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도림사(道林寺)

2023. 11. 16. 06:28국내 명산과 사찰

곡성 도림사(道林寺)

창건: 고대/삼국

문화재 지정;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호

건립 시기 : 660년

소재지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월봉리 327

 

무등산을 탐방하고 바로 태안사를 찾았지만

귀경 시간이 늦어 모텔에서 일박하고 이른 아침 도림사를 찾았다.

도림사는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동악산(動樂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로

지방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찰이다.

 

사찰 안내서에 따르면 도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660년(태종무열왕 7)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는데,

그 당시 풍악의 음률이 온 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動樂山)이라 하고, 도인(道人)이 숲같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道林寺)라 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582년경 신덕왕후(神德王后)가 절을 창건하고

신덕사(神德寺)라 하였는데, 660년 원효가

사불산화엄사(四佛山華嚴寺)로부터 옮겨와서

도림사로 개칭하였다고도 한다.

 

그 뒤 876년(헌강왕 2) 국사 도선(道詵)이 중건하고

지환(知還)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말기 처익(處翼, 1813∼1888)이

산내 암자인 길상암(吉祥庵)을 창건하였다고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보이는데,

당대의 유명한 목수장(木手匠)이자 승려인 영해(影海)도

도림사에서 주석하였다. 길상암은 현재 옛터 위에 토굴만 남아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중심 건물인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해,

대루(보제루) 동 총 11개의 전각과 범종각이 조성되어 있다.

 

문화재는 보물 제1341호로 지정된 도림사 괘불과

보물 제1934호로 지정된 아미타여래설법도가 있다.

괘불은 1730년(영조 6)에 제작된 것으로

크기는 세로 300㎝, 가로 278㎝이다.

아미타여래설법도는 괘불과 같은 해 조성된 것으로

보광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다.

절 앞 약 500m 지점에 5기의 부도(浮屠)가 남아 있고,

절 앞 계곡에는 반석이 좋아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청류동계곡의 수려함과 더불어

도림사 일대는 오토캠피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주문

동악산 도림사란 편액이 걸려 있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조금 오르다 보면

도림사의 대루와 오도문이 나온다.

 

대루와 오도문

도림사의 대루(大樓)는 일반 사찰에서 보제루와 같은 용도로 이용되는 건물이다.

경내로 들어가는 문은 <도림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오도문으로 불린다.

일반 사찰의 해탈문이나 불이문에 해당한다.

오도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도림사의 본당이 보광전이 있고

보광전을 오르는 돌계단 옆에 괘불대가 조성되어 있다.

 

오도문(悟道門)은

돌 계단 위에 <도림사>란 편액이 걸려 있는 문이 오도문이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과 겹처마에,

기단 없이 원형 초석 위에 원형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위로 주두를 얹고 주두 위에 장혀가 도리를 받고 있다.

일주문 바깥쪽에 의제 허백련(許百鍊 1891∼1977)이 쓴

도림사 현판이, 안쪽에는 오도문 현판이 걸려 있다.

 

 

 

돌계단 위의 건물이 도림사의 본당인 보광전이다. 좌측에 괘불대가 보인다.

궁현당

 

대루를 앞에서 본 실내 모습이다.

 

보광전(普光殿)

도림사의 주불전인 보광전은 1658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포식 맞배지붕으로 겹처마에 단청한 건물이다.

보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거나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하여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도림사는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모시고

후불탱화로 아미타여래설법도를 봉안하고 있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좌협시로 관음보살을 우협시로 대세지보살을 봉안했다.

 

(사진:출처: 문화재청)

@곡성 도림사 아미타여래설법도 (谷城 道林寺 阿彌陀如來說法圖)

문화재 지정: 보물 제1934호

조성: 1730년(영조 6)

 

보광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된 아미타여래설법도는

1730년 철매(哲梅)의 증명 아래 수화원(首畵員) 채인(彩仁),

진행(眞行), 즉심(卽心), 각천(覺天), 책활(策活) 등이 제작한 것이다.

이 그림을 주도한 채인과 즉심은 1723년 흥국사와

1725년 송광사 불화 제작 때 의겸(義謙)을 수화사로 모시고

함께 작업을 한 대표적인 의겸파 화원이며,

진행과 각천은 1730년 운흥사 괘불 조성 때 의겸을 도왔다.

