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김용사의 산내 암자 대성암, 양진암, 화장암
2023. 6. 17. 16:17ㆍ국내 명산과 사찰
문경 운달산(雲達山) 김용사(金龍寺) 탐방은
2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
김용사의 산내 암자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김용사(金龍寺)는 대성암(大成庵), 양진암(養眞庵),
화장암(華藏庵), 금선대(金仙臺)의 4개의 산내 암자를 두고 있다.
김용사의 안내 이정표를 보니 3개의 암자로 가는 길은
분명히 알 수 있겠는데 금선대 가는 길은 모호하다.
마침 마을에서 올라온 연세 드신 한 분이 있어서 길을 물었더니
운달산 초행이라면 길을 찾기가 좀 번거로울 것 같다고 하길래
금선대는 포기하고 나머지 3개 암자만 들러 보기로 했다.
3 암자는 모두 암자 입구까지 차로 가능했지만,
김용사 입구에 차를 주차 시켜 놓고
운달산 계곡과 숲을 즐기기 위해 걸어가기로 했다.
날은 덥지만,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이라
풍광도 즐길 겸 쉬엄쉬엄 걸었는데도 20분이 채 안 되어
여여교(如如橋)에 도착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대승암과 양진암으로 향하게 되고,
다리 건너기 전 오른쪽 길은 화장암으로 가는 길이다.
여여교를 지나 대승암으로 향했다.
<대성암(大成庵)>
대성암(大成庵)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불사(佛事) 중이라 어수선했다.
이 암자는 潁月(영월) 스님이 김용사의 靑霞殿(청하전)을 옮겨
창건한 암자로 1800년(정조 24년)에 옮겨 세웠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후일 혜월(慧月)스님이 그 뒤를 이어
법당의 단청과 불사를 마무리했다고 하는 절인데
현재는 비구니가 거처하는 사찰이다.
대성암 비구니 스님의 말에 의하면
이 암자는 한때 무속인이 거처하고 있던 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임시로 마련된 법당에 모신 부처님 한 분은
무속의 끼가 보인다.
건물이 낡아서 불사를 시작한 모양인데
한참 작업 중이라 어수선하여 돌아갈까 하다가
임시 법당을 차려놓았다는 안내판을 보고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참배라도 하고 가려고 경내로 들어갔다.
입구의 건물에는 大成庵이란 편액이 걸려 있고
그 안쪽에 또 다른 편액이 걸려 있는데 몹시 난해한 글자다.
돌아와서 옥편을 찾아보니 <조계문>이었다.
처음 글자는 <조(曹)>의 본자(本字)이고,
그 다음 谿는 시내 계자다.
조계는 시냇물이 모여 강을 이루듯 사부대중이 그렇게 운집하라는 의미인 듯하다. 대성암의 양쪽에 계곡이 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 아닌가 사료된다.
전각들은 불사 중이라 그런지 침계루라는 편액 외에는
다른 편액은 보이지 않는다.
임시 법당에는 알 수 없는 보살상 1기와 유리관 속에 모신
관음보살 외에는 다른 부처상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본당에는 이 관음불상만 모셨던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임시 법당 옆 전각은 산신각이라고 하는데,
편액은 걸려 있지 않았다.
이제 경내를 벗어나 양진암으로 향한다.
< 양진암(養眞庵)>
대성암에서 포장된 길을 따라 2~30분 오르니
거대한 돌담이 성벽처럼 둘러 있고
그 안쪽에 양진암(養眞庵)이 있다.
입구에는 산세가 높아서 그런지 장미가 피어 있고,
경내는 고요하면서도 참 정갈스럽게
비구니의 사찰답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양진암은 1658년(효종 8년) 설잠(雪岑)이 창건하였으나
1664년 소실된 후 1749년(영조 25년) 환월(喚月)이 중건하였다.
그 뒤 1769년 무영(無影)스님이, 1825년에 경봉(瓊峰)스님이,
1840년 정봉(靜峰)스님이, 1928년 주지 인택(仁澤)스님이
각각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양진암은 현재 비구니 수행처로,
전각으로는 <ㄱ>자 형의 건물에 요사채를 겸한
정해루(靜海樓)가 있고, 작은 법당이 마련되어 있다.
법당에는 관음보살이 유리관 속에 봉안되어 있고
뒤편에는 영산회상도와 그 옆에 신중도가 걸려 있다.
이 건물 위쪽에 보광전(寶光殿)이 있다.
@ 요사채 안의 법당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에서 나온 복장유물과 더불어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8호 지정되어 있다.
공식 명칭은
<문경 김용사 양진암 목조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 일괄
(聞慶 金龍寺 養眞庵 木造觀音菩薩坐像 및 腹藏遺物一括)>
불상의 전체 높이는 37cm이며 頭部에 비해 어깨가 좁다.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들고 있는데 조성 시기는
조선 후기 불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복장유물에 나온 조성기에 의하면
1658년 조각승 승일(勝一) 스님이 수화승으로 참여했으며
운달산 운수암에 봉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복장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원문에 의하면,
1843년(도광 23)에 금어(金魚:불화를 그리는 사람)인
인간(仁侃), 변관(釆寬), 응상(應尙)에 의해 개금되었다고 한다.
@요사채 내에 신중도가 걸려 있다.
