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칠불(過去七佛)과 전법게(傳法偈)

2019. 2. 23. 17:37붓다의 향기

 

 

(아미산 보국사)

 

과거칠불(過去七佛)과 전법게(傳法偈)

 

같은 씨족(氏族)의 유대를 존중하고, 조상을 숭배하고, 가계를 계승하며,

씨족의 단결을 꾀하고 소목(昭穆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차례)을 분별하는 등

동족(同族)집단의 본질을 물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족보(族譜)를 만들 듯이

 오늘날의 모든 종교의 종파(宗派) 역시 그러하여 같은 예를 밟고 있다.

특히 불교의 선종에서는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법통(法統)을 매우 중요하게 취급하였으며,

이와 같은 법통의 전승을 법맥(法脈)이라고 하였다.

인도의 경우에는 이 법맥이 석가모니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누구의 법맥을 이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됨에 따라

 과거칠불설(過去七佛說)과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이 생겨났다.

 

 

(사천성 아미산 보국사의 칠불)

 

과거칠불(過去七佛)은 지난 세상에 출현한 일곱 부처님으로서,

비바시불(毘婆尸佛)을 시작으로 하여 제2 시기불(尸棄佛), 3 비사부불(毘舍浮佛),

4 구류손불(俱留孫佛), 5 구나함모니불(俱那含牟尼佛),

6 가섭불(迦葉佛), 7 석가모니불로서,

이들의 법맥이 차례로 이어져 석가모니불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닫고

 7일 동안 보임(保任깨달음을 더욱 갈고 닦음)을 하였는데,

그때까지 석가모니는 여래선지(如來禪旨)를 증득한 것으로 되어있었다.

 7일이 지난 뒤 석가모니는 우연히 총림방(叢林房)을 지나다가 한 성자를 만났는데,

그때 성자는 석가모니를 기다린 지 오래임을 밝히고

과거칠불 가운데 여섯 번째인 가섭불로부터 위촉받은 여래밀인(如來密印)을 전하여 주고,

또 조사선지(祖師禪旨)를 깨치도록 하였다고 한다.

 

 

 

(사천성 아미산 보국사의 칠불)

 

이와 같은 진귀조사설은 중국의 선종에 널리 유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입당구법(入唐求法)을 하고 최초로 선종을 들여온 범일(梵日)에 의해 전하여졌다.

 , 과거칠불과 진귀조사설에 의하면, 석가모니는 단독으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오랜 옛적부터 내려오는 조사선의 법맥을 이은 것으로 되어있고,

그 법맥이 끊임없이 이어져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항저우 영은사 대웅보전의 석가모니)

 

석가모니 이후 인도에서는 석가모니불을 시작으로 보리달마로 이어진

이십팔조설(二十八祖說)의 법맥은 북위시대(北魏時代)에 길가야(吉迦夜)

담요(曇曜)가 함께 찬술한 부법장인연전 付法藏因緣傳에 의거한 것이며,

이것이 후대에 불조법통으로 확정되었다.

이와 같은 인도의 선종 법맥은 제28조 보리달마가 중국에 와서

선법(禪法)을 전함에 따라 널리 전승되었는데,

중국에서도 인도와 같이 초기에는 한 제자에게만 밀인(密印)을 전하여

 제6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두륜산 대흥사 석가모니 삼존불)

 

@우리 나라에서도 신라불국토설(新羅佛國土說)과 관련하여 과거칠불에 대한 신앙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는 과거칠불의 사람 터가 있었다고 한다.

, 과거칠불이 머물면서 설법하던 사찰로 흥륜사(興輪寺), 영흥사(永興寺), 황룡사(皇龍寺),

분황사(芬皇寺), 영묘사(靈妙寺), 사천왕사(四天王寺), 담엄사(曇嚴寺) 등을 들고있다.

 

이 설()16세 때 위나라로 가서 현창화상(玄彰和尙)의 밑에서 공부하고 온 고구려의 승 아도(阿道)

그의 어머니 고도령으로부터 신라로 가서 전법 하라는 명을 받는데

이때 고도령이 "그 나라에는 절을 세울만한 곳이 일곱 군데가 있는데,

모두 전불(과거칠불)이 수행하던 수행처다"라고 하면서 위의 7절을 언급한 것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신라가 백제나 고구려와 달리

일찍부터 불교와 남다른 인연이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후대에 윤색된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으며,

또한 신라인들이 염원하던 불국토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이 과거의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곳임을 상기시켜,

그들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그곳에 새로운 불국토를 재현하도록 하려는 데서 출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무등산 원효사 석가모니 삼존불)

 

기록에 따르면, 과거칠불 가운데 비바시불은 과거 91겁에 출생하였으며,

왕족으로 파파라수(波波羅樹) 아래에서 성불한 뒤 3회의 설법했는데,

1회 때는 168000, 2회 때는 10만 명, 3회 때는 8만 명을 제도하였다고 한다

. 장아함 대본경에 의하면 그 당시 중생의 수명은 8만 살이었다고 한다.

