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불교 초전 성지 나주 불회사

2023. 9. 3. 12:37국내 명산과 사찰

 

덕용산 기슭에 있는 불회사(佛會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불회사는 384년(침류왕 1)에

인도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창건하였으며,

일주문의 <初傳聖地德龍山 佛會寺>라는 편액의 내용과 같이

백제불교 전래와 동시에 건립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불회사라는 사찰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지리서를 보면

과거에는 불호사(佛護寺)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처음 창건 때는 불호사(佛護寺)로 불리다가

1808년(순조 8) 무렵부터 지금과 같은

불회사(佛會寺)로 절 이름이 바뀐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창건 내력에 대한 불회사의 홈피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몇 가지 짚어본다.

<불회사 홈피>에 따르면

『불회사는 동진 태화(太和) 원년(서기 366년)

인도의 마라난타 스님께서 창건하였고,

당나라 현경초에(서기 656년)

신라의 희연조사(熙演祖師)가 재창하였으며,

원말 지원(至元)초(서기 1264년경)

원진국사(圓眞國師)께서 삼창(三創)하였습니다.

조선 정조 22년(서기 1798년) 2월 덕룡산에 큰불이나

사찰의 전각이 완전히 소실된 것을

당시의 주지 지명(知明) 스님이

기미년(서기 1799년) 5월 15일 상량하였고,

1808년에 전각을 모두 복원하였습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인해 몇 개의 전각만을 남겨두고

모두 모두 소실된 것을 불회사 회주 정연스님이

1991년에 주지로 부임하여 25년간의 불사를 통해

6·25 때 소실된 것을

모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첫째, 불회사의 홈피에서는 창건연대가

동진 태화(太和) 원년(서기 366년)으로 되어 있지만

「불호사중창급단청문(佛護寺重刱及丹靑文)」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또한 <조선사찰사료>에 의한 기록과도 일치한다. 

태화(太和)는 366년에서 371년 11월까지

5년 11개월 동안 사용하였던

중국 동진(東晉) 시대 폐제(廢帝)의 연호이다.

 

둘째, <원말 지원(至元)초(서기 1264년경)

원진국사(圓眞國師)께서 삼창(三創)하였다>라고

기술되어 있는데

원진국사(圓眞國師:1171~1221) 고려 중기의 고승으로

일몰 연대를 고려하면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다.

포항 내연산 보경사에 조성된 스님의 승탑(보물 제430호)은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세워졌지만.

원진국사비(보물 제252호는)의 기록을 보면

「원진국사 승형(承逈)이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국사로 추증하고 ‘원진(圓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는 입적 3년 뒤인 1224년(고종 11)에 세워졌는데,

비문은 당대의 문신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셋째, 신라불교의 최초 가람이 아도화상이 지은

구미 도리사(桃李寺)라고 하면

백제불교의 최초 가람은 일반적으로

영광 법성포의 불갑사(佛甲寺)를 일컫는다.

불갑사는 불회사와 같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 소속으로 되어 있으며,

1909년에 쓴 〈불갑사창설유서 佛甲寺創設由緖〉에 의하면

384년(침류왕 1)에 마라난타가 창건했고,

805년(애장왕 5)에 중창했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창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384년(침류왕 1)에

행사존자(行士尊者)가 창건하였다고 하였는데,

행사존자는 마라난타(摩羅難陀)의 다른 이름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마라난타라는 이름을 번역하면 ‘동학(童學)’이 된다고 하였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불갑사는 문주왕(475~477) 때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다.

 

불갑사의 창건주와 창건연대가 불회사와 동일하다.

그러므로 백제불교의 최초 가람을

<불갑사창설유서>에 따르면 불갑사가 되고

<불호사중창급단청문>과

<조선사찰사료>에 따르면 불회사가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마라난타가 침류왕 원년(384)에

백제 도읍지로 바로 들어온 것이 아니고

지금의 법성포에 도착해서 불갑사를 창건한 다음

불회사를 세우고 도성으로 돌아갔다는 일설도 있다.

마라난타와 연관된 사찰은

불회사와 불갑사 외에 군산 불주사(불지사)가 있다.

@백제불교 전래를 살펴보면

마라난타(摩羅難陀)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중국 남조의 동진을 거쳐 백제로 건너왔다.

침류왕은 교외까지 나아가 그를 맞아 궁궐 안에 머무르게 하였다.

마라난타는 궁중에 머물며 국왕 등에게 설법하였으며

백성들도 점차 교화되어 불교를 신봉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백제불교의 시작이다.

마라난타는 침류왕을 설득해 불사를 봉행하게 하였다.

385년(침류왕 2)에 새로운 도읍지 한산주(漢山州)에

백제 최초로 절을 창건하고 10인의 백제인을 출가시켜 득도시켰다.

한산주는 지금의 광주지역에 해당한다.

마라난타는 인도 북부의 간다라 지역에서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불교를 전파하는 데에 뜻을 두고 있었다.

그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수행 정도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마라난타는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사방을 유력하며 불교를 전파하였다.

