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의 해를 맞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2024. 1. 2. 00:07삶 속의 이야기들

 

올해는 갑진년(甲辰年) 용의 해다. 청룡(靑龍)의 해다.

오행에서 갑(甲)은 오행의 동쪽을 상징하고

나무를 상징하며 색으로는 청색을 상징하고 있어서

청룡의 해라고 한다.

청룡(靑龍)은 한자 문화권에서

상상의 동물로 여기는 영물(靈物)로서,

파란색 또는 초록색을 띤 용을 의미한다.

즉, 청색 용(龍) 또는 녹색 용(龍)이다.

사신(四神) 중 하나라서 그런지 다른 색의 용들에 비해 유명하다.

같은 푸른 창(蒼)자를 써서 '창룡(蒼龍)'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수원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의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

청룡(창룡)은 동방을 다스리는

태세신(太歲神 : 태세는 木星과 같음)으로도 통한다.

또, 방위에 대응하는

청색·백색·적색·흑색의 배치도 고대사상의 특징이다.

 

(칠갑산에서)

전설에서는 용이 도를 깨우치면

비늘의 색이 파란색이나 초록색으로 변해 청룡이 된다고 한다.

사신 중에서 가장 존엄하고 고귀한 존재이고

심해 용궁에 산다고 전해지며 하급 용들의 수장이라고 한다.

풍수지리에서 동쪽에 흐르는 물을 놓으면

청룡의 힘을 끌어내 길조가 된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풍수지리(風水地理)에서는 무덤이 자리하는

주산(主山)의 왼쪽 산줄기를 청룡으로,

오른쪽 산줄기를 백호로 부르고 있다.

<해동용궁사에서>

청룡은 사신(四神)의 하나로 동쪽을 수호하며

오행 중 나무(木)와 봄을 관장하며 청색을 상징한다.

비와 구름, 바람과 천둥과 번개를 비롯한

날씨와 기후, 식물도 다스린다고 한다.

또한 모든 생명의 탄생을 다스리는 역할도 가지고 있어

중생계에서는 용(龍)은 제왕을 상징하며,

불교에서는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영물로 등장한다.

이런 연유로 전해 내려온 용과 관련된 전설이나

야사가 무수히 많이 알려져 있다.

 

고구려 고분 강서대묘

 

 용(龍)의 형상이 회화적으로 드러난 것은

망자를 지키는 영물로 상징된

<사신도(四神圖)>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진호하는 상징적인 동물을 그린 그림인데

사신(四神)은 ‘사령(四靈)’

또는 ‘사수(四獸)’라고도 지칭하며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일컫는다.

사신에 대한 도상(圖像)과 관념이

언제부터 유래했는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중국의 전국시대부터 진한시대(秦漢時代)에 걸쳐

정착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신에 대한 개념은 오행설(五行說)과도 관련이 깊다.

『회남자(淮南子)』의 「천문훈(天文訓)」에서는

오성(五星)을 설명하면서 동방은 목(木)으로

그 동물은 창룡(蒼龍)이고, 남방은 화(火)로

그 동물은 주조(朱鳥)라 하였다.

그리고 중앙은 토(土)로 그 동물은 황룡(黃龍)이고,

서방은 금(金)으로 그 동물은 백호이며,

북방은 수(水)로 그 동물은 현무라 하였다.

이로 보아 오행 사상에 기초한 천문관 · 방위관 ·

색채관이 사신 사상의 성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방위신(方位神)인 사신은 사방의 수호신으로서

군사적으로는 부대의 깃발, 포진에도 응용되었다.

그리고 좌청룡 · 우백호 · 전 주작 · 후 현무로

풍수지리(風水地理)에 적용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 고대부터 고분의 내부, 건축물,

동경(銅鏡), 동전(銅錢) 등 방위의 의미를 지닌

특정 공간이나 기물에 사신을 장식하는 일이 유행하였다.

 

 

(안성청룡사 범종 용뉴 보물 제114호)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법전 사물로 범종(梵鍾)을 조성하였는데

그 범종의 용뉴(龍鈕)는 반드시 용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 유래를 보면 이런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여주출토 청녕4년명종 보물 제1166호)

용은 9명의 자식이 있다.

그중에서 울기를 잘하고

소리가 우렁찬 자식을 포뢰라 부르는데

종머리에 장식된 용이 바로 포뢰이다.

그런데 이 포뢰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다에 사는 고래라고 한다.

그래서 포뢰가 고래가 나타나거나 소리만 들어도

큰 소리로 운다고 한다.

그래서 범종을 치는 당목을

처음에는 고래 모양으로 하거나

고래 뼈로 만들었다고 한다.

 

(영천 만불사 애기 부처)

불교에서 용(龍)은 불법을 수호하는 영물로 등장한다.

불교의식 중 하나인 관불회(灌佛會)가 그 대표적인 예다.

『보요경(普曜經)』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였을 때

9마리의 용이 공중에서 향수를 솟아나게 하여

그 신체를 세욕(洗浴) 시켰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하여 관불회 때에는

아기 부처님 불상에 감로수(甘露水)를 붓는 의식을 행한다.

