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기행3) 고금도 수효사(修孝寺) 1,700년 침향(沈香)으로 빚은 국내 유일 3불상

2023. 8. 13. 22:28국내 명산과 사찰

 

불상(佛像)은 토불(土佛), 목불(木佛), 금동불(金銅佛) 등

다양한 소재로 많은 불상이 조성되었지만,

목불(木佛) 중 침향으로 빚은 불상은 국내에서도 유일하게

전남 완도군 고금도 수효사에 봉안된 3 존불 뿐이다.

수효사의 침향 불은 진도 군내면 녹전리의 갯벌에서

1,700여 년 동안 묻혀 있다가 세상에 드러난

침향으로 빚은 불상인데 국내는 물론 동서양을 통틀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불상이 아닌가 사료된다.

이 침향으로 빚은 불상 조상(彫像)은

미륵불의 하생(下生)을 기원하는 민초들의 간난과

애환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함과 동시에

미륵신앙에 대한 매향(埋香)과 매향비(埋香碑)를 통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고금도 덕암리의 대성장이란 여관에서 일박하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날이 너무 더워서 걷기도 힘이 들어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인 충무사만 들려보고

귀경하려고 하다가 먼 길 내려와 달랑 한 곳만 보고

돌아가기가 서운해서 숙소를 나서면서

가볼 만한 사찰이 부근에 없느냐고 주인에게 물었더니

수효사(修孝寺)를 추천하셨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불상이 있어 가볼만 하다고 하신다.

바다에서 건진 불상이라면

강화 보문사의 18 나한상(인천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제29호)과

평택 심복사의 비로자나불(보물 제565호)를 참배한 적이 있어

어떤 불상인지 호기심이 났다.

네비를 찍어보니 20여 분 거리다.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섬 바람이 그런대로 선선하다.

고금도는 섬인데도 완도에서 두 번째 큰 섬이라서 그런지

수효사 가는 길은 논이 제법 광활하다.

 

 

 

사찰 경내에 다다르니 입구 바위에

「대한불교 조계종 수효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전각을 둘러보니 종각이 보이고 대웅전과 극락보전

그리고 종무소와 요사채인 듯한 건물이 보인다.

신흥사찰이라서 그런지 전각이 단출하다.

먼저 대웅전을 참배했다.

주요 불상이라면 당연히

대웅전에 모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웅전에는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둔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협시로만 본다면 본존불은 아미타불로 보아야 하겠지만

근래에 지은 사찰은 불상을 이렇게 배치하고 있다.

 

 

아무리 보아도 특별한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참배를 드리고 있는데 보살 한 분이 법당에 들어오셨다.

 

사시예불 드리기는 이른 시간이라 법당보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주지 스님이었다. 수효사는 비구니 사찰인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스님은 소박하고 소탈한 모습에 학식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스님의 풍모는 지금은 열반에 드셨지만

천상산 용주사의 옛 주지 스님과 너무나 흡사해서

왠지 모르게 호감이 느껴졌다.

스님은 수효사에는 갯벌에서 건져 올린

1,700년 수령을 지닌 침향목으로 빚은 3 불상을 조성하여

극락보전에 봉안되어 있다고 일러 주신다.

여관 주인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불상이란

침향목으로 빚은 이 불상을 말한 모양이다.

 

대웅전 법당의 신중탱과 칠성탱

산신탱

 

@극락보전

이른 시간이라서 그런지 극락보전 법당문은 채워져 있었다.

스님이 나오셔서 법당문을 열어주어

법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여느 법당과 달리

맑은 향기가 뿜어져 나와 놀랬다.

갯벌에서 건져 올린 1700년의 침향목으로 빚은

미륵불과 아미타 그리고 약사여래 3불의 향기였다.

 

 

전국의 명산 고찰은 거의 다 참배하러 다녀보았지만,

법당에서의 이런 향기를 맡기는 처음이다.

그것도 책에서나 보았던 침향의 향기를

일정에 없었던 남도의 끝자락 고금도의 한 사찰에서 만날 줄이랴.

이는 인연(因緣)이 아니라 기연(奇緣)이다.

 

@고금도 수효사 침향 3 불상

문화재지정: 전남 완도군 향토 문화유산 유형문화재 제22호

지정일시: 2023년 04월 14일

규격: 미륵불 높이 92cm

아미타불 높이: 85cm

약사여래불 높이: 85cm

재질: 침향(녹나무과 녹나무속)

#2017.1.13. 아미타불 완성

2017.6.20. 미륵불, 약사불 완성

조각: 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목아 박찬수

 

 

(건조시킨 침향 원목)

 

수효사의 침향 삼 불은 2011년 8월 2일 발굴되어

수효사에서 5~6년 건조한 후

조각이 시작되어 2023년에 완공되었다.

중앙에는 미륵불을 모시고 좌협시로 약사여래,

우협시로 아미타불을 모셨다.

극락보전의 주불은 원래 아미타불이 되어야 하겠지만

미륵불을 본존불을 모신 것은

침향으로 빚었기 때문이

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사료된다.

