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보살(齷齪菩薩)과 극락(極樂)

2024. 1. 27. 20:56붓다의 향기

 

청도 운문사 비로전에 가보면 법당 천장에

용가(龍駕)가 매달려 있고 그 용가에서 내려온 밧줄에

악착스럽게 매달려 있는 동자를 볼 수 있다.

용가(龍駕)는 극락으로 가는 배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하며,

동자는 악착보살(齷齪菩薩)이라고 불린다.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을 타려고 이를 악물고

외줄 밧줄에 매달려 있는 동자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극락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곳이기에

그렇게 악착스럽게 외줄 밧줄에 매달려 있을까?

 

극락(極樂)은 불교의 사후세계로서,

특히 정토교에서 중시하는 곳으로 불교의 여러 불국정토 중

서방에 있다고 전해진다. 아미타불이 부처가 되기 

법장보살(法藏菩薩) 시절 때 세운 48대원에 의해 생겼으며,

아미타불은 이곳에서 설법하고 있다고 경전에 나온다.

 

명문당에서 출간한 「불교대사전」 에 의하면

극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극락(極樂)은 범어(梵語)로 <Suknávati>라 한다.

이를 한자어로는 수마제(須摩提)로 번역하여

묘락(妙樂)이라 한다.

아미타불의 국토이며 또는 안양(安養), 안락(安樂),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밀엄국(密嚴國), 청태국(淸泰國) 등으로 불린다.

이 사바세계에서 서쪽으로

십만억 불토(佛土)를 지나서 있다는

아미타불의 정토(淨土)다.

모는 일이 원만구족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안락한 이상향(理想鄕)이다.」라고 했다.

 

극락이라는 말은 기독교의 천당,

천국과 같은 유사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은

종파의 교리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다.

 

@극락왕생을 중시하는 교파,

특히 정토신앙이 핵심인

정토종 계열에서는 극락에 대해 이 세상과는

별개의 세계로 나누어 보는 타방정토설을 따른다.

이런 관점에서는 이상 세계인 정토(淨土)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예토(穢土)를 구분하고,

염불을 중심으로 수행하며 내세에 극락정토를 비롯한

여러 정토에 태어나는 극락왕생 사상을 중시한다.

 

이와는 반대되는 관점은 유심정토(唯心淨土)사상이다.

유심정토 사상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예토(穢土)이면서

곧 정토(淨土)라고 보며,

중생들의 마음이 청정해지면

그곳이 곧 정토라고 보는 관점이다.

 

(대승사 목조아미타불설법상 국보 제321호)

@우리나라의 고승들은 극락을 공간적인 거리로 보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십악(十惡)과 팔사(八邪)를 없애버리면

곧 극락이 된다고 보았다. 곧 살생, 도둑질, 사음(邪婬)과 거짓말,

이간 붙이는 말, 악담, 유혹하며 속이는 말, 탐욕,

성냄과 어리석은 소견 등의 십악을 고쳐서 십선(十善)으로 바꾸고,

사견(邪見) · 사사유(邪思惟) · 사어(邪語) · 사업(邪業) ·

사명(邪命) · 사방편(邪方便) · 사념(邪念) ·

사정(邪定) 등의 팔사를 팔정도(八正道)로 바꾸면

그곳이 곧 극락세계라고 본 것이다.

 

(중국 보타낙가산 보타강사의 관음도)

@따라서 사바세계가 곧 극락정토요,

현실 세계와 극락세계가 불이(不二)라고 주장하였으며,

현실 속에서 극락세계의 실현을 희구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선종(禪宗), 화엄종(華嚴宗),

천태종(天台宗) 등의 종파에서는

만법유심(萬法唯心)의 이치에 의해

자기 마음을 닦아 불성(佛性)을 깨닫는다는 취지 아래,

새로운 극락관인

자성미타유심정토설(自性彌陀唯心淨土說)을 주창하였다.

 

다시 말해 이는 자기 마음 가운데 본래 갖추어져 있는 성품이

아미타불과 다르지 않지만 미혹하면 범부가 되고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며,

아미타불이나 극락정토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마음 가운데 있다고 본 것이다.

 

(지리산 법계사 극락전 아미타내영도)

중국에 불교가 처음 도래했을 때 불교의 교리가 분명치 않아

격의불교(格義佛敎)가 유행했는데

이는 도교적인 허무관(虛無觀)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때문에

극락이라는 말보다 생사윤회의

번뇌를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해탈을 갈구했다.

해탈은 곧 열반으로 모든 번뇌와 생사윤회의 틀을 벗어난 곳으로

열반이 곧 극락이라는 의미와 같은 의미가 된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론(肇論)>에서 승조(僧肇)는

이를 묘존(妙存)이라고 불렀다.

묘존이란 공간적인 것이 아니라

유무를 벗어난 마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중국 보현보살성지 아미산 보현보살상의 벽화)

 

@조론의 <묘존(妙存)>에 대한 설명을 보면

「유무(有無)를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거기에 있지도 않음을 묘(妙)라 말하고

자체는 단절치 않음을 존(存)이라고 말한다.