또한 의겸을 비롯해 채인, 덕민, 지원, 각천, 책활 등은

같은 해(1730년) 공주 갑사의 ‘석가여래삼세불도’를

함께 제작하였을 만큼 이 들은 긴밀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탱화는 아미타불을 중앙에 그 앞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두고 그 아래 좌우에 사천왕을 배치하고

상단에 아난과 가섭 그리고 8대보살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 도림사 아미타여래설법도는

공주 갑사 석가여래삼세불도의 제작 의도와 달리

단독의 후불벽면에 걸기 위해 조성된 불화로서,

갑사의 그것 보다 좌우 폭이 넓어졌으나,

인물의 표현이나 구성, 묘선, 색채, 문양 등 도상이나

양식의 면에서 대체로 갑사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18세기 최고의 화승 의겸의 화풍이

그의 유파 화원들에게 어떻게 스며들고 발전되어 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특히 적·녹색의 강한 색 대비 속에 백색, 황토, 양녹, 갈색 등

부드러운 중간 색조가 안정적으로 뒤받쳐 주고 있는 설채법,

그리고 주저 없는 유려한 필선, 중후한 이목구비를 가진

상호 등에서 1724년 송광사 응진전 영산회상도,

1725년 송광사 영산회상도 등

당대의 최고의 화승(畵僧) 의겸(義謙)의 화풍을

잘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아미타여래와 관음·대세지를 비롯한 팔대보살,

그리고 권속들이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며

짜임새 있는 화면구성을 갖추었고,

정취하고 유려한 필선과 중간 톤의 안정된

색감과 문양을 통하여 우수한 화격을 보여준다.

18세기 전반기 유행한 화풍과 화사 간의 교류를 통한

화맥(畵脈)의 전승 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신중탱

@도림사 괘불대

보광전 돌계단 옆에 괘불대가 있는 것을 보아 괘불이 있을 것이라 여겼는데

보광전 법당 내 기둥에 액자 속에 사진을 걸어 놓았다.

사찰의 괘불은 초파일 내지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침전할 수 있기에 포기했다가

검색해보니 문화재청에 올려져 있어 이를 펌했다.

 

 

@도림사 괘불탱 (道林寺 掛佛幀)

문화재 지정: 보물 제1341

크기: 가로 7.19m, 세로 7.16m

조성: 숙종 9년 (1683) 17세기 후반

 

대개 삼존도의 괘불은 입상인 데 반해 도림사 괘불은

좌상이며 협시는 입상인 특이한 예이다.

도림사 괘불탱은 중앙에 석가불과

좌우에 보살상을 배치한 석가삼존도 형식이다.

중앙의 본존불은 왼손을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을 내려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표정은 근엄하기보다는 여인상을 들어내고 있고,

목에는 삼도가 있고 우수(右手)의 팔목은 빈약하게 묘사되어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안에는 승각기(僧却崎) 착용하고 있는데

고리 매듭이 묘사되어 있다.

본존불 좌우에 연꽃 가지를 들고 서 있는 두 보살은

영락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고려의 불화 양식을 따른 것 같다.

두 보살은 거의 비슷한 형태인데,

왼쪽 보살의 보관에는 화불이 묘사된 것이 오른쪽 보살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보관에 화불이 묘사된 것은 관음보살을 상징한다.

좌협시가 관음불이라면 우협시는 당연히 대세지보살이 된다.

협시보살을 기준으로 본다면 본존은 아미타여래가 되어야 하지만

사찰에 따라 석가모니불로 명시된 경우가 있다.

일례로 양평 용문사의 대웅전에 봉안된 협시보살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인데 본존은 석가모니불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불교가 처음 신라에 전래될 때

석가모니불과 아미타여래를 동일시로 보았기 때문에

신라시대의 창건한 절임을 상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 숙종 9년(1683)에 계오·삼안·신균 등의 세 화원 비구가 그린

이 도림사 괘불은 그림에 대한 내력을 적어 놓은 화기가 있어서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자료가 귀한 석가삼존불형식으로 그 색채구성과 문양 표현,

인물의 형태 등에서 새로운 면을 보여주고 있는

17세기 후반기의 대표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사진 및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칠성각이다.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도림사의 칠성각은 일반 사찰의 삼성각과 같다.

칠성탱을 중앙에 좌우에 산신과 독성탱을 봉안하고 있다.

 

 

 

 

 

@응진전

응진전(應眞殿)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을 협시로 모시고,

다시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끝부분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함께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도림사의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가섭과 아난존자를 봉안하고

그 옆 좌우에 범천과 재석천을 두고 십육 나한을 양쪽에 봉안하고 있다.

 

 

 

보광전에 바라 본 풍경이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대루이고 좌측은 궁현당이다.

 

 

범종각이다. 

정현당

청풍당

 

우측 건물은 궁현당이고 계단 위의 건물이 보광전이고

그 옆 건물이 응진전이다.

좌측 건물은 설선당(반야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