 

(발굴 당시의 침향)

수효사의 침향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보면

1차 검사 결과에서는, AD 340~410,

2차 검사 결과에서는 AD320~AD430으로 나왔다.

침향목의 생육 시기는 위자료를 보면 AD300년 전후로 추정되며

이때는 마한~백제시대에 해당한다.

백제의 불교 전래는 공식적으로는

침류왕 1년(384) 호승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전래한 것으로 본다.

신라의 경우 진평왕(재위:579~632) 때의 화랑이던

김유신(金庾信)이 이끄는 낭도 집단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렀는데,

용화(龍華)’는 미래불인 미륵이 후세에

인간세계에 하생(下生)하여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3회에 걸쳐 설법한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이며,

‘향도’는 불교 신앙단체이다.

이로 보아 통일신라 이전에 이미 미륵신앙이

신라와 백제 지역에 전래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륵불)

이 결과로 보면 통일신라시대 이전은 물론

백제시대에 이미 전래된 미륵하생 신앙이 자리잡고

매향의식이 이루어졌음을 실증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된다.

다시 말해 침향은 땅(갯벌)에 묻기 때문에

매향(埋香)이라고도 하는데

역사적으로 보아도 미륵하생의 미륵신앙과 뗄 수 없는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약사여래)

수효사 불상을 빚은 침향목은

2011년 8월 2일 양식장을 짓기 위해

전남 진도군 군내면 녹전의 한 갯벌에서 작업 중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발굴 당시 크기는 길이는 9.6m,

둘레는 5.4m, 무게는 7톤 정도였다고 한다.

이 침향을 보시받아 삼등분하여 미륵불과 아미타,

약사불 3 존을 조상한 것이다.

 

(아미타불)

침향(沈香)은 용연향(龍涎香 : 향유 수컷 고래가

대왕오징어 등을 먹고

소화하지 못해 토한 토사물이 원료다)과

사향(麝香 : 사향노루 수컷의 향낭에서 채취한

분비물을 건조한 것을 말한다)과 함께

세계 3대 향(香)으로 꼽히는 귀한 영물(靈物)에 속한다.

침향은 예부터 희귀한 약재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상품(上品)은 금보다도 더 값이 나간다고 하는데

침향불을 어찌 돈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있으랴.

 

 

침향(沈香)은 물에 가라앉고 향기가 진하다는 의미다.

침향은 나무 속에 수지가 함유된 목재로서

재질이 무거워 물에 넣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침(沈)이라고 했고,

향기가 짙어 모든 기를 모아 위로는 하늘에 이르게 하고

아래로는 천[地]에 이르도록

심부름을 잘하는 향기가 있는 향이라는 뜻이다.

불전에는 향(香). 등(燈). 꽃(花). 과일. 차(茶). 쌀 등

육공양물을 올리고, 사시가 되면

정성껏 밥을 지어 마지를 올리는데

불전에는 올리는 육공양물(六供養物) 중

<향(香)>은 침향(沈香)을 으뜸으로 친다.

침향은 예부터 약용으로 많이 이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 등 종교적인 공양물이나 몰약으로서

최고의 선물로 여겨져 왔다. 다만 워낙 희귀하고

고가(高價)이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이용할 수 없었고

왕족이나 부자들만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침향이란 열대 나무 아퀼라리아(Aquilaria)에서 나오는

나무 기름 덩어리를 말한다. 그냥 보면 나무 조각 같지만,

나무에 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상처 부위에 모인

수지가 수년에서 수천 년에 걸쳐 응결된 귀한 덩어리이다.

 

<극락보전의 신중탱)

침향 속에서 수지가 점착되는 원인은

침향 자체가 성장 과정에서 있게 되는 각종 병균의 침투나

외부로부터의 충격 손상, 또는 벌레들의 침입 등으로 인해

상처가 생겼을 때 침향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병균이 침투한 곳과 상처가 난 곳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자구적 조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아미타불 이 불상은 침향 3불을 모시기 전에 불상인듯 하다.)

침향은 땅에 묻는 것이기 때문에 매향(埋香)이라고 한다.

묻는 곳이 일반적인 땅이 아니라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갯벌 같은 곳에 묻고 이를 표시하는 비(碑)를 새웠는데

일반인들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곳에

자연석 그대로 석면에 기록만 남겼기에

사실 매향비를 췹게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미타불과 미륵불이다. 침향불 모시기 전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향비가 있는 곳은 매향을 했다는 의미가 된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은 탁본이나 기록까지 포함한다면

대략 18기가 되지만 점차 더 많이 발견되리라 사료된다.

불행히도 수효사의 매향비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 2부에서 매향과 매향비를 포스팅한다.)

 

@스님이 차 한잔하고 가라고 해서 방에 들어갔더니

벽에는 백의관음과 달마상의 그림이 걸려있고

<應無所住而生其心>이란 금강경의 글귀가 보인다.

머무름 없이 마음을 쓴다는 의미인데

중생살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경내를 벗어나니 푸른 벼가 물결처럼 일렁이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 실없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