 

시기불은 과거 장엄겁에 출현한 1,000불 가운데 제999불로서

광상성(光相城)의 왕족으로 출생하였으며,

 분타리수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3회에 걸쳐 설법하였는데,

1회에는 10만 명, 28만 명, 37만 명을 제도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중생의 수명은 9만 살이었다.

 

비사부불은 과거 31겁 때 무유성(無喩城)에서 왕족으로 출생하였으며,

바라수(婆羅樹) 아래에서 성불하여 2회의 설법을 했는데,

1회에는 7만 명, 2회에는 6만 명을 교화하였다.

그 당시 중생의 수명은 6만 살이었다.

 

구류손불은 안화성(安和城)의 브라만 가정에서 태어나

시리수(尸利樹) 아래에서 성불하였으며,

1회의 설법으로 4만의 비구를 교화하였다.

그 당시 중생의 수명은 4만 살이었다.

 

 

구나함불은 브라만 가정에서 출생하여 오잠바라수(烏暫婆羅樹) 아래에서 성도하였으며,

1회의 설법으로 3만의 비구를 제도하였다. 그 당시 중생의 수명은 3만 살이었다.

 

 

가섭불은 바라나의 브라만 가정에서 태어나 니구률나무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1회 설법에서 제자 2만 명을 제도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중생의 수명은 2만 살이었다.

특히, 이 가섭불이 좌선하였다고 하는 연좌석(宴坐石)은 황룡사에 있었으며,

높이는 5, 6척가량이고 둘레는 3발로 위는 편편하였는데,

황룡사의 두 차례 화재로 인해서 돌이 갈라진 곳이 생겼으므로 철로 붙여서 보호하였다고 한다.

  

또 과거칠불은 선종에서 석가모니에게 심인(心印)을 전한 법맥을 표시하는 데 나열되기도 한다.

 , 석가모니의 법맥은 칠 불이 차례로 계승하여 내려오던 것을 받은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선종 사찰에서는 이 과거칠불도를 많이 묘사하고

그 옆에 각각의 오도송(悟道頌)을 기록하기도 한다.

 

 

(보타낙가산 혜제사의 석가모니불)  

 

장아함 대본경에 따르면 칠 불의 종족은

 비바시여래와 시기부처님과 비사바부처님 이 세 분의 등정각(等正覺)은 그 성이 구리야시이다.

그다음의 세분 여래 그 성은 모두 가섭이시고,

(석가모니)는 이제 위 없는 높은 이로써 모든 중생을 인도하나니

 천상ㆍ인간에서 제일 용맹스러운 나의 성은 구담이고

앞의 세 분 등정각 그 종족은 찰리이시다.라 했다.

 

 

 

(운남성 원통사의 석가모니불)

 

@과거칠불 전법게송(傳法偈頌)

 

1毘婆尸佛(비바시불)

身從無相中受生 (신종무상중수생)

猶如幻出諸形相 (유여환출제형상)

幻人心識本來空 (환인심식본래무)

罪福皆空無所住 (죄복개공무소주)

 

몸은 종래 ()이 없는 것에서 태어났으니

마치 모든 현상과 같이 환상에서 나왔음이라

환상 같은 인간의 心識(심식)은 본래 공한 것이니

죄와 복도 모두 공한 것이며 () 한 바가 아니로다

 

2尸棄佛(시기불)

起諸善法本是幻 (기제선법본시환)

造諸惡業亦是幻 (조제악업역시환)

身如聚沫心如風 (신여취말심여풍)

幻出無根無實性 (환출무근무실성)

 

일어나는 모든 善法(선법)도 본시 환상이요

모든 악업 역시 환상이로다

몸은 마치 모였다 흩어지는 물거품 같고, 마음은 형상없는 바람이로다

환상이 생겨난 근거가 없으니 그 성품의 결과인들 있을 수 없네

 

3毘舍浮佛(비사부불)

假借四大以爲身 (가차사대이위신)

心本無生因境有 (심본무생인경유)

前境若無心亦無 (전경약무심역무)