마라난타의 교화에 힘입어 백제는

392년(아신왕 원년) 2월에 ‘불법을 숭상하고

복을 구하라’라고 하는 교서를 반포하게 된다.

~출처: 위키백과~

 

절 입구에 2기의 부도가 조성되어 있다.

좌측의 석종형 탑신 위에 보주를 안치한 이 부도는

당호가 도암당으로 부조되어 있다.

이런 형태의 부도는 조선 후기에 조성하던 방식이다.  

 

(도암당 부도)

(청암당 부도)

우측의 부도와 함계 탑기가 조성되어 있다.

이 부도는 백양사 주지로 주석하셨던

청암당 학능스님의 부도로

조성 형태로 보아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도가 있는 위쪽 산 능선에 원진국사승탑이 있다.

고려 중기의 고승 원진국사(1171~1221)의 사리탑 1기로,

탑신 하측에 “延祐四年丁巳五月 日立(연우4년정사5월 일입)”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1317년(충숙왕 4)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다.

2000년 6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5호로 지정되었다.

원진국사 승탑과 승탑비는 포항 내연산 보경사에도 조성되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가기 전 깊옆에

국가민속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된 불회사 석장승이 있다.

우측 석장승은 수염을 댕기처럼 꼬아놓은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남자 장승이고

좌측의 석장승은 부드러운 형상을 한 여자 장승이다.

 

(상원당장군으로 남자 장승이다. 그런데 上자 위에 <一>가 첨가되어 있다.)

 

(마모가 심하지만 주장군 글씨는 남아 있다.  여자 장승이다)

그런데 민초들의 작품이라서 그런지 장승의 이름이 뒤바뀐 것 같다.

장승은 그 형태나 크기에도 다양하거니와,

몸체에 새기거나 쓰인 이름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천하대장군,

지하대장군(혹은 지하여장군)류가 주종이지만

도교적으로는 남자 장승을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여자장승을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으로 부른다.

그런데 불회사의 이 석장승은 도교적인 형태를 취하면서도

남녀의 이름이 뒤바뀐 것 같다.

덕룡산 불회사의 바로 옆 운흥사에도 같은 석장승이 있는데

남자 장승은 상원주장군, 여자장승은 하원 당장군으로 되어 있다.

조성 시기는 숙종 45년(1719)에 조성된

운흥사의 석장승과 같은 시기로 추측된다.

 

상원주장군은 "당산하나씨" 또는

"문지기장군'으로 불리는 할아버지 장승을 가리키며,

"하원당장군"이 "당산할머니"로 불리는 할머니 장승을 일컫는다.

중국에서는 대보름을 상원(上元) 이라 부른다.

도교에서는 천관(天官)이 복을 내리는 날을 의미한다.

중원(中元)은 7월15일,

하원(下元)은 10월 15일 이를 삼원(三元)이라 부른다.

장승 유적지 1999년 국립민속박물관 집계에 의하면

540여 기가 있다.

 

마을 장승은 동제(洞祭)의 신으로 마을 수호와

벽사(辟邪), 축귀(逐鬼), 방재(防災),

진경(進慶)의 기능을 지니지만,

사찰 장승은 호법금제(護法禁制)와 절의 경계 표시,

사방산천, 비보, 잡귀의 침입을 막는 사찰 수호의 기능을 지닌다.

 

석장승에서 조금 오르면 덕용산 불회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덕용산 불회사 진여문 해탈문

회랑처럼 보이는 진여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주심포 팔작지붕의 건물로,

측면을 통해 들어가는 특이한 구조이다.

이 건물은 정면에는 <덕용산불회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그 중앙에 진여문과 천왕문이란 작은 편액이 붙어있다.

천왕문에는 입구 문에는 금강역사 2기가 그려져 있고

안에는 사천왕의 조상(彫像) 대신 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사천왕문을 벗어나면 정면에 대양루라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뒤편 편액은 천수전으로 되어 있다.

 

대양루의 돌계단을 오르면 정면에 대웅전 건물이 보인다.

 불회사 대웅전

대웅전: 보물 제1310호

건칠비로자나불: 보물 제1545

전면 3칸, 측면 3칸 다포식 팔작지붕

소조보살입상: 전남 유형문화재 제267호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상량문 및 건축 수법 등으로 볼 때

1799년(정조 23년)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장식성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의 화려한 다포집이다.

입구 계단 옆에는 괘불대가 조성되어 있다.

사찰 안내서에 의하면 화재를 입어

순조 8년(1808) 5월에 다시 지은 것이 지금의 건물이라고 한다.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진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모두 궁창판이 있는 4분합의 빗살문인데

한국전쟁 이전에는 꽃살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은 덤벙주초로 비교적 큰 편이며

그 위에 세워진 기둥은 민흘림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문짝은 두터운 통 판자로 짜서 창살무늬와

불상·화조 등을 새긴 희귀한 것이었는데,

공비들이 그들의 소굴을 덮기 위하여 떼어갔다고 한다.

 

법당에는 보물 제1310호인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을 본존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두고 있다.

협시보살은 건칠(乾漆)이 아닌 소조(塑造)로 조성되어 있다.

