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십자가 스와스티카와 불교 卍자의 이해

2021. 12. 26. 01:19사찰에 관한 상식

 

오늘은 성탄절, 코로나의 거리 두기 정책에

설상가상으로 한파의 날씨까지 겹쳐 거리는 예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츄리의 불빛은 예나 지금이나 거리를 밝히고 있다.

석가모니 탄생을 기리는 초파일보다 아기 예수를 기리는 성탄절이

이제는 기독교만의 축제일을 넘어 온 세계가 축복하는 날이 되었다.

연등으로 장식된 초파일의 卍자보다 츄리로 장식된 성탄절의 십자가가

유난히 빛을 발하는 날이 크리스마스가 된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의 십자가는 그리스도 자신과

그리스도 교도의 신앙을 동시에 나타내는 상징이며,

의식에서 십자가 성호를 긋는 것은 신앙고백, 기도, 봉헌, 축복 등을 뜻하는

기독교의 상징물로 간주하고 있지만,

 

중세 이전 유럽에서는 헬리오스와 제우스의 상징이었고,

특히 유럽에서는 켈트족이 감마디온을 사용했다고 한다.

감마디온은 그리스어의 세 번째 알파벳 감마(Γ)가

네 개 겹쳐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이다.

켈트족의 감마디온은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었는데,

하나는 강력한 힘을 뜻했고 두 번째는

감마디온이 다리 4개를 붙여진 것(테트라스켈리온[tetraskelion])으로 보았기에

이주(移住)를 뜻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기까지 유럽에서도

만자가 행운의 상징이라고 하여 많이 애용되었다고 한다.

 

십자가는 원래 고대 로마인들이 범죄자들을 처형할 때 사용하던 도구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십자가에 못 박는 형벌은 일찍이 아시리아나 페르시아 등에서

백성의 불복종을 방지하고 패배한 적을 조롱하기 위해,

특히 흉악한 범죄자나 포로로 잡힌 적들의 시신을 말뚝에 걸거나

뾰족한 막대기에 몸을 꿰어 도시로 드나드는 통로에 세워 놓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카크 더글라스가 주연한 영화 스파르타쿠스를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십자가 위에 주인공을 물론 많은 죄인을

끝없이 매달아 놓은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처럼 구약 시대에도

적이나 범법자, 하느님을 모독하거나 우상을 숭배한 자들을 처형한 후

나무에 매달아 두었던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저주라고 할 만큼 치욕적인 것이었다.

모양은 처음에 일자 말뚝이었던 것이 후에 십자 형태가 되었다.

십자가에 매다는 형벌은 로마인들이 정형적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로마는 이 형벌을 반역, 살인, 폭동, 정탐, 해적질이나

폭력적인 강도 행위 등을 처벌하기 위해 도입했다.

그 대상은 로마 시민을 제외하고 노예나 범죄자들,

로마 통치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이었다.

십자가형은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337년경 폐지되었다.

한편 오늘날에는 다양한 형태로 변형된 십자가들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 십자가는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된 후에는 죽음의 상징에서

영광의 상징, 생명의 상징,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십자가 도안에는 그리스 십자가, 라틴 십자가, 성 안토니우스 십자가,

성 안드레아 십자가가 있는데, 이 도안들을 기본으로 많은 변형과 장식이 발전했다.

변형된 십자가를 나타내는 기본적인 도안은 간략히 다음 4가지로 요약된다.

① '크룩스 쿠아드라타'(crux quadrata):

그리스 십자가라고도 하며, 네 팔의 길이가 똑같다.

② '크룩스 이미사'(crux immissa):

라틴 십자가라고도 하며, 기본 줄기가 나머지 세 팔보다 길다.

③ '크룩스 코미사'(crux commissa):

그리스 문자 '타우' 모양이며, 때로 성 안토니우스의 십자가라고도 부른다.

④ '크룩스 데쿠사타'(crux decussata):

로마의 '데쿠시스' 또는 10이라는 숫자의 상징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 한다.

여러 전승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달려 죽은 십자가는 '크룩스 이미사'라고 하지만,

'크룩스 코미사'였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 4가지 십자가 모양에서 행렬·제단·문장(紋章) 등에 쓰이는

십자가, 교회·묘지 등에서 무늬를 넣고 색을 칠해 쓰는 십자가 등

많은 변형과 장식이 종파에 따라, 시대적 나라에 따라 발전했다.