이는 유* 무의 어느 쪽에도 집착하고 안주함이 없는

열반의 심오한 자취이다.

이처럼 심오한 자취는 유*무에 상즉하지도 않았고,

유*무를 떠나지도 않은 사이에 오묘하게 존재한다.

그러므로 「묘존(妙存)」 이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열반은 묘존이라고 말하기 했으나

이는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의 의미를

정면으로 나타낸 것이다.」라고 했다.

 

중생의 견지에서는 생사(生死)가 고뇌가 되므로

극락이라는 이상향이 필요하지만,

대승의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서는

생사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극락이라는 공간적 의미의 이상향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대승에서 훗날 이를 이어받아 <만법유심(萬法唯心)>

즉 유심정토(唯心淨土) 사상이 정립되어 진 것이다.

 

(중국 보타낙가산 나한탑의 관음도)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수행법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채택되고 있는 것은

『관무량수경』의 십육관법(十六觀法)과

『유마경(維摩經)』의 설이다.

『유마경』에서는 정토에 태어나는 길이 여덟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① 중생을 도와주되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중생을 대신하여 모든 고생을 달게 받을 것,

② 모든 중생에 대하여 평등하게 겸손할 것,

③ 모든 사람을 부처님과 같이 공경할 것,

④ 모든 경전을 의심하지 않고 믿을 것,

⑤ 대승법(大乘法)을 믿을 것,

⑥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을 것,

⑦ 자신의 허물만 살피고 남의 잘못을 생각하지 않을 것,

⑧ 늘 온갖 공덕을 힘써 닦을 것 등이다.

 

그리고 정토의 종류로 17가지를 들고 있다.

직심(直心) · 심심(深心) · 육바라밀(六波羅蜜) ·

사무량심(四無量心) · 사섭법(四攝法) ·

십선법(十善法:이는 하나로 함)의 어느 하나라도

완숙하게 성취하면 극락에 왕생한다는

정신적인 정토왕생관을 제시하고 있다.

 

(경산 성굴사 아미타내영도)

이러한 수행은 극락왕생을 추구하는

정토교에서도 차별을 두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토교에서 말하는 극락은 기독교의 천국과 비슷한 곳이지만,

불교의 극락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단 극락왕생한다면 더 이상 죽음과 윤회의 굴레에서

고통받지 않을 수 있지만 극락에 와서도 성불하기 위해서는

여기서도 계속 아미타불과 같이 해탈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수행자(즉 보살)로서

극락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일생보처

(一生補處: 다음 생에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약속된 경지)의 상태인지라

사실상 윤회는 끝나게 되는 것이다.

 

(중국 아미산 보국사 관음도)

그렇기는 하지만 기독교의 천국처럼

죄인이라도 갈 수 있다는 점도 비슷하나,

구품왕생(九品往生)이라 하여 천국과는 달리

죄를 지은 정도에 따라 9가지 등급으로 나누는 차별대우가 있다.

가장 낮은 등급인 하품하생(下品下生)으로 왕생한 사람들은

극락에서도 남들과 같이 지내지 못하고 연꽃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아미타불과 여러 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나 아라한의 경지에 오를 때 이 안에 갇힌 사람들은

오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음성 설법만을 들을 수 있으며,

그것도 무려 12대 겁 동안 갇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경전으로 보면 극락왕생설의 근간은 <무량수경>에 근거하고

유심정토설의 근간은 <방광반야경>에 따른 것으로

훗날 선종과 결합하여 선정겸수(禪淨兼修)라 하여

참선과 염불을 같이 연마해야 한다는 사상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중국 보타낙가산 혜제사 아미타 삼존불)

 

@극락은 하나뿐인가?

극락이 대표적인 정토다 보니

대부분 정토교 신앙=극락왕생을 따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불교에서 정토는 극락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기독교 천국과의 또 다른 점이다.

미륵의 도솔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

아촉불의 동방묘희정토도 정토에 속한다.

관세음보살수기경에서는 아미타불이 열반에 든 후

관세음보살이 성불하면 그 명호가

보광공덕산왕여래(普光功德山王如來)라고 한다.

그리고 보광공덕산왕여래가 열반에 들면

대세지보살이 성불하여

선주공덕보왕여래(善住公德寶王如來)라는 부처가 된다고 한다.

 

(완도 고금도 수효사 삼존불)

 

분명한 것은 아미타불이나 특정한 부처님만이

정토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이 성불하면 자신의 불국토를 가진다고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 사바세계는 석가모니불의 불국토이다.

 

(항저우 영은사 석가모니불)

유마경에 보면 사리불존자가 이곳 사바세계는 더럽다고 말했는데

그러자 바로 석가모니불이 발가락으로 땅을 누르자,

바로 광명이 찬란한 청정한 국토로 변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모두 자신들이

연꽃 위에 앉아있는 걸 봤다.

그리고 다시 발가락으로 땅을 눌러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영천 영지사 악착보살)

법당의 악착보살이 보살이 외줄 밧줄에 매달려

반야용선을 타려고 오르는 것은

극락을 가기 위해서는 악착보살이 외줄의 긴 밧줄에 매달려

이를 악물고 오르듯 길고도

험난한 수행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상징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