 

@나주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 (羅州 佛會寺 乾漆毘盧遮那佛坐像)

문화재 지정: 보물 제1545호

불상 높이: 128cm

조성한 시대: 고려 말~ 조선 초기

 

소조(塑造)보살입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7호

조성 시기: 조선시대(15세기경)

불회사 대웅전에 봉안된 건칠상으로

오른손이 왼쪽 손을 감싸 쥔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이다.

긴 신체 비례와 구부정한 자세 등에서

고려 말∼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불상 내부는 비워진 상태이다.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삼베와 칠을 6∼8겹 정도 겹으로 올려

옻칠을 한 건칠상으로, 눈동자와 백호는 수정을 끼워 넣었다.

손은 나무로 만들어 끼우고 철정으로 고정하였다.

건칠불상은 고려시대에서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제작되고

유행하였던 불상의 재료로서 현재 약 20구 정도 남아 있다.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지권인의 수인을 한

비로자나불상으로 무릎이 넓은 장대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신체 비례와 앞으로 숙인 구부정한 자세와

뚜렷한 이목구비가 특징이다. 손 모습이나 군의를 묶은 띠 매듭,

대의 착의법 등은 고려 후기 특징인 반면 신체에 비해

큰 얼굴과 상체가 긴 신체 비례, 도식적인 옷자락 표현 등에서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 건칠불상은 약 20점가량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고려말∼조선초 여래상 작품은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을 비롯하여

경기도 안성 청원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1795호),

전라남도 나주 심향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1554호, 2008년 지정),

전라북도 남원 선국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보물 1517호, 2007년 지정),

전라남도 나주 죽림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전남 유형문화재 제298호),

경상북도 봉화 청량사 건칠여래좌상(보물 1919호),

경상남도 하동 쌍계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등이며

비로자나불상은 불회사 불상이 유일하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여말선초의 나주지역에서 제작된 건칠비로자나불좌상으로

건칠이라는 소재의 특수성과 여말선초 시기에 보기 드문

비로자나불 도상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건칠불상은 칠이라는 값비싼 재료를 이용하여 제작하는 상으로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값이 비싸고 공정이 까다로운 단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작품 수가 많지 않고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에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불상의 재료이며

유난히 전남 나주, 남원지역에 많은 편이어서

불회사 불상의 자료적 가치는 높다.

불회사 건칠비로자나불좌상은 여말선초기의

건칠불상과 비로자나불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대웅전의 이 건물은 흔히 볼 수 있는 조선 후기 양식에 속한 건물로

천장 주위에 22개의 각종 불교와 관련된 벽화를 그려

대웅전으로서의 장엄미를 돋보이고 있다.

 

 

법당의 기둥 위에는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라

창방과 평방이 놓이고 전·후면의 각 주 칸에는

외3출목, 내4출목 포작을 2조씩,

양측 면에는 1조씩 배치하였는데

외부살미의 끝은 심하게 휘어져 올라가 있고

내부에서는 화려한 연봉형으로 마감하였다.

또한 정면 어칸에는 용머리 장식의 안초공을 사용하여

용두는 외부로 힘차게 빠져나왔고

그 꼬리는 내부로 힘차게 뻗었다.

 

건물의 양측 면 중앙에서는 건물 내부로 2개의 충량을 걸어

그 머리를 용두로 장식하여 대량에 걸치었는데

이러한 결구법은 조선 중기 이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수법이다.

건물의 내부천장은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혼용하였는데

대량(기둥)에는 학과 기린등이 부조되어 있고

빗천장에는 물고기, 연화문 등을 매우 정교하게 조각하여 달았다.

 

건물 기둥 위 창방 위에 평방을 돌리고

그 위에 공포를 짜 올려 다포계(多包系)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른 것으로 보이나

가운데 칸의 양 기둥 사이로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한 점이 특이하다.

즉, 용두를 밖으로 나오게 하고 그 꼬리를

건물 안쪽 대들보 밑에 끼워 넣은 수법, 양

쪽 대들보 사이로 상호 중앙을 향해 마주 보도록

또 다른 두 마리의 용을 목각으로 조각한 수법,

건물 내부에 연꽃봉오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등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한 사찰과 건축 수법에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처럼 나주 불회사 대웅전은 조선 후기 건립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건물로 역사적 의의와 함께

학술적 가치가 있다.<자료출처: 문화재청>

 

 

윤장대

 

신중탱

 

 

 

 

대웅전 앞 돌계단 양쪽에 괘불대가 조성되어 있다.

 

극락전

나한전과 삼성각 한 단 아래에 위치한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3에 주심포 겹처마 팔작지붕의 전각으로

2013년에 건립되었다. 협시불 없이 아미타불상만 봉안되어 있다.

 

 

 

삼성각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주심포 겹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 정조 23년(1799)에 건립되었다.

삼성각에는 통상 칠성, 산신, 독성을 모시는 전각인데

불회사의 삼성각에는 독성 대신 용왕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용왕탱

 

나한전의 문은 잠겨져 있어 법당 안을 보지 못했다

응향각

 

명부전

 

 

입구쪽에는 대양루, 대웅전 쪽에서는 천수전 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범종각에는 불전 4물이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