 

이 행사는 일찍이 인도에서부터 행하여졌는데,

녹야원에 남아 있는 옛 조각 중에 아기 부처님의 머리에

용왕이 향수를 붓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음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 행사는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의 화원을 상징하여

많은 꽃바구니를 불단에 올리고 불단의 중앙에

석존의 아기 부처님을 안치한 뒤, 욕불게(浴佛偈)를 창하면서

작은 표(杓:바가지)로 감로수를 취하여 부처님의 정수리에 붓게 된다.

(중국 운남성 원통사에서)

 

우리나라 곳곳에 용(龍)과 관련된 전설이 무수히 많다.

함양 용유담의 전설을 보면

용유담에는. 무열왕 때 용유담에 와서 마적사를 짓고

은거했던 마적도사라는 도사가 있었다.

도사는 식량이 떨어지면 쪽지를 쓴 뒤 나귀를 장에 보냈고,

상인들이 그 쪽지를 보곤 나귀에 주문한 물건을 실어 돌려보냈다.

나귀가 돌아와 울면 마적도사는 쇠지팡이로 엄천강에 다리를 놓아

나귀를 건너오게 했다. 나귀가 도착했는데도

마적도사는 지리산 천왕 할매와 장기를 두느라 정신이 팔린 데다,

때마침 용유담의 용까지 서로 승천하려 싸우며

소란스럽게 하는 바람에 나귀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울다 지친 나귀는 그만 죽고 말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마적도사는 장기판을 던져 버렸고,

용유담의 아홉 마리 용 가운데 눈먼 용 한 마리만 남기고

나머지 여덟 마리 용을 쫓아버렸다는 얘기가 전한다.

 

 

고려 건국을 한 왕권에 관련된 이런 전설이 전한다.

옛날에 활을 잘 쏘는 작제건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다.

16세가 되어 아버지를 찾아 중국으로 가는데,

어느 곳에 이르자 배가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뱃사람들이 점을 치더니 고려 사람을 내리게 해야 한다고 하여

작제건이 바다에 남게 되었다.

 

그때 서해 용왕이 늙은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부처로 변신하여 괴롭히는 여우를 물리쳐 달라고 하였다.

용왕의 요청으로 여우가 살던 곳으로 가서

작제건은 활을 쏘아 그 여우를 퇴치하였다.

용왕은 그 보답으로 갖가지 보물을 주며

또 용녀를 아내로 맞게 하였다.

작제건과 아내 용녀는 용궁에서 얻어온 돼지를 따라가

집터를 잡고 살다가, 용녀가 용궁으로 가는 장면을

작제건이 엿보는 바람에 용녀는 용이 되어 영영 가버리고 말았다.

작제건과 용녀는 아들 넷을 낳았는데,

그 가운데 장남인 용건은 길을 가다가

꿈에서 배필이 되기로 약속하였던

미인을 만나 드디어 혼인하였다.

도선(道詵)이라는 풍수가 예언한 대로

과연 왕건이 출생하여 삼한의 주인이 되었다고 한다.

 

(청학동 삼선궁에서)

 

불교 경전에는 여러 가지 용이 등장하고

또 용을 잡아먹는 금시조 이야기가 있다.

 

@사가라용왕(娑伽羅龍王)은 수미산 아래

대해수 아래에 용궁을 가지고 있는 용이고

@난타용왕(難陀龍王)과 우파난타용왕(優波難陀龍王) 은

수미산과 구저라산 사이에 거주하는 곳에

궁전을 가지고 있는 용이다.

(청주 풍주사)

이곳에 거타사마리라는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이를 일명 녹취(鹿聚)라 부른다.

@이 나무의 북쪽에 금시조와 용이 거주하고 있다.

금시조는 가끔 용을 잡아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금시조(金翅鳥)와 용(龍)도 축생의 일종이기 때문에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의

4가지 형태로 태어나는데 태생의 금시조는

태생과 난생의 용만 잡아먹을 수 있고

습생과 화생의 용을 잡아먹을 수 없다고 한다.

 

(칠갑산에서)

습성의 금시조가 태생의 용을 잡아먹으려면

반드시 거타사마리 나무에 앉아 파도를 일으켜만 하는데

태생, 난생, 습생의 용은 잡아먹을 수 있지만

화생의 용은 잡아먹지 못한다고 한다.

화생의 금시조는 태생, 난생, 습생, 화생의 용을

다 잡아먹을 수는 있지만 사가라용왕과 난타용왕과

우파리용왕만은 잡아먹지 못한다고 한다.

용과 금시조는 수미산의 바다에서 같이 살면서

금시조가 용을 잘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잡아먹는 형태는 큰 날개로

사백 유순까지 바다의 깊이를 벌려놓고 잡아먹는다고 한다.

 

(선운사 도솔암 반야용선)

 

불교 회화에서 용의 형상은 반야용선도에서도 등장한다.

반야용선도는 미타불과 그 권속이 왕생자를

용선으로 표현한 반야선에 태워

서방정토로 인도해가는 모습을 그린 도상이다.

용선은 선수(船首)나 선미(船尾), 혹은 배 전체를 살아있거나

조각한 용의 머리나 꼬리 혹은 용의 전신 모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토로 향하는 용선의 도상은 고려시대

「미륵하생경변상도」 (화기에는 용화회도(龍華會圖),

1294년, 일본 교토 묘만지(妙滿寺) 소장)에 보이는

용선이 현재 알려진 가장 이른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