그중에서 불교의 卍자와 같은 유형도 있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스와스티카(swastika)>라 부르는데

이는 단지 기독교는 물론 불교의 전용 상징물도 아닌 여러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스와스티카(swastika)

보통 시계방향으로 꺾여 있는 스와스티카는

옛날부터 부와 행운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스와스티카의 어원은 범어 '스바스티카'로서,

'행운으로 인도하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스와스티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화폐의 도안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미술에도 등장했다.

인도의 힌두교·불교·자이나교에서는 길조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며

라틴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을 비롯해 북아메리카의 나바호족을 중심으로도 애용되었다.

힌두교와 자이나교에서는 스와스티카를 회개장부의 겉장,

문지방, 문, 헌금 상자 등에 붙인다.

시계방향의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스와스티카 '卍'은 태양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왼쪽으로 회전하는 스와스티카 '卍'은 밤, 무서운 칼리 여신, 주술적인 관습 등을 상징한다.

 

보통 시계방향으로 꺾여 있다. 스와스티카는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부와 행운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스와스티카의 어원은 범어 '스바스티카'(svastika)로서,

'행운으로 인도하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스와스티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화폐의 도안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미술에도 등장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마야 문명을 비롯해 북아메리카의 나바호족을 중심으로

스와스티카가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문화 지역에서는

스와스티카가 그리스어 알파벳 가운데 하나인

감마의 대문자 'Γ' 4개를 조합해서 만든 십자가라고 알려져 있었다.

인도의 힌두교·불교·자이나교에서는

여전히 스와스티카가 길조의 상징으로 가장 널리 사용된다.

자이나교에서 쓰이는 스와스티카는 그들의 7번째 성인(Tῑrthaṅkara)의 상징이다.

특히 그 숭배자들에게는 스와스티카를 이루는 4개의 꺾인 선이

각각 자신이 환생할 4개의 장소를 일깨워준다고 하는데,

그것은 동물이나 식물 세계, 지옥, 현세, 영적 세계 등으로 나뉜다.

 

힌두교와 자이나교에서는 스와스티카를 회개장부의 겉장,

문지방, 문, 헌금상자 등에 붙인다.

시계방향의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스와스티카와

시계 반대 방향인 왼쪽으로 회전하는 스와스티카 '卍'은

각각 뚜렷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스와스티카 '卍'은

태양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즉 북반구에서 볼 때 태양은

동쪽으로부터 남쪽을 거쳐 서쪽으로 회전하는데,

이와 같은 태양의 1일 주기를 본떠 스와스티카의 회전 방향을 정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왼쪽으로 회전하는 스와스티카 '卍'은 밤,

무서운 칼리(kālῑ) 여신, 주술적인 관습 등을 상징한다.

 

@불교의 卍자

‘만’자의 기원과 상징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하다.

태양의 상징, 흐르는 물의 상징으로 보기도 하고,

둥글게 선회하는 모발의 형상이라고도 하며, 신령한 빛의 상징이라고도 한다.

 

많은 학자는 이 표시가 인도불교에만 있었던 고유한 상징이 아니고,

인도 고대신화 속에 등장하는 태양의 신

비쉬누(Vishnu)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에서 이 표지는 유럽·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에서 그 모양을 찾아볼 수 있다.

 

불교에서의 유래는 ≪화엄경 華嚴經≫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화엄경≫ 제48권에는 “여래(如來)의 가슴에는

훌륭한 분의 특징인 만자 모양이 있다. 이것을 길상해운(吉祥海雲)이라고 부른다.

 

조화가 자재로운 마니보주(摩尼寶珠)로 장엄하여 온갖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

가지가지의 광염을 둥글게 뿜어내면서 온 누리를 가득 채운다.

그리고 온 누리를 깨끗하게 하는 묘음(妙音)을 내어서

온통 세계를 진리의 바다처럼 넘실거리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부처의 97가지 훌륭한 모습 중 제53번째의 특징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 표지를 인도에서는 슈리밧사(shrivatsa)라 했고,

만자의 다른 변형들을 난디아바타라(Nandyavatara)

·스바스티카(Svastika)라고 불렀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역경승(譯經僧)이나 주석가들은

만(萬)이라고 통일하여 부르게 되었다. 중국에서 이 표지를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화엄학의 대가인 혜연(慧苑)이다.

