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제14구 사대에 집착을 버려라.

2024. 7. 25. 10:39증도가

 

 

사대를 놓아버리고 붙잡지 말라

적멸의 성품 따라 먹고 마실 뿐이다

 

<原文>

放四大莫把捉(방사대막파착)

寂滅性中隨飮啄(적멸성중수음탁)

 

앞에서(제2구) “배움이 끊어져서 작위함이 없는 한가로운 도인은

망심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앞 귀의 한 가지를 풀어 놓은 것이

사대를 놓아버려 붙잡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후 귀의 한 귀를 풀어 놓은 것이

적멸의 성품 따라 먹고 마실 뿐이라는 의미가 된다.

 

사대란 곧 내 몸을 의미한다.

사대를 놓아버렸다는 것은

몸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는 뜻이고

붙잡지 않는다는 것은 애착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는 어떤 의미인가?

<보리심관석(菩提心觀釋)>을 보면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대(四大)가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을 색온(色蘊)이라 한다.

사대란 곧 지대(地大), 수대(水大), 화대(火大),

풍대(風大)로서

다시 다섯 가지 색진(色塵)을 내는데,

바로 색․성․향․미․촉이다.

이러한 지대․수대․화대․풍대 등의 사대와

다섯 가지 색진․성진․향진․미진․촉진 등

낱낱이 각각의 자체 성품을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마찬가지다.

따라서 색진이란 이름이 허망함을 알 것이고,

이를 말미암아 색온이 공함을 알게 되리니,

비유하자면 나무 때문에 그림자가 생겼으므로

나무가 없어지면 그림자도 사라지는 것과 같다.

색온이 이와 같고 수온(受蘊)도 또한 이와 같다.」

라고 했다.

사대가 공하니 사대로 지어진 이 몸 또한

자성이 없는 것이다. 무아(無我)다. <내>가 없으니

<너>도 없어진다. 자타(自他)가 공하니

일체가 평등하다. 일체가 평등하니

일체의 고(苦)가 없고 일체의 분별 또한 사라진다.

그르므로 열반의 경지에 든 것이다.

 

두 번째 구의 적멸의 성품 따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쉽게 풀이하자면 선사들이 말하는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다>라는 의미다.

범부들은 졸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잠을 자야 하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때가 되면 먹어야 한다.

잠을 자도 이곳 저곳 장소를 가려야 하고,

먹는 것도 입맛을 따지고

몸에 좋은 것인지 아닌지도 따진다.

그러나 선사들이 말하는 경지는

이러한 사량 분별이 없다. 깨친자는 무념이다.

그러므로 모든 행(行)은 작위(作爲)가 아니라

행하지만 지음이 없는 행위 곧 무위(無爲)다.

제2구에서 망심도 없애지 아니하고

참됨도 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적멸(寂滅)은 범명(梵名)으로는 열반<Nirvana>이다.

그 체(體)가 적정(寂靜)하여

일체의 상(相)을 여의었기 때문에 적멸이라고 한다.

<지도론55>에서는

「삼독(三毒)과 희론(戱論)을 멸했기 때문에

적멸이라 한다」라고 했다,

 

적멸의 성품은 열반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문수사리문경 열반품>을 보면

「“문수사리여, 열반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번뇌를 끊을 것이 없기 때문에

도달하는 곳이 없다. 도달함이란 얻는다는 뜻이다.

도달함이 없기 때문에 얻을 것도 없으니,

왜냐하면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기 때문이다.

아주 없어지거나 없어지지 않음도 없고,

항상 있거나 항상 있지 않음도 없다.」라고 했다.

그르므로 모든 것은 순연(順延)하게 된다.

한가도인이 되는 것이다.

인연 따라 행함만 있을 뿐이다.

작위가 아니라 무위의 행인 것이다.

 

남명천화승는 이렇게 주석을 했다.

「사대는 지대(地大)ㆍ수대(水大)ㆍ

화대(火大)ㆍ풍대(風大)를 말한다.

무시 이래로 몸을 버리고[捨身] 몸을 받으면서[受身]

항상 사대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다가

지금은 사대의 본성이 공함을 요달해서

법에 자재(自在)하니, 물에 있으면 전체가 물이고,

불에 있으면 전체가 불이고,

바람에 있으면 전체가 바람이다.

이 때문에 수산주(修山主)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대(地大)는 수(水)ㆍ화(火)ㆍ풍(風)을 수용하지 않으니

하나의 대[一大]가 이미 그렇다면

모든 대[諸大]도 마찬가지라네.

사대가 일찍이 두루 하지 않음이 없으니

두루 함에 어찌 혼융(混融)이 있으랴.

 

그 형상은 천 개의 등을 하나의 방에 켜놓은 것과 같고

또한 만 가지 물상이 하나의 거울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의 이름은 다르지만

네 가지 성품[四性]이 없어서

계(界)ㆍ처(處)ㆍ근(根)ㆍ진(塵)ㆍ식(識)이

서로 통하지 않는구나.

 

이와 같은 종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사대를 놓아버린다[放四大]”라고 말한 것이다.

‘붙잡지 말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이미 사대의 본성이 공(空)함을 요달했다면

또 어느 곳을 향해 붙잡겠는가.

그래서 ‘붙잡지 말라[莫把捉]’고 한 것이다.

‘적멸한 본성 가운데서

인연 따라 먹고 마신다’라고 한 것을 말해 보자.

만약 사대의 성품이 본래 공[性空]하고

5음(陰)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님[非有]을 요달하면,

도리어 뜻대로 부침(浮沈)하는 것을 좋아하면서

인연 따라 먹고 마신다.

그래서 도오(道吾) 스님이 말하기를

“거칠어도[麤] 먹고 고와도[細] 먹는다.

범부의 차별상[凡夫相]에서 보지 말라.

거친 것도 미세한 것도 없으니,

상방(上方)의 향적여래(香積如來)는

근체(根蔕:뿌리와 꼭지)가 없느니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적멸한 본성 가운데서

인연 따라 먹고 마신다’」 라고 했다.

 

본 구(句)는 사대를 빌어

무상(無相), 무아(無我)를 설하고,

열반을 빌어

무위(無爲), 무념(無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경산 제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