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불의 협시불과 협시보살

2024. 2. 14. 23:34사찰에 관한 상식

 

사찰의 당우는 봉안되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그 편액 명이 정해진다.

극락보전이라고 하면 이는 아미타불을 본존임을 알 수 있고,

비로전 또는 적광전이라고 하면

비로자나불이 주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당우의 편액과 봉안된 주불이 다른 때도 있다.

그 일례로 오대산 월정사의 경우를 보면 편액은

적광전(寂光殿)인데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적광전(寂光殿)은 원래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오대산 월정사 적광전의 석가모니불)

이와는 반대로 홍성 고산사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이 아닌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홍성 고산사 대적광전)

또 익산 숭림사의 보광전(普光殿)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는데 옛적에는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협시로 두었다.

보광전은 화엄종의 사찰에서는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다.

 

(익산 숭림사 보광전)

남해 용문사 경우는 편액은 대웅전인데 아미타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남해 용문사 대웅전)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의 본존불은

비로자나불, 협시불은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이다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

고창 선운사 대웅전 본존불은

비로자나불 협시불은 약사여래 아미타여래이다.

소실(燒失)되기 전 정유재란 이전에는

5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약사여래),

6 보살(관음, 대세지, 문수 보현, 대세지보살,

일광보살, 월광보살)을 모셨다고 한다.

 

(고창 선운사 대웅전의 비로자나불)

(고창 선운사 대웅전의 아미타불)

(고창 선운사 대웅전의 약사여래불)

중국의 경우를 보면 윈난성 원통사의 원통보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협시로 두고 있다.

원래는 관음보살을 모셨는데 불상이 파괴되어

석가모니불로 대체하였지만,

편액은 그대로 원통보전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운남성 원통사 원통보전)

@ 본존불을 모시는 경우 좌우에 협시불(脇侍佛)이나

협시보살(脇侍菩薩)을 둔다.

협시불(脇侍佛)’은 불상이나 불화에서

본존(本尊)을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불상을 말한다.

협시불은 본존불(本尊佛)과 함께 삼존불(三尊佛)을 형성한다.

본존불 옆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이면 협시불(脇侍佛),

보살이면 협시보살이라 한다.

협시(脇侍)는 협시(挾侍), 협립(脇立), 보처(補處)라고도 쓴다.

 

본존불(本尊佛)만 모시는 때도 있지만

대개 보살이나 여래를 협시로 모시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협시불과 협시보살은 본존불 위주로

정립되어 있는데 예외적인 경우도 많다.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전각을

적광전 또는 대적광전이라 부르는데

비로자나불을 협시불 없이 본존불을 모시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사찰에 따라서

편액이 대적광전이면

대개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협시불로 모시고,

대광명전이라 할 경우는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협시로 두기도 한다.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상 보물 제409호)

(충주 석종사 석조비로자나 삼존상)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전각은 극락전 또는 무량수전이라 부르는데

극락전이라 부를 때 아미타여래의 협시로

대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두고

무량수전이라 부를 때는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두기도 하는데

작금의 사찰에서는 혼용되고 있다.

 

(군의 인각사 극락보전)

그러나 사찰에 따라서는 협시보살은

관음과 대세지 또는 지장보살을 모시면서

본존불은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양평 용문사 대웅전을 들 수 있는데

혼란스러움을 피하고자 불상 앞에 불상 명을 명기까지 하고 있다.

이는 사찰의 창건이 신라시대 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신라에 불교가 전래하는 초기에는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을 같은 부처로 보았기 때문이다.

 

(양평 용문사 대웅전 석가/관음/대세지)

참고로 다른 전각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약사전에는 약사불을 본존으로 월광보살, 일광보살을 협시로 두고

미륵전에는 미륵불을 본존으로 대묘상보살과 법화림보살을 협시로 둔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원통전에는 관음보살을 본존으로 용왕과 남순동자를 두기도 하며

지장전에는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둔다.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을 협시로 두고

(문경 김룡사 응진전)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아난과 가섭존자를 협시로 두지만

문경 김룡사 응진전은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불을 모셨다.

