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향기 따라 되새겨보는 옛 선사들의 열반송

2019. 11. 28. 17:10조사어록과 잠언

가을 향기 따라 되새겨보는 옛 선사들의 열반송

 

<열반>은 산스크리트 '니르바나'(nirvāṇa)를 음역한 것이고

취멸(吹滅적멸(寂滅멸도(滅度() 등으로도 번역된다.

열반의 본래 뜻은 '소멸' 또는 '불어 끔'인데,

여기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멸진(滅盡)하여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하게 되었다.

열반송은 한평생을 구도에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은 선사들의

궁극 결실을 임종에 즈음하여 짧은 선시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옛 선사들이 임종 시에 토해내는 마지막 그 말 한마디,

진정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옛 선사들이 말하는 부처는 무엇이며, 열반, 보리는 무엇일까?

해탈과 생사의 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하루의 일과를 붉은 노을이 마감하듯

한해를 마감하는 붉은 단풍을 되돌아 바라보면서 삶의 여울을 되새겨 본다.


(백양사)


 ~일연(一然) 선사~

快適須臾意已閑 (쾌적수유의이한) 즐겁던 한 시절 자취 없이 가버리고

暗從愁裏老蒼顔 (암종수리로창안)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어라

不須更待黃粱熟 (불수갱대황량숙) 한 끼 밥 짓는 동안 더 기다려 무엇 하리

方悟勞生一夢間 (방오로생일몽간) 인간사 꿈결인 줄 내 이제 알았노라.



(마곡사)


~무주 청화선사~  

此世他世間(차세타세간)

去來不相關(거래불상관)

蒙恩大千界(몽은대천계)

報恩恨細川(보은한세천)

 

이 세상 저 세상

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내장산)

~경허 성우선사~  

心月孤圓(심월고원)

光呑萬像(광탄만상)

光境俱忘(광경구망)

復是荷物(부시하물)

 

마음 달이 외로이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마이산 은수사)


~무학대사~  

靑山綠水眞我面(청산록수진아면)

明月淸風誰主人(명월청풍수주인)

莫謂本來無一物(막위본래무일물)

塵塵刹刹法王身(진진찰찰법왕신)

 

푸른 산 푸른 물이 나의 참모습이니

밝은 달 맑은 바람의 주인은 누구인가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다 이르지 말라

온세계 티끌마다 부처님 몸 아니런가



(마이산 고금당)


~방온(龐蘊) 방거사~  

但願空諸所有(단원공제소유)

愼勿實諸所無(신물실제소무)

好住世間 (호주세간)

皆如影響 (개여영향)

 

다만 온갖 있는 바를 비우기 원할지언정

온갖 없는 바를 채우려 하지 마라

즐거이 머문 세간

모두 그림자와 메아리 같나니




(남양주 봉선사)


~(부설거사(浮雪居士))~  

目無所見無分別(목무소견무문별)

耳聽無聲絶是非(이청무성절시비)

分別是非都放下(분별시비도방하)

但看心佛自歸依(단간심불자귀의)

 

눈으로 보는 것이 없으면 분별함도 없고

귀로 듣는 소리가 없으면 시비도 끊어진다

분별하고 시비함을 모두 놓아버리고

오직 마음의 부처를 지켜서 스스로 귀의하라




(소요산 자재암)


~용성조사~

五蘊山中尋牛客  온산인 몸 생각 뜻 가운데서 심우 불성을 찾는 나그네가

獨坐虛堂一輪孤  텅 빈 집에 둥근 달이 훤히 비치는데 홀로 앉았도다.

方圓長短誰是道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은 이것이 누구의 도이랴

一團火炎燒大天 일단 '이뭣고'의 불꽃이 대천 번뇌를 태우도다.



(무등산 규봉암)


~걸봉 세우선사~

生本無生 남이라 본래부터 남이 없으며,

滅本無滅 죽음 또한 본래부터 죽음 없어라.

撤手便行 손털고 빈손으로 돌아가노니

一天明月 허공중천 밝은 달이 꽉 찼더구나.

 



(마이산 탑사) 


~포대화상~

一鉢千家飯 孤身萬里遊

靑目覩人少 問路白雲頭

- 布袋和尙 逍遙偈

 

발우 하나로 천가의 밥을 빌고

외로운 몸은 만 리를 떠도네,

푸른 눈 알아보는 이 드물고

그저 흰 구름에게 갈 길을 묻네

  


(설악산천불동계곡)  


~ 함허스님~

湛然空寂本無一物 담연하고 공적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네.