 

그는 ≪화엄경≫의 한역본과 범본(梵本)을 대조한 뒤,

“만(卍)자는 덕 있는 사람의 상(相)이요 길상만덕(吉祥萬德)이 모이는 곳이며,

한역본에는 17번, 범본에는 28번이 언급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이 표지는 ≪장아함경 長阿含經≫ 등의 소승불교 경전에서도

몇 회에 걸쳐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었으나,

현재의 동남아시아 남방불교권에서는

사찰이나 불교 용구에 이 표시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대신하여 둥근 법륜(法輪)을

불교의 상징 표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만’자는 중국과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권에서만 유행하였던

불교의 상징 표지임을 알 수 있다.

 

‘만’자는 그 변형까지를 포함하면 네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길상해운을 뜻하는 일반형으로서의 슈리밧사,

둘째는 오른쪽으로 선회하는 머리카락 모양을 한 난디아바타라,

셋째는 행복이 있음을 상징하는 스바스티카,

넷째는 가득 찬 물병 모양을 한 푸르나가타(Purnaghata)이다.

 

이들 중 마지막 푸르나가타를 제외한 세 가지는

불경 중에 모든 부처의 가슴 또는 머리에 나타난 모발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불상의 미간에 표시되는 백호(白毫)가 털을 의미했던 것과 함께

고대 인도인 또는 서역인이 지녔던 풍토적 사고방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네 가지 형태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첫째, 길하고 성스러운 바다의 구름을 뜻하는 슈리밧사를

≪화엄경≫에서는 ‘금강계(金剛界)를 상징하는 마음’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때의 ‘금강’은 번뇌와 미혹을 능히 파괴하는 힘을 가진 부처의 지혜를 뜻하고,

‘계’는 본성을 뜻한다. 지혜를 본성으로 하는 장엄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슈리밧사를 풀이하고 있다. 때로는 ‘용맹을 상징하는 깃발’이라고도 하는데,

그 깃발이 가는 곳에서는 모든 악마의 군사들이 항복하고야 만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만자기를 불교의 깃발로 대신하고 있다.

그 밖에도 슈리밧사는 마음·삼매(三昧)·반야(般若) 등의 뜻을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둘째, 난디아바타라는 우선(右旋)·희선(喜旋)으로 번역되는데,

원이나 각의 중심에서 아기자기한 곡선을 그리면서

하나의 통일된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난디는 기쁨이라는 뜻인 만큼,

그것은 도(道)를 이룬 부처의 기쁨에 찬 모습을 상징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셋째, 스바스티카는 유락(有樂)으로 번역되며, 두 가지 형이 있다.

그 하나는 열 ‘십(+)’자 모양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 끝에 장식이 달린 종과 횡 두 개의 기둥이 교차된 형태이다.

원어 스바스티카는 ‘낙(樂)이 있다’, ‘잘 있다’, ‘저절로 있다’ 등으로 풀이되며,

이들은 다 불심(佛心)의 공덕, 불심의 만덕(萬德)중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들 의미를 축약하여 ‘성취’로 풀이하기도 한다.

 

넷째, 푸르나가타는 만병(滿甁)으로 번역되며,

비약적인 변형으로서 형태로는 만자와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의미로 볼 때는 동일한 뜻이 있다. 푸르나는 가득하다는 뜻이고

가타는 병이라는 뜻으로, ‘가득 차 있는 병’, 곧 공덕의 구족(具足)을 뜻한다.

원래 부처의 공덕이나 그 마음을 상징했던 이상의 표시들은

후대에 내려오면서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와 관련 있는 모든 것에

길상과 원만을 뜻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만자문(卍字紋, 산스크리트어: स्वस्तिक 스바스티카, Svastika)은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으로 꺾인 십자 모양의 무늬이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의 인도 계통의

종교의 대표적인 상징들 중 하나로,

卍(좌만자) 卐(우만자) 모양 둘 다 방향만 다를 뿐 모두 같은 만자가 맞다.

보통 스바스티카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형상이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사우와스티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 의미를 달리하는 예도 있어 

불교학자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