 

@그런데 불교의 본사(本師)인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모시는 대웅전은 동자상을 비롯하여

보살과 여래를 협시로 봉안되기도 하며 그 형태도 다양하다.

(1)협시(脇侍) 없이 석가모니불을 단독으로 모시는 경우

(순천 선암사 대웅전)

화순 운주사 대웅전

중국 보타산 보타선사 대웅전

중국 항저우 영은사 대웅보전

 

(2)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시는 경우는

중국 사찰에서는 일반적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무렵에 창건된

역사를 가진 고찰(古刹)에서 볼 수 볼 수 있다.

화순 쌍봉사 대웅전

중국 아미산 금정의 대웅보전

 

 

 

중국 숭산 소림사 대웅보전(위 사진1~4)

 

(3)대승불교의 도입과 정토 신앙의 전례에 따랐을 때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과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봉안하거나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추가로 봉안한 경우가 있다.

이는 삼세 즉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다.

경주 불국사 대웅전(석가모니불, 제화갈라보살 미륵불, 가섭과 아난)

 

 

도봉산 망월사 영산전( 석가모니, 미륵 제와갈라보살, 아난, 가섭존자)

1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석가모니불, 미륵불, 연등불, 대세지, 문수 보현 관음보살)

순천 송광사 대웅보전

( 운문사 대웅보전과 같으며 대세지보살만 지장보살로 대치되었다)

 

 

 

중국 용문석굴(노사나불 가섭존자와 아난 문수보살 보현보살)

 

(4)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17세기에 유행처럼

석가모니불의 협시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봉안하고,

여래를 봉안할 경우는 협시불로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봉안하였다.

 

이는 정토 신앙의 영향으로 정토 신앙의 중심 과제가

정토(淨土)와 왕생(往生)에 있기 때문이다.

정토란 부정잡예(不淨雜穢)가 사라진 청정한 불국토(佛國土)로,

즐거움만이 충만한 극락세계를 가리킨다.

경전에는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외에도

여러 가지 정토가 설해지고 있다.

미륵보살의 도솔천정토(兜率天淨土),

약사여래의 유리광정토(瑠璃光淨土)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승(勝)한 것은 아미타불의 서방정토라고 찬탄하였다.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치악산 구룡사 대웅전(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김천 직지사 대웅전(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의성 고운사 대웅전(석가모니불, 문수보살, 보현보살)

산청 대원사 대웅전(석가모니불, 문수, 보현보살)

(5)석가모니불과 관련된 과거칠불이 있다.

중국 아미산 보국사(報國寺)에 가보면

과거칠불보전 이란 전각이 있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전각을 찾아볼 수가 없고,

신라불국토설(新羅佛國土說)과 관련하여

과거칠불에 대한 신앙으로

과거칠불을 조성한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 기록뿐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는

과거칠불의 가람터가 있었다고 한다.

즉, 과거칠불이 머물면서 설법하던 사찰로

흥륜사(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皇龍寺),

분황사(芬皇寺), 영묘사(靈妙寺), 사천왕사(四天王寺),

담엄사(曇嚴寺) 등을 들고 있는데

사찰 기록은 물론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중국 아미산 보국사 과거칠불전)

과거칠불이란 석가모니불의 탄생 이전

수백억겁 전에 존재했던 부처님으로

비바시불(毘婆尸佛), 시기불(尸棄佛), 비사부불(毘舍浮佛),

구류손불(拘留孫佛), 구나함불(拘那含佛),

가섭불(迦葉佛),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가리킨다.

 

 

불상(佛像)이란 경전의 기록이나 전설을 기반으로 하여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해 인간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예술의 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시대의 조류(潮流)에 따라,

그 시대 상황에 맞게 경전의 내용에 맞추어

조성된 불교예술로

이는 사실 여부의 허실(虛實)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를 통하여 불심(佛心)을 고취하고

앙양(昂揚)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신앙의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