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7(2023)년 부처님 오신 날에

2023. 5. 27. 16:30삶 속의 이야기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불기(佛紀) 2567년 서기로는 2023년이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다.

무명(無明)의 불길을 끄라는 의미일까?

아니면 끝없는 중생의 탐욕의 불길을 식히려고 내리는 걸까?

티브이를 켜니 조계사에서 부친님 오신 날

봉축 행사를 하는 법요식이 방영되고 있었다.

아마도 전국 사찰마다 비가 오는데도

모두 크고 작은 이런 행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해동용궁사

그런데 부처님은 왜 이 사바세계에 오셨을까?

경전은 오만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도 사바의 세계는 있었고,

부처님이 떠나신 후에도 이 사바세계는 계속되고 있다.

부처님은 이 사바세게 중생들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

무엇을 남겨주고 떠나갔을까?

 

아침고요 수목원

경전은 여래의 의미를 <여시래(如是來) 여시거(如是去)>라 했다.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셨다는 의미이다.

성철 스님의 유명한 법어로 비유하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다.>

부처님이 오신 것도 그렇고 가신 것도 그러할 뿐이다.

불변의 실체는 없다. 정해진 고정된 영원한 그 어떤 실체는 없다.

그러므로 산을 물이라 하면 어떻고 물을 산이라 하면 어떤가?

산은 이름이 산이요, 물은 이름이 물일뿐이다.

 

영주 부석사

부처님을 오신 날이라고 중생은 부처를 기린다.

이는 중생과 부처가 다르기 때문에 봉축 행사를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부처는 부처요, 중생은 중생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름이 중생이요, 이름이 부처일 뿐이다.

중생도 부처도 불변의 존재가 아니다.

실체가 없는 이름일 뿐이다.

 

이름은 중생들이 분별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름이 아니라 중생의 분별심이다.

분별심이 없다면 부처를 중생이라 한들,

중생을 부처라 한들 무엇이 다를까?

부처가 중생이요, 중생이 부처라고

경전 또한 그렇게 설하고 있다.

본래면목으로 보면 부처가 중생이요,

중생이 곧 부처라는 의미다.

본래면목이란 분별심 없는 마음이다.

분별심이 없어지면 일체의 선악시비가 사라지게 된다.

분별심이 사라진 마음은 생사를 초월한 청정한 마음이다.

그럼으로 지옥천당도, 극락 열반도 그 의미가 사라진다.

확정된 그 어떤 불변성을 지닌 것도 없는데

지옥 천당이 어디에 있으며 보리(菩提)와

생사의 뿌리(根)가 어디에 있을까?

마음에 분별을 놓아 버리면

어제도 오셨고, 오늘도 오신 것이다.

어제가 오늘이요, 오늘이 어제이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오늘은 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