은 곧 수승한 지혜를 말합니다.
그 지혜를 반야(般若)라 하니 이는
능히 일체를 요달하는 것이니,
이를 이름하여 어머니라 한 것입니다.
<유식(唯識)>에서는 이 <信>을
물을 맑게 하는 구슬과 같아서
능히 탁한 물을 맑게 하는
수청주(水淸珠)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마니주를 말한 것입니다.
마니주를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은
중생들이 미혹(迷惑)된 지 오래여서,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 모르고,
자기 성품이 참 진리인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구하려고 멀리 성인들만 추앙하고,
붓다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관조(觀照)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래장 속에서 친히 거두어서 얻는다>라는 말은
본래 맑은 그 청정심인 진심(眞心)이
어떻게 선업(善業)을 일으키고
어떻게 악업(惡業)을 일으키는지를 알아서
그 진심을 회복하는 것을
여래장이란 말을 빌려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승만경》에서는 진심(眞心)을 여래장이라고 했습니다.
「여래와 여래장은 어떻게 다른가.
여래장은 여래가 그 안에 숨겨져 있다.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다.
중생을 여래장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중생이 곧 여래는 아니다. 깨닫고 보면 여래다.
여래가 중생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래장은 진여가 번뇌 가운데 있는 것을 여래장이라고 하고,
진여가 번뇌에서 나온 것을 법신(法身)이라고 합니다.
《불성론(佛性論)》 <여래장품>에서는
여래장을 3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소섭(所攝)의 뜻이 있습니다.
진여가 중생의 位에 서서 화합(和合)과
불화합(不和合)의 二門을 포함하고 있는데
화합이 되면 일체의 염법(染法)을 생하고,
불화합이면 일체의 정법(淨法)을 생한다고 합니다.
일체 염정(染淨)의 법은
모두 여래의 性에 섭수(攝收) 되는
곧 진여임으로 여래장이라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진여(眞如)는 일체법을 섭수 하며,
여래장(如來藏)은 일체법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또 다른 경에서는 공한 여래장과
불공한 여래장으로도 설명합니다.
이른바 공(空)한 여래장이란 번뇌의 껍질과
더불어 화합하여 차별이 없으므로
해탈할 줄을 모르는 것이고,
공(空)하지 않는 여래장이란, 항하사 겁을 지나도록
이탈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아서
부사의한 불법을 성취하는 것이니, 이
를 이르되 여래의 법 몸이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둘째는 은복(隱覆)의 뜻이 있습니다.
진여가 번뇌장(煩惱障)에 있을 때
번뇌는 여래의 성덕(性德)을
은복(隱覆: 감추고 뒤집어 덮음)하고,
현현하지 못하게 함으로 여래장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곧 중생의 번뇌장여래(煩惱藏如來)가 됩니다.
세 번째는 능섭(能攝)의 뜻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거두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진여가 번뇌 가운데서
여래일체과지(如來一切果地)의 공덕을
함섭(含攝: 모두 거두어들임) 함으로
여래장이라 합니다.
일체여래과지란 부처님이 깨달은
구경각(究竟覺)을 의미합니다.
구경각은 대원각(大圓覺)을 말합니다.
광대 원만한 부처님의 지혜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기신론》에서는
<여래장은 무량성공덕을 구족하기 때문이다>라고 했고,
《점찰경 上》에서는
「마음이 여래장이다.
주량 무변한 불가사의가 구족하여
무루청정(無漏淸淨)한 업을 말한다.」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여래장을 두 번째 은복(隱覆)의 의미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법계에 항하사보다 더 많은
그지없는 번뇌의 껍질에 둘러싸여서
처음이 없는 세간으로부터
항상 생사의 물결에 떠돌아다녀 오고 가고
나고 사라지면서 항상 그 중류(中流)에
처해 있는 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중생의 진심은 청정하여
더럽혀지지 않지만, 객진(客塵) 번뇌가 덮고 막아서
그 더러움에 물들게 되니,
마치 불[火]의 제 성품이야 청정하지만,
재[灰], 진흙, 구름, 먼지 따위의 막히고
가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경은 설합니다.
남명천화상은 본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범어로 마니(摩尼)는 여기 중국어로는
여의보(如意寶)이다.
체성(體性)이 가볍고 부드러우며 정결해서
법(法)답게 모든 공덕을 갖추고 있다.
오직 이 한 가지 보배만을 불성(佛性)에 비유할 수 있는데,
사람 사람마다 이 보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수용(受用)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명의 티끌과 때에 덮여서
자기 스스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알지 못한다’라고 한 것이다.
‘여래장(如來藏) 속에서
친히 거두어서 얻는다’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이 마니보(摩尼寶)는 세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여래의 비밀장(秘密藏) 속에서 친히 이 보배를 얻는다.
여래장에는
재전여래장(在纏如來藏:속박 속에 있는 여래장)과
출전여래장(出纏如來藏:속박을 벗어난 여래장)이 있다.
중생은 항상 3독(毒)과 5음(陰)의 번뇌에 덮여 있어서
비록 이 보배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받아들여서 쓰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을 재전여래장이라고 한다.
제불의 세 가지 덕[三德]은 정미하고 밝고
고요해서 법계의 갖가지 공덕을 원만하게 포용하니,
이것을 출전여래장이라고 한다.
여래장의 곳간은 그만두고라도
어떤 것이 마니주인가?
어떤 스님이 남천(南泉) 대사에게
이렇게 물은 것을 보지 못했는가?
“마니주(摩尼珠)를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해서
여래장 속에서 친히 거두어들인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여래장입니까?”
대사가 말했다.
“왕노사(王老師; 남천 대사)가 그대와 함께
왕래하는 것이 여래장이니라.”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마니주입니까?”
대사가 스님을 불렀다.
“사조(師祖)야, 사조야.”
스님이 대답을 하자 대사께서 말했다.
“저리 가거라. 그대는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도다.
이 승려가 깨닫지 못했다고 말하지 말라.
설사 알아차렸다고 하더라도
나는 네가 모색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부처님이 이르시길
「큰 마니(摩尼) 보배 구슬을 잘 갈아 빛이 나게 하고서
깨끗한 곳에 두면 그 있는 곳을 따라 다함이 없는
진보(珍寶)가 나오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량 무변한 공덕이 무진장으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마니주를 잘 갈아 빛이 나게 하는 것은
객진 번뇌의 껍질이 너무 두꺼워
사랑분별로 불가능합니다.
해오(解悟)로는 완전히 갈고 닦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길은 증오(證悟)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경지를 <법성게>에서는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어서
오로지 깨닫는 길 밖에 없다
(無名無相切一切 證智所知非餘境)」
라고 한 것입니다.
@사진: 중국 운남성 원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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