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 제8구 여래선을 단박에 깨치니

2024. 7. 14. 15:08증도가

 

 

여래선을 단박에 깨치니

육도만행이 본체 속에 원만하다.

 

<원문>

頓覺了如來禪(돈각료여래선)

六度萬行體中圓(육도만행체중원)

 

여래선을 깨치고 나면 그 안에

육도만행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달리 닦을 필요도 없고

닦을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래선을 깨친다는 말은

여래지(如來地)에 드는 것을 말합니다.

여래지는 부처님의 자리를 말합니다.

<능가경(楞伽經)二>은

「여래선은 여래의 경지에 든 것으로

자각성지(自覺聖智)의 상(相)과

삼종락(三種樂)을 얻은 자리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래선은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고도 합니다.

 

@삼종락(三種樂)이란

첫째 천락(天樂)을 말합니다.

十善을 닦는 이가 천상에 나

온갖 즐거움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은 선락(禪樂)입니다.

이는 수행하는 이가 定에 들어가

마음이 청정하고 잡념이 없어

적정(寂靜)의 열락(悅樂)에

만족함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셋은 열반락(涅槃樂)입니다.

생사가 있는 미계(迷界)의 고통을 벗고

열반의 고요한 경지에 이르러

무위안락(無爲安樂)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능가경>의 선원도상상(禪源都序上)에 이르기를

「만일 自心이 본래 청정하여

원시번뇌(元是煩惱)가 없음을 돈오(頓悟)하고

무루지성(無漏智性)을 본래 구족하여

이 마음은 곧 佛이어서 필경(畢竟) 다름이 없다.

이것에 의하여 닦는 것은 최상승선(最上乘禪)이 되며

또한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이라 하며

또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하며 또 진삼매(眞三昧)라 한다.

이는 일체의 삼매 근본이 되며

만일 능히 념념수습(念念修習) 하면

자연히 점점(漸漸) 백천 삼매를 얻게 된다.

달마 문화에서

전전상전(展轉相傳) 된 것이 이 선(禪)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육도만행이 모두 여래선에

구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도만행(六度萬行)이란

부처(佛)와 보살(菩薩)이 여섯 가지 바라밀을

완전하게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명천화상의 주석서에서

이를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송을 보면

 

「점차(漸次)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돈각(頓覺)이라고 한다.

여래선(如來禪)은

네 가지 선나(禪那)와 구별되어서 다른 것이니,

첫째는 보살의 유식선(唯識禪)이고,

둘째는 성문의 공에 치우치는 선[偏空禪]이고,

셋째는 인천(人天)의 인과선(因果禪)이고,

넷째는 외도(外道)의 달리 헤아리는 선[異計禪]이다.

지금, 이 정문(定門)은 세존께서

영산회상(靈山會上)에 계실 때

푸른 연꽃과 같은 눈[靑蓮目]으로 깜빡거리며

보시자 가섭이 미소를 지으니,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마하대가섭에게 분부(分付)한다”라고 하신 것이다.

가섭은 아난에게 부촉하였고,

아난은 상나화수(商那和修) 존자에게 부촉하여

28 조사까지 이르게 되었고,

보리달마(菩提達摩)가 서쪽에서 동토(東土)로 와서

서로서로 부촉해서 조계의 6조(祖)에 이르렀으니,

이 이후로 법등(法燈)과 법등이 계속 불꽃을 피웠고

조사(祖師)와 조사가 향기롭게 전하여

지금까지 이르면서 양손[兩手]으로 분부한 것이다.

말해 보라. 분부한 것이 있느냐, 분부한 것이 없느냐?

만약 본분납승(本分衲僧)이라면

저절로 귀착점[落處]을 알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래선은 달마의 맥을 이은 것임을

아울러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육도만행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총체적으로는 6도(度)라 말하고

개별적으로는 만행(萬行)이라고 하는데,

이 행문(行門)은 모두 일념(一念) 가운데

본래 원만하게 갖추어져 있다.

6도는 보시(布施)ㆍ지계(持戒)ㆍ인욕(忍辱)ㆍ

정진(精進)ㆍ선정(禪定)ㆍ지혜(智慧)를 말한다.

모두 ‘건너간다[度]’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각각 대치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건너간다고 한 것이다.

보시는 간탐(慳貪)을 대치해서 건너고,

지계는 훼범(毁犯)을 대치해서 건너고,

인욕은 진에(瞋恚)를 대치해서 건너고,

정진은 해태(懈怠)를 대치해서 건너고,

선정은 혼침과 산란[昏散]을 대치해서 건너고,

지혜는 우치(愚癡)를 대치해서 건너니,

이 때문에 6도(度)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도문(度門)은

모든 소승(小乘)이 6도를 나누어 닦는 것도 아니고,

권위보살(權位菩薩)이 6도를 겸수(兼修)하는 것도 아니며,

일념 가운데서 6도를 원만하게 닦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체 가운데 원만하게 갖추고 있다.’」

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