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제12구 누가 무념이며 무생인가?

2024. 7. 24. 03:34증도가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남이 없는가?

진실로 남이 없으면 나지 않음도 없다.

 

<原文>

誰無念誰無生(수무념수무생)

若實無生無不生(약실무생무불생)

 

앞에서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망념이 본래 공하고 심성은

본래 청정한 것임을 깨쳤기 때문에,

악을 끊음에 있어 끊어도 끊음이 없고,

선을 닦음에 있어 닦아도 닦음이 없습니다.

끊어도 끊음이 없고, 닦아도 닦음이 없으니

능(能) 소(所)가 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무아(無我)를 증득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생각이 없고(無念),

누가 남이 없는가(無生)라고 반문하여 묻는 것입니다.

 

《문수사리문경(文殊師利問經)》의 <무아품(無我品)>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에 내가 있어서 일체 곳에 두루 한다면

이는 다섯 갈래[五道]에 모두 두루 할 것이다.

인도[人]와 천도[天]는 즐거운 곳이고,

지옥, 아귀, 축생은 괴로운 곳인데,

만약 내가 일체 곳에 두루 한다면

지옥의 괴로움을 받는 내가 곧 인도, 천도에서도

괴로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즐거움이란 선업(善業)으로 말미암아 얻고

괴로움이란 악업(惡業)으로 말미암아 얻으며,

즐거움이란 애착을 내고

괴로움이란 진심(嗔心)을 내며,

혹 용맹스럽거나 건장함도 있고

혹 겁내거나 두려워함도 있을 것이니,

이와 같이 모든 상(相)이 다르기 때문에

두루하지 않은 줄 알아라.

나는 이것을 진실한 관찰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내가 3세를 뛰어넘었다면

과거세는 이미 지나가 등불처럼 사라졌고,

미래세는 아직 다가오지 않아 미래의 등불과 같고,

현재세는 머물지 않아 마치 흐르는 물과 같으며,

나라는 자체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어서 어떤 시절(時節)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절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만약 시절이 없다면 수(數)가 없고

수가 없으므로 나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진실로 남이 없으면 나지 않음도 없다.>라는 말은

일체법이 공(空)함을 말한 것입니다.

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면 곧 나지 않는 것이고,

없어지지 않는 것이라면 곧 사라지지 않는 것이고,

항상 하지 않는 것이라면 곧 나지 않는 것이며,

번뇌를 끊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번뇌의 자리가 없기 때문에 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경(經)에서는 일체 수행은

무념(無念)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청정한 마음은 무념(無念)이 본(本)이고

반야바라밀이 용(用)이 됩니다.

이 수행은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로써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문수사리문경》에 의하면

「마음이란 모은다는 뜻이며, 뜻이란 기억한다는 뜻이며,

의식이란 현재에 안다는 뜻이니,

이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로써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니,

이것으로써 수행하지 않는 것이 바로 수행이고,

아무런 처소 없는 것으로써

수행하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수행이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에 의지하지 않고,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고

안팎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니,

이러한 수행이 곧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명천화상의 <언기의 주(註)>에서

“상구(上句)에서는 정(情)을 집어냈고

하구(下句)에서는 법(法)을 나타냈다.

‘누가 무념이고 누가 무생인가?’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무념(無念)이고

어떤 사람이 무생(無生)인가?’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심념(心念)은 간격이나 끊어짐이 없이 생멸하는데,

그 생멸이 마치 낙거가 모인 것[落車聚]과 같아서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으며, 생각 생각 사이에 멈추거나

쉼이 없어서 마치 등불이 계속해서 타오르고

물이 끊임없이 이어져 흐르는 것과 같다.

이처럼 다니면 마음이 시방을 얽어매고

앉으면 의식이 3세(世)를 반연하니,

이 때문에 ‘누가 무념이고 누가 무생인가?’

하고 말한 것이다.

‘실제로는 생(生)도 없고

불생(不生)도 없다’라는 것을 말해 보자.

만약 실제로 무생(無生)의 이치를 환하게 깨달으면

일체제법(一切諸法)의 생겨나는 모습을

무너뜨리지도 않고

만법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수산주(修山主)가 말하기를

‘만법(萬法)에 생겨나는 모습[生相]이 없으니,

일 년에 봄이 한 번 지나가네’라고 하였으니,

이 때문에 ‘실제로는 생도 없고 불생도 없다’

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진: 팔공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