靈光赫赫洞徹十方 신령한 빛이 빛나고 빛나 시방을 꿰뚫네.

更無身心受彼生死 다시 신심(身心)이 없으니 저 생사를 받더라도

去來往復也無罫牢 가고 오고, 오간들 걸릴 것이 없네.

   


(마이산 비룡대)

 

~대혜선사~

生也祗麽 死也祗麽 有偈無偈 是甚麽熱

(생야지마 사야지마 유게무게 시삼마열)

 

사는 것도 그저 그렇고

죽는 것도 그저 그렇다.

게송이 있든 없든

무얼 그리 마음 쓰는가?

 


(지리산 연곡사)

 

~. 태고(太古) /보우(普愚) / (1301~1382)~

고려 말기 불교계를 대표한 수행인. 그는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만큼 존경을 받았고

 한국불교 중조로 추앙받는 영예까지 누린 이사에 눈이 열린 선지식이었다.

 

人生命若水泡空 (인생명약수포공) 사람의 목숨은 물거품처럼 빈 것이어서

八十餘年春夢中 (팔십여년춘몽중) 팔십여 년이 봄날 꿈속 같았네

臨終如今放皮帶 (임종여금방피대) 죽음에 다다라 이제 가죽 부대 버리노니

一輪紅日下西峰 (일륜홍일하서봉) 수레바퀴 붉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네.

 


(내장산)

 

~ 혜림(蕙林) / 향곡(香谷)스님 / (1912~1918)~

그가 지녔던 기용은 대방무외하여 산과 바다를 누르고

한 번 할을 하면 산악이 무너지고 봉을 휘두르면 바다가 뒤집히고

 입으로 백억화신을 토해내던 걸림이 없었던 선지식.

 

木人嶺上暇玉笛 (목인령상가옥적) 목인은 고개 위에서 옥피리를 연주하고

石女溪邊示作舞 (석녀계변시작무) 석여는 시냇가에서 춤을 추도다.

威音那畔進一步 (위음나반진일보) 위음왕불 이전으로 한 걸음 나아가라

歷劫不昧常受用 (역겁부매상수용) 영원히 밝고 밝아 언제나 수용하리.


*위음왕불: 불경에 보이는 최초의 부처, 과거 대겁인 장엄겁 이전 공겁(空劫) 때의 부처님이다



(백양사)


~괄허 취여선사~  

幻來從幻去(환래종환거)

來去幻中人(래거환중인)

幻中非幻者(환중비환자)

是我本來身(시아본래신)

 

환에서 와서 환을 쫓아가나니

오고감이 환 가운데 사람이로다

환 가운데 환 아닌 것이

나의 본래 몸일세

 



(마이산 은수사) 


~소요 태능(逍遙太能)대사~  

解脫非解奪(해탈비해탈)

涅槃豈故鄕(열반기고향)

吹毛光爍爍(취모광삭삭)

口舌犯鋒鋩(구설범봉망)

 

해탈은 해탈이 아니니

열반이 어찌 고향이리오

취모검 칼날이 번뜩이니

입 벌리면 그대로 목이 잘리네




(백양사)


~ 허백(虚白) 명조(明照)스님 (1561~1647)~

삶과 죽음의 얽매임에서 벗어난 후 사명스님에게 귀의하여

임란에 참가하여 전승을 남긴 후 묘향산 불영대에서 입적


劫盡燒三界 (겁진소삼계) 세월이 다하여 이 누리는 불타고

靈心萬古明 (영심만고명) 신령한 마음은 만고에 밝네

㽋牛耕月色 (나우경월색) 진흙소는 달빛을 밭갈이하고

木馬製風光 (목마제풍광) 나무말은 풍광을 이끌고 가네




(무등산 규봉암)


~ 동곡(東谷)/ 일타(日陀) (1929~1999)~

一天百日露眞心 (일천백일로진심) 하늘의 밝은 해가 참된 마음을 드러내니

萬里淸風彈古琴 (만리청풍탄고금) 만리에 맑은 바람 옛 거문고를 타는구나!

生死涅槃曽是夢 (생사열반증시몽) 생사와 열반이 일찍이 꿈이리니

山高海闊不相侵 (산고해활불상침) 산은 넓고 바다 넓어도 서로 방해롭지 않구나.

 


(백양사)


~대혜 종고선사 ~  


生也祗麽(생야지마)

死也祗麽(사야지마)

有偈無偈(유게무게)

是甚麽熱(시심마열)

 

삶이 이러하고

죽음이 이러하나니

게송이 있고 없고

이 무슨 뜨거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