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경흥사

2024. 1. 14. 16:46국내 명산과 사찰

 

맥반석 동굴법당을 조성한 경산 성굴사로 가는 길에

경흥사(慶興寺)란 푯말이 있어 어떤 절인가 궁금하여서 들렸다.

경흥사는 동학산(東鶴山)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앞산은 병풍산(屛風山)이다. 이는 학(鶴)이 날아가지 못하게

병풍산(屛風山)을 마주하고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경산 경흥사(慶興寺)는

659년(무열왕 6)에 혜공화상(惠空和尙)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근거가 희박하며 1637년에 창건된 절이라고 한다.

 

사찰 창건 내력(來歷)에 의하면

경흥사의 본래 대웅전은 현재 명부전이 있던 곳인데

지금의 대웅전을 새로 짖기 위해 해체할 때

상량문에 사찰 내력을 밝히는 자료가 발견되었다.

그 상량문을 보면

 

『1990년 10월 20일 경흥사 법당 해체 중 상량도리 중앙부에서

한지(韓紙)로 만든 봉투 모양의 통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상량문 3건이 들어 있었다.

상량문은 ‘영좌 경산 남면 동학산 경흥사 삼창기

(嶺左 慶山 南面 動鶴山 慶興寺 三創記)’,

‘숭정2년 정축 6월일 경흥사 신창기

(崇禎二年 丁丑六月日 慶興寺 新創記)’,

‘강의 58년 기해 2월일 법당 중수 이시창내증

(康熙五十八年 己亥二月日 法堂 重修 而始創乃曾)’ 등 3개인데,

이 중 가장 빠른 신창기가 1637년에 작성된 것이다.

다만, 신창기의 ‘숭정 2년 정축’은 ‘숭덕(崇德) 2년 정축’의 오기이다.

따라서 경흥사는 1637년에 창건되어

1644년에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봉안하였으며,

1719년(숙종 45)에 중창하고

1897년(광무 1)에 삼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에는

김사숙(金士淑)에 의해 삼창 되었다고 전한다.』

 

사적비의 내용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서산대사, 영규대사, 사명대사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700~800명의 승병을 훈련시킬 정도로 큰 절이었지만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훈련시켰다는 이유로 탄압받았고

일제 강점기 때에는 물론 6·25전쟁 전후의 사회적 혼란기에

문화재 도난, 도굴 등으로 인해 사찰은 점차 피폐해졌다.

 

근년 사세 회복 노력에 힘입어 대웅전, 명부전,

독성전, 산령각, 종각 등 대부분의 불사가 마무리되었다.

대웅전은 1993년에 건립되었다.

 

경흥사의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명부전(冥府殿)·

자미전(紫微殿)·독성전(獨聖殿)·산령각(山靈閣)·

강학당(講學堂)·심우당(尋牛堂)·범종각·요사·종무소 등이 있는데,

중심 불전은 대웅전과 명부전이다.

 

지정 문화재로는 보물 제1750호 지정된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과

명부전의 수미단부재 1점이 있다.

수미단 부재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5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부전

경흥사의 옛 대웅전이었던 명부전은

조선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경흥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이다.

옛 삼용사에서 옮겨 지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주포식 맞배지붕이다.

 

명부전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뒷벽 불화 뒤에

일본 국장(國章)을 그려 넣어

일왕과 일본을 경배하도록 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광복 후에 절에서 그것을 제거했다고 전한다.

 

명부전에는 옛 삼용사에서 옮겨온 불상은 현 대웅전으로 옮기고

새로 아미타삼존불을 조성하였는데 수미단을 그래도 두었다.

경흥사 명부전의 이 수미단 부재(慶山 慶興寺所藏須彌壇部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55호 지정되어 있으며,

이 수미단에 석가모니 불상을 주불로 지장보살상과

관세음보살상이 협시로 봉안되어 있다.

주불이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석가모니불로 볼 수 있지만

협시보살을 기준으로 보면 아미타불로 볼 수 있다.

 

 

 

@경산 수미단부재(慶山須彌壇部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5호인 지정된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는 1644년에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봉안할 때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미단은 초월적인 수미산을 표현한 것으로,

경흥사에 남아 있는 일부로 명부전이

대웅전으로 사용될 당시의 것이다.

수미단 전면은 가로 350㎝, 높이 20㎝이며,

좌우 측면은 120㎝이다.

수미단은 용, 기린, 물고기, 목련, 게 등이 조각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수미단의 구조나 크기로 볼 때 현존하는 부재는

원 수미단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같은 지역 같은 시대 1635년)에 조성된

환성사 대웅전의

수미단(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439호)과 같이

수미단의 구성과 조각 수준이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신중탱

지장탱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주포식 맞배지붕 구조로

법당에는 보물인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1970년대에 대웅전[현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을

개금불사(改金佛事) 하였으며,

1990년에 재윤(在閏)이 대웅전을 해체·복원하고

요사 1동을 보수하였다. 이때 새로 지은 대웅전이

1993년에 완공되어 현재의 명부전에 있던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대웅전으로 이전 및 봉안한 것이다.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명칭: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문화재 지정: 보물 제1750호

(1980년 지방문화재246였다다 2011년 보물 1750호로 지정)

조성 시기: 1644년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개금불사 때

발견된 복장기(腹藏記)의 조성기문(造成記文)에 의하면,

1644년(인조 2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존불은 결가부좌하고 있고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螺髮)이고 둥그스름한 작은 육계(肉髻)가 있으며,

귀는 짧고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으나

이목구비와 삼도(三道)를 갖춘 모양이 온화함을 주고 있다.

