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제11구 거울에 낀 때

2024. 7. 22. 11:09증도가

 

 

예전에, 거울에 낀 때 미처 훔치지 못했더니

오늘에야 분명히 해결해 내었도다.

<原文>

比來塵鏡未曾磨(비래진경미증마)

今日分明須剖析(금일분명수부석)

 

<소조관음불상>

@자귀(字句)해설:

比來(비래)는 가까운 요즈음을 의미하는 말

진경(塵鏡): 진(塵)은 먼지 곧 번뇌를 의미하고

경(鏡)은 본래 마음을 의미한다.

마(磨)는 갈다, 문지른다는 의미로

여기서는 먼지(번뇌)를 훔친다는 의미.

<훔친다>라는 말은 물기나 때 따위를 문질러

깨끗이 한다는 우리말이다.

미증(未曾)은 일찍이 없었다는 말.

미증유(未曾有)와 같은 의미로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음을 말한다.

<관무량수경: 歎未曾有 廓然大悟>

剖(부)는 쪼개다, 깨트리더(破)라는 의미이고,

析(석)은 나누다, 쪼갠다는 의미,

그러므로 剖析(부석)은 깨트린다. (쪼개어서) 해결한다는 의미.

 

<풀이>

거울의 때를 문지르고 닦는다(훔친다)는 말은

육진 번뇌의 고통을 수행 정진으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문지르고 닦는다(磨)는 것은 수행을 의미합니다.

성문승들이 사성제 등을 수행하여

아라한이 되어 번뇌를 멸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은 얻을 수 있지만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오물통에서

금덩어리를 건져내었지만,

물과 냄새가 배 있는 것과

같은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거울에 낀 때를

미처 훔쳐내지 못했다고 한 것입니다.

 

규봉 스님도 이르기를 먼저 깨닫고 나서

수행을 해야된다(先悟後修)고 말했습니다.

이는 마치 “얼어 있는 연못이

순전히 물인 것으로 알지만

햇빛을 빌어 녹이듯,

범부가 곧 부처인 것으로 알지만

진리(법)의 힘 빌어 익히고 닦아야 (붓다가) 된다.

얼음이 녹아 물이 흘러 적셔야,

바야흐로 그 물에 씻는 공로가 나타나고,

망상이 사라지면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

신통과 광명의 작용이 나타난다.” 라고 하였고,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이를

「선과 악의 성품이 빈 것임을 알지 못하고

굳게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조복 받으려고 하는 이는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면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끊으려는 그 마음이 바로 도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석조어람관음불상)

‘오늘에야 분명히 해결했다’라는 말은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달았다는 것은 본래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대승에서는 이를 정각(正覺)이라고 합니다.

반야에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합니다.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는 말입니다.

 

발심하여 근원으로 돌아가면

분별 망상으로 가려진 허상이 사라져

본래 청정한 마음이 드러남으로

허깨비 같은 죄와 복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법(諸法)의 자성이 공이라는 것을 요달하면,

일념(一念)에 본성과 상응하면 죄와 복,

손익(損益) 등의 차별상이 없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위 구(句)에서 <수부석(須剖析)>이란 이를 의미합니다.

일체의 분별 망상을 닦아서 없애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주객(主客)을

모두 완전히 부숴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번뇌에 대해서 <마(磨)> 대신

부(剖)자를 쓴 것은 이를 의미합니다.

 

번뇌는 자성이 없으면서 분별 망상으로

본래 청정한 마음(眞心)을 가리기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깨달았다는 것은 이 마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깨닫는다면

참으로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에 올라,

본래면목 자리에 돌아가

단박에 분별 망상이 끊어지고

모든 번뇌와 의심을 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육조 혜능(惠能)(638~713) 선사가

오조의 명으로 방앗간에서 연자방아를 등지고

쌀을 찧고 있을 때입니다.

후일 북종(北宗)의 초조(初祖)가 되신

玉泉寺의 神秀(?~706)스님의 이런 시구가

그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玉泉寺의 神秀(?~706)

몸은 보리수 같고 마음은 명경대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 먼지 끼지 않게 하리라

 

身似菩提樹(신사보리수)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莫使惹塵埃(막사야진애)

 

부지런한 정진수행을 통하여

마음을 갈고 닦아야 진애(塵埃)를 멸해,

보리(菩提)를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본 육조 혜능 선사는

이런 자신의 시를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 먼지 끼었는가?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증도가의 이 구(句)와 연결해 보면

깨달은 마음 자체는 나무처럼

생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상(틀)이 있는 것도 아니며

자성이 없어 한 물건도 없는데

하물며 번뇌(진애)가 있겠는가? 하는 의미가 됩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무엇을 얻었다는 것은 없습니다.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본래 마음은 깨달았을 때나

미망에 있을 때나 같은 마음입니다.

마치 눈병이 있으면 헛것이 보이지만

병이 나으면 저절로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본래 있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불장경(佛藏經)》에서 마음자리를 이렇게 말합니다.

「여래께서 설하신 일체의 법은 생이 없고[無生],

멸이 없고[無滅], 상이 없고[無相],

함이 없는 것[無爲]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믿고 깨닫게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했습니다.

 

@사진: 곡성 관음사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