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새해 수락산 매월정에서
2024. 1. 25. 11:54ㆍ삶 속의 이야기들
어언 30여 년을 수락산을 찾다보니 새로운 것은 없지만
새해 들어 눈 내린 다음 날 수락산을 다시 찾았다.
추운 날씨에다 어제 내린 눈이 녹지 않아
조금 평이한 매월정 코스를 잡았다.
매월정 코스는 언덕길 같은 오솔길이 길어
양옆 계곡은 눈이 쌓여 있었지만 길은 녹아 있었다.
매월정 코스는 수락산 등산로 중에서도
영원암 코스보다 더 뜸한 코스라
소요(逍遙)하기는 안성맞춤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날도 춥지만,
눈까지 녹지 않아서 등산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등산객이 붐볐던 매월정도 텅 비어 있었다.
수십 번 매월정을 오르내렸지만 갈 때마다
정상을 오가는 등산객이 쉬어가는 코스라
늘 붐벼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했는데
이렇게 텅 빈 매월정을 보기는 처음이다.
정자 안에는 걸린 많은 편액을 보면서 잠시 사색에 젖어본다.
매월당 김시습이 노원에 들렸을 때 남긴 시인가 보다.
수락산 내원암
초한지(楚漢志)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명장 한신이 조나라를 공격할 때다.
조나라에서는 이좌거(李左車)라는
뛰어난 병법의 전술가가 있었다.
한신이 조나라를 공격할 것을 알고
이를 격퇴할 전술을 왕에게 건의했지만,
조나라 왕은 이를 거부했다.
한신은 이를 알고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공격하자
조나라는 패배했다. 한신은 포로로 생포되어 잡혀 온
이좌거를 풀어주고 스승으로 모시면서
그에게 자문을 구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을 생각하다 보면
한번은 잃은 일이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을 생각하다 보면
반드시 한번은 얻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智者千慮 必有一失 愚者千慮 必有一得).
또 성인은 미친 사람의 말도 고려해 보았다고 합니다.」
이는 <사기(史記)의 《회음후열전》>에 나온 이야기다.
삶의 가치는 천 번이 아니라 만 번을 생각해도 똑 부러지는 답이 없다.
부모 슬하에 있을 때와 청운의 꿈을 품는 청년의 시대가 다르고
더 나아가 나이가 들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되어 살아온 삶의 가치가
카오스의 나락에 떨어지게 된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화두처럼 품어 온 이 질문을 눈 쌓인 매월정을 내려오면서
답 없는 질문인 줄 알면서도 다시 한번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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