경흥사의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의 주불은

보물 제1378호로 지정된 하동 쌍계사 대웅전에 봉안된

석가모니불( 조선 이조17년/1639년)과 가사,

수의 등과 그 조각 수법이 거의 일치한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모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양쪽으로 내려진 머리카락은 두 귀를 감싸면서

어깨 위로 드리웠을 뿐 수식은 없다.

머리는 대개 보통 15cm 정도인데

경흥사의 협시보살의 두발은 17cm로 알려져 있다.

 

 

지장탱

신중탱

범종

 

자미전과 독성전 산령각

일반적으로 삼성각(三聖閣) 안에 칠성, 독성과 산신을 모시는 데

경흥사는 자미전과 독성전, 산령각으로 분리하여

대웅전 뒤편에 나란히 있다. 자미전(紫微殿)과 독성전(獨聖殿)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 건물을 반으로 나누어

각각 1칸씩 사용하고 있다.

산령각(山靈閣)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씩인 맞배지붕 구조이다.

 

 

칠성탱

@자미전

자미전(紫微殿)의 자미(紫微)는 도교에서 말하는

자미대제(紫微大帝) 또는 자미원(紫微垣)에서 유래한다.

자미원(紫微垣)은 동아시아의 별자리인 삼원의 하나로

삼원 중 두 번째에 해당하며, 천구의 북극을 포함한다.

서양 별자리 큰곰자리의 일부에 해당하며,

작은곰자리, 용자리를 포함한다.

도교에서 북극성은 모든 별을 통솔하는 자미대제이고,

북두칠성은 칠원성군으로 보았는데,

불교와 결합하면서 자미대제는 치성광여래로,

칠원성군은 칠여래가 되었고,

해와 달은 일광보살과 월광보살로서

치성광여래의 좌우 보처로 자리 잡았다.

도교에서 칠성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하는 신앙이었는데,

불교의 약사 신앙과 결합한 것이다.

 

@치성광여래 신앙은 중국 불교에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새롭게 나타난 북극성 신앙으로 다라니를 염송하면서

재앙을 없애고 복을 기원하는

인간의 기복 의식과 밀교가 결합한 신앙이다.

이 신앙이 한반도에 전래된 시기는

회창폐불(會昌廢佛)(840~846) 당시

당에 머물렀던 승려들이 대거 귀국하였을 때

치성광여래 신앙 관련 밀교 경전이나 신행물을 가져왔거나

870년부터 다시 입당하였다가 귀국한 구법승들에 의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민간에선 칠성님, 칠성신, 칠성여래(如來),

칠원성군(七元星君)등으로도 불리며.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칠성여래불은 원래

칠성유리광 약사여래불(七星琉璃光 藥師琉璃光如來佛)로

보통 치성광여래라고 불린다. 치성광여래는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의 황제인 북극성을 의미하는 부처님으로

손에 세상을 평정하는 금륜(金輪)을 가지고 있어

금륜불정나무치성광여래(金輪佛頂南無熾盛光如來)라고도 한다.

 

@인도에서는 북극성을 일러 묘견보살(妙見菩薩)이라 했으며,

큰곰자리의 7개 별을 북두(北斗) 내지는 북두칠성이라 불러

신격화시켰으며, 북극성인 묘견보살은

칠성을 권속으로 거느리고 있다.

특히 묘견보살은 눈이 밝고 청정하여 사물을 잘 보아

인간의 선악을 기록하며, 국토를 옹호하여 재앙을 소멸하고

적을 물리치며 사람의 복을 증장시키는

현세 이익적 신앙으로 부각되어 왔다.

 

산령각

@칠성신화

옛날 어느 과부댁에 일곱 형제가 있었다.

그런데 일곱 형제는 어머니가 밤만 되면 어디론가 나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하루는 뒤를 따라갔더니 어머니가 밤마다

차디찬 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

이웃 마을 남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닌가.

형제는 이에 아무 말 없이 다음 날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아

어머니가 발이 시리지 않게 하였고,

어머니는 이를 모른 채

이런 고마운 일을 한 이들이 나중에

하늘의 별이 되게 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형제는 북두칠성이 되었다.

넷째는 징검다리를 놓을 때 투덜거렸기 때문에

다른 별에 비해 흐릿하게 보인다.

 

선학당

선학당(강원) 선방 심우당 요사

강학당은 공부하는 공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대웅전 앞 명부전과 나란히 위치한다.

이 밖에도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심우당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

사찰의 업무 공간인 종무소가 조성되어 있다,

 

 

범종각

범종각은 종각에 비해 종이 너무 커서

종각 안에 2개의 고주를 세워 종을 매달아 놓았다.

 

 

 

 

부도전

경흥사에는 예로부터 부도가 많아 경내 동쪽의 구릉지를

지금도 ‘부딧골’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한때 경흥사에서 수행한

옛 스님들의 부도 36기가 보존되어 있었다.

 

조선시대는 부도 6기가 있는데,

1722년(경종 2)에 조성된

지월당혜휘대사(智月堂慧輝大師) 부도와 탑비,

해운당치흠대사(海雲堂致欽大師) 부도,

금구당선각대사(琴龜堂禪覺大師) 부도 등 3기는

주인이 확인되었지만, 나머지는 알 수 없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부딧골 일대를

모두 들추어 황폐지로 만들면서

부도들을 200~300미터 아래의 계곡으로 밀어냈는데

광복 이후 신도들이 그중 일부를 수습해

부도 6기와 깨진 비석 조각 1기를 봉안해

이 자리에 모셔놓은 것이다.

 

사찰 입구에 보이는 비석들은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경흥사 사적비, 재윤스님 행적비, 경흥사 법당 신축기,

경산시장 최희욱 공덕비,

경산군수 이상우 공덕비 등 모두 5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