罪福如幻起亦滅 (죄복여환기역멸)

 

가사 四大(사대)를 잠시 빌려 생겨난 이 몸이나

마음은 본래 생겨남이 없이, 다만 인연 따라 나타남이라

앞에 境界(경계)가 없고 마음 역시 없다면

죄와 복도 환상이니 어디서 일어나고 어디서 멸하는 것인가

  

4拘留孫佛(구류손불)

見身無實是見佛 (견신무실시견불)

了心如幻是了佛 (료심여환시료불)

了得身心本性空 (료득신심본성공)

斯人與佛何殊別 (사인여불하수별)

 

몸의 실상이 없음을 보는 것이 곧 부처를 보는 거요

마음의 나타남이 환상과 같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부처를 다 아는 것이로다

심신의 본성이 모두 공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 사람이 곧 부처님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리오.

  

5拘那含牟尼佛(구나함모니불)

佛不見身知是佛 (불불견신지시불)

若實有知別無佛 (약실유지별무불)

知者能知罪性空 (지자능지죄성공)

但然不怖於生死 (단연불포어생사)

 

부처님은 몸에 (실체가 있다고) 아는 견해가 없나니 이것이 부처요

만약 실체가 있다고 안다면 따로 부처는 없느니라.)

지혜로운 자가 능히 자성이 공하다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생사의 두려움이 없으리다.

 

6迦葉佛(가섭불  

一切衆生性淸淨 (일체중생성청정)

從本無生無可滅 (종본무생무가멸)

卽此身心是幻生 (즉차신심시환생)

幻化之中無罪福 (환화지중무죄복)

 

모든 중생의 성품 청정하여

본래부터 생겨남도 멸할 수도 가히 없는 것이로다

곧 몸과 마음 모두 환상 속에서 태어났거늘

환화(幻化) 속에 죄와 복이 따로 없느니라

 

7釋迦牟尼佛 (석가모니불)

法本法無法 (법본법무법)

無法法亦法 (무법법역법)

今付無法時 (금부무법시)

法法何會法 (법법하회법)

 

법은 본래 무법에 법하였고

무법이란 법도 또한 법이로다.

이제 무법을 부촉할 때에

법을 법하려 하니 일찍이 무엇을 법할꼬

 

 

(남양주 봉선사 석가모니삼존불)

  

@‘과거불이라는 단어에는 부처로 알려진 석가모니 이전에도 '부처'는 여러 명이 있었고,

석가모니는 그 깨달음을 얻은 많은 '부처' 가운데 한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즉 깨달음이란 석가모니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선언이자

부처는 석가모니 이전의 과거에도 있었으며

또한 미래에도 다시금 이 땅에 나타나 중생을 제도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린 것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成道)한 것처럼

과거불 역시 제각기 그들이 깨달음을 얻은 나무가 존재한다.

이 나무를 도량수(道場樹)라고 부르는데,

 <대본경>에 언급된 칠 불의 도량수를 보면 다음과 같다.

 

비바시부처님은 파파라(波波羅:파타라)나무 밑에 앉아서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셨고,

시기부처님은 분다리(分陀利)나무 밑에 앉아서 최정각을 이루셨다.

비사바 부처님은 바라(婆羅) 나무 밑에 앉아서 최정각을 이루셨고,

구루손부처님은 시리사(尸利沙) 나무 밑에 앉아서 최정각을 이루셨다.

구나함부처님은 오잠바라(烏暫婆羅:우담바라)나무 밑에 앉아서 최정각을 이루셨고,

가섭 부처님은 니구율(尼拘律) 나무 밑에 앉아서 최정각을 이루셨다.

이제 여래ㆍ지진인 나는 발다(鉢多) 나무 밑에 앉아서 최정각을 이루었느니라.

    (인도 바루후트나 산치의 불탑 부조(浮彫)7불이 각기 깨달음을 얻은 도량수로 은유 되어 표시되어 있다.)

 

 

(밀양 영산정사 석가모니불)  

 

과거 7불은 깨달음의 시기에 따라서 과거인 장엄겁(莊嚴劫)에 성불한

세 부처(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이후

현겁(賢劫)에 성도한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 네 부처로 분류되는데,

현겁 시대에 성불한 네 명의 부처를 가리켜 최초의 4(四佛)이라고 한다.

 천축을 순례하고 그 여정을 <불국기>로 저술한 중국의 승려 법현(法顯)

 과거 코살라국의 수도였던 슈라바스티(사위성) 부근에 이들 4불의 유적이 있었다고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