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옹(退翁) 성철스님 열반송을 읽으면서

2024. 7. 11. 10:56조사어록과 잠언

 

열반송은 고승들이 마지막 이승을 하직하고

열반에 들 즈음에 그간 수행하며 살아온

모든 것을 응집(凝集)하여 남기는

마지막 남기는 송(頌)이다.

때로는 법락(法樂)을 일갈하기도 하고,

수행의 자비 보살행을 토하기도 한다.

<증도가>를 읽다가

문득 퇴옹 성철(退翁性澈:1912~1993)스님의 열반송과

같은 문맥 있어 필자 나름대로 그 소회(所懷)를 피력해 본다.

 

1993년 11월 5일 자 동아일보에 올려진

스님의 열반송과 그 해설을 보면 이렇다.

 

生平欺狂男女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彌天罪業過須彌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치네

活陷阿鼻恨萬端

산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나니

一輪吐紅掛碧山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뱉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먼저 본문의 자귀(字句)를 글자 그대로 보자.

첫 번째 구 <生平欺狂男女群(생평기광남녀군)>를 보자.

기(欺)는 속이다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광(狂)자에는 속인다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인터넷에 올려진 글을 보면

<狂> 자로 많이 올려져 있다.

속인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狂>이 아니라 <誑(광)>이 되어야 옳은 의미가 된다.

 

증도가 제7구를 보면 <若將妄語誑衆生>으로

허망한 말(妄語)로 속인다는 뜻이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어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스님의 열반송을 옮겨 논 기사의 글이

광(誑) 자의 오류라면 위 해설이 합당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뜻이 조금 달라진다.

광(誑)은 속이다, 기만하다 등의

의미를 뜻하는 글자이지만,

광(狂)은 속인다는 의미는 없고,

미치다 등의 의미로 해석되는 말이다.

<광(狂)>은 <마음의 병(心病)>을 의미하는 한자로

이를 우리말로 <미친다>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狂> 자를 서술어로 보면

<일생 동안 마음의 병 있는 남녀의 무리를 속였다>

라는 뜻으로도 해설될 수 있다.

그 마음의 병이 바로 번뇌인 것이다.

 

두 번째 구는 <彌天罪業過須彌(미천죄업과수미)>인데

미천(彌天)이란 말을 아미타불이 거주하는

미타천(彌陀天=서방정토)으로 오인하고 있는데

이 말은 <彌天彌綸(미천미륜)>에서 따온 말이다.

미천(彌天)은 하늘 전체를 가득 채운 것,

미륜(彌綸)은 물이 넘쳐흐르는 것을 의미한다.

덕이 무변하여 하늘과 땅에 넘쳐 흐른다는 말로

대개 사용되는 데 <가득 차다>라는 의미만

여기에 인용되어 사용되었다.

수미(須彌)는 수미산을 의미한다.

불세계의 중심이며 정상에는 제석천이 머물고

허리 중앙 부분에는 사천왕이 머물며

7 향해(香海)와 칠금산(七金山)이 둘러쳐져 있다고 하는

불교 우주관에서 말하는 산이다.

 

세 번째 구 <活陷阿鼻恨萬端(활함아비한만단)>의 <阿鼻>는

범어 Avici의 음사(音寫)이며,

무간(無間), 무간지옥(無間地獄)을 의미한다.

만단(萬端)은 온갖 수단이나 방법을 의미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한량없다.>, <무한(無限)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네 번째 구<一輪吐紅掛碧山(일륜토홍괘벽산)> 의

<일륜토홍>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법성이 혁혁(赫赫: 밝고 밝음) 함과

다른 하나는 임종에 즈음하여 마지막 열기,

열성을 쏟아붓는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괘벽산>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벽산(碧山)은 푸른 산을 의미하므로

영원한 부동(不動) 내지 여여(如如)함을 의미하는 뜻과

죽음에 다다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옛 스님(古僧)의 열반송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이를 종합하면 스님 열반송의 참 의미는

삼계 육도를 헤매면서 오랫 겁동안 쌓인 번뇌를 감수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들이 안타까워

언젠가는 이 몸은 허물어져 사대(四大)로 돌아가지마는

이 몸이 바로 영원한 불성(佛性)이요

붓다임을 깨우치게 하려고

말과 글로서 들어낼 수 없는 것(법성)을

방편으로 말과 글로서 중생들을 깨닫게 하려고

평생토록 한량없는 많은 구업(口業)을 지었으니

그 쌓인 업이 수미산을 덮을 만큼 크구나.

비록 (그 구업이 너무 커) 산 채로 이 몸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해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못다한

그 마음(恨)의 한(恨)을 어찌할 수 없구나.

내 이제 죽음에 이르러 (못다한)

내 그 뜨거운 마음을

저 푸른 산에 걸어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열반을 앞둔 스님의 중생을 향한

뜨거운 보살행의 자비심을 드러낸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의 <백일법문>에서 설한 상당법어로 마무리한다.

 

쉬어버리고 쉬어버리니

절름발이 자라요, 눈먼 거북이로다.

있느냐 있느냐 문수와 보현이로다.

허공이 무너져 떨어지고

대지가 묻혀 버리네.

높고 높은 산봉우리에 앉으니

머리엔 재 쓰고 얼굴엔 진흙 발랐네!

늴리리 뉠리라며

들늙은이는 취해 방초 속에서 춤추네!

방편으로 때 묻은 옷을 걸어놓고 부처라 하니

도리어 보배로 단장하면 다시 누구라 할꼬.

여기서 금강정안(金剛正眼)을 잃어버리면

팔만장경은 고름 닦은 휴지로다.

마명과 용수는 어느 곳을 향하여 입을 열리오.

(한참 묵묵한 후)

갑*을*병*정*무로다.

억!

홀로 높고 높아 비교할 수 없는 사자왕이

스스로 쇠사슬에 묶여 깊은 함정에 들어가네!

한번 소리치니 천지가 진동하니

도리어 저 여우가 서로 침을 뱉고 웃는구나.

애닯고 애닯고 애달프다.

황금 궁궐과 칠보의 자리 버리고

중생을 위해 아비지옥으로 들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