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제17구 부처님의 인가라

2024. 7. 28. 12:31증도가

 

 

근원을 바로 끊음은 부처님이 인가하신 바요

잎 따라 가지 찾음은 나는 하지 못한다.

 

<原文>

直截根源佛所印(직절근원불소인)

摘葉尋枝我不能(적엽심지아불능)

 

‘근원을 바로 끊었다’라는 것은

참 마음을 가리는 일체의 사량(思量) 분별심(分別心)을

바로 끊고 깨달았다는 의미다.

‘부처님이 인가하신바’라는 것은

부처님의 설한 일체의 법을 인가받았다는 의미한다.

부처님이 설하시고 이를 인가받은 그 법은

어떤 법인가를 보자.

《불장경(佛藏經)》을 보면

「여래께서 설하신 일체의 법은 생이 없고[無生],

멸이 없고[無滅], 상이 없고[無相],

함이 없는 것[無爲]으로

이것은 모든 부처가 깨달아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다.」라고 했다.

@육조 혜능 대사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렇게 풀이하였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는 무(),

욕다라나는 상()이요, ()이란 정()을 말하고,

먁은 편()이란 뜻이고 보리라는 말은 지().

()는 모든 티끌과 물듦이 없는 것이요.

()은 능히 삼계에 비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은 정견(正見)이고, ()은 일체지며,

()는 일체 유정이 다 불성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다만 수행하면 능히 다 성불함을 얻는다.

()은 위 없는 청정의 반야바라밀이다.

<금강경오가해>」」

 

반야바라밀은 곧 보리심이다.

보리심은 무생(無生)의 자기 모습[自相]이니,

이런 까닭으로 부처님은 보리심이란

일체의 성품을 여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원을 바로 끊었다는 것은

보리심의 증득을 가리는

근원인 일체 사량(思量) 분별심을 끊었다는 의미다.

바로() 끊었다고 하는 것은

교상(敎相)에 의지하여 차례를 밟는 것이 아니라

단박에 깨우쳤다는 의미한다.

선가에서 말하는 돈오(頓悟)했다는 의미다.

 

단박에 끊었다는 의미를 다시 살펴보자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다.

그러므로 망령된 생각은 본래 고요하고,

진경(塵境: 대상 경계)은 본래 공한 것이다.

모든 법(만물과 현상)이 다 공한 곳에는

영지(靈知: 신령스러운 지혜) 가 어둡지 않으니,

이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적한 신령스러운 지혜) 의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삼세(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들과 천하의 선지식이

은밀하게 서로 전한 깊은 진리(법인<法印>)이다.

만약 이 마음을 깨닫는다면

참으로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에 올라,

걸음걸음이 삼계를 초월하고

귀가(歸家: 본래면목 자리에 돌아감)해

단박에 의심을 끊을 것이다.」라고 했다.

 

‘잎 따라 가지 찾음은 나는 하지 못한다.’를 살펴보자.

이미 앞에서 근원(根源)을 끊었다 했으니

이는 총상(總相)을 끊었다는 의미다.

사랑분별을 일으키는

그 근원의 뿌리를 잘라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별상(別相)은 끊을 필요도 없고,

끊을 것도 없다는 의미다.

여기서 별상은

가지와 잎을 의미한다.

육진(六塵)번뇌의 뿌리를 잘랐는데

그 위에 뻗어난 가지와 잎을 자를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는 의미다.

 

남명천화승은 본 구를 이렇게 풀이했다.

 

『 곧장 단박에 불지견(佛知見)에 깨우쳐 들어가면

점차적으로 교상(敎相)의 과정을 따르지 않으니,

이 때문에 ‘곧장 끊는다’고 하였다.

선덕(先德)이 말하기를

“이 일이 만일 언어상인 3승(乘)ㆍ12분교(分敎)에 있다면

어찌 언설(言說)이 없겠는가. 어떻게 말해야겠는가?

교외별전(敎外別傳)은 오직 이 한 법뿐이니,

곧장 마음을 밝혀서 다만 근본을 구할 뿐이지

지말(枝末)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곧장 근원을 끊는다’라고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인가한 것[佛所印]’을 말해 보자.

제불(諸佛)의 법문(法門)은 서로 번갈아 가면서

인가(印可)한 것인데, 한 번의 인(印)으로

정(定)을 인가하면 일으킴과 마침이 동시[起畢同時]라서

선후(先後)가 없으니, 이 때문에 인(印)이라 말한 것이다.

‘잎사귀를 따고 가지를 찾는 것을

나는 하지 못한다[摘葉尋枝我不能]’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명상(名相)의 학(學)은 비유하면

마치 잎사귀를 따는 것과 같으니,

수를 헤아리는 법문[頭數法門]은 끝나거나

다함이 없어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할 뿐

끝내 이익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하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