무심히 보았는데 알고보니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다.
공식 명칭은
<문경 김용사 양진암 신중도(聞慶 金龍寺 養眞庵 神衆圖.)>이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단 3폭을 이어 붙여 만든 세로 139.8cm,
가로 106cm 크기의 신중도이다. 1880년에 제작된 것으로
19세기 후반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응상(應祥)의 작품 가운데
섬세한 묘사와 상호 표현의 독특함이 잘 드러나는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목조관음보살좌상 뒤편의 탱화는
영산회상도로 공식 명칭은
문경 김용사 양진암 영산회상도
( 聞慶 金龍寺 養眞庵 靈山會上圖)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6호 지정되어 있다.
세로 162.5cm, 가로 241.5cm 크기로
가로축이 긴 장방형의 불화이다.
법임(法任)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것으로는 유일하며
사불산파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불산은 김용사의 옆 대승사가 있는 뒤산이다.
@보광전(寶光殿)
보광전은 요사채가 있는 건물 위쪽에 있으며
양진암의 본당으로 보광전(寶光殿)에는
여래가 아닌 4분의 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보광전의 낙관을 보면 이는
청남 오제봉(菁南 吳濟峯: 1908~1991) 선생의 작품이다.
선생은 일제 강점기 시절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서예가로
예서체에 뛰어나고
진주 義谷寺(의곡사)의 주지를 역임했다고 한다.
@寶光殿 주련
白雲雲裏靑山重(백운운리청산중)
靑山山中白雲多(청산산중백운다)
日與雲山長作儷(일여운산장작려)
安身無處不爲家(안신무처불위가)
흰 구름 구름 속에 청산이 겹겹이고
청산의 산속에 흰 구름이 쌓였으니
날마다 구름과 산을 벗하여 사노니
몸 편안하면 어디든 내 집이 아니랴?
일반적으로 <普光殿>이라 할 경우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건물을 말한다.
《80화엄경》에 ‘그때 세존께서 마갈제국의 고요한
보리도량(菩提道場)에서 비로소 정각(正覺)을 이루시고,
보광명전(普光明殿)의 연화장사자좌(蓮華藏師子座)에 앉아계셨다’
라는 묘사에서 보광명전, 약(略)하여 보광전이라 불리게 되었다.
어떤 사찰의 보광명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시기도 하는데,
이는 《화엄경》의 교주가 비로자나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진암에서는 <普光殿>이 아닌
<寶光殿>이란 편액이 붙어 있고
법당에는 여래가 아닌 4분의 입상 보살만을 모시고 있다.
보살이라고 한 것은 4분 모두 보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여래는 보관을 쓰지 않는다.
혹자는 뒤편 보살을 약사유리광여래라 보는데 이는 오류다.
여래는 보관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4분의 보살 명이 붙여져 있는데 보살명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음보살>
좌측의 보살은 관음보살이라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이는 정병(감로병)을 들고 있어서 분명하다.
대세지보살(법당 표기는 보현보살으로 되어 있다.)
그 반대편의 보현보살이라고 붙인 것은 오류로 보인다.
보관을 보면 보병이 부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세지보살로 보아야 한다.
<연꽃과 경책(패엽경)을 든 문수보살>
중앙의 보살은 문수보살로 붙여져 있는데
그 뒤편의 보살은 지물(持物)이 경책(패엽경)과 연꽃을 들고 있어
뒤편의 이 보살을 문수보살로 보아야 마땅하다.
<보현보살(법당 표기는 문수보살)>
따라서 앞의 문수보살이라 붙인 보살은 당연히 보현보살이 된다.
이렇게 보면 아미타불의 협시인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좌우에 배치하고,
석가모니(또는 비로자나불)의 협시로
문수와 보현보살을 배치한 것이 된다.
<위태천을 중앙에 모신 목각신중도>
@좌측에는 지장보살좌상과 목조신중탱을 조성해 놓았다.
@참고로 다른 사찰의 <보광전(普光殿)>의 주불을 간략히 소개한다.
이로 보아 주불은 석가모니불 아니면 비로자나불이다.
그러므로 협시보살로 상기 4분의 보살을 모신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실상사 普光殿: 아미타 삼존불
남해 보리암 普光殿: 관음보살 삼존상(남순동자와 용왕)
익산 숭림사 보광전: 석가모니 삼존불
상주 남장사 보광전: 비로자나불
김천 청암사 보광전: 관음보살
경주 분황사 보광전: 약사여래
봉화 축서사 보광전: 비로자나불
완주 위봉사 보광명전: 석가모니 삼존불
아래 전각은 정해루가 있는 요사채건물이고 중앙의 돌계단이 보광전 가는 길이다
보광전을 참배하고 전각 아래 마련된 테이블에 쉬고 있는데
주지 스님이 공양시간이니
함께 하자고 말씀하시어 환대를 받었다.
모처럼 사찰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공양주의 음식 솜씨도 일품이었다.
이 글을 빌어 주지 스님의 친절한 환대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노스님의 쾌차를 기원드리며
다음 일정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경내를 벗어났다.
< 화장암(華藏庵)>
양진암에서 다시 여여교로 돌아 내려와 화장암으로 향한다.
포장된 도로이지만 제법 가파르다.
다행히도 숲이 그늘을 만들어 햇빛을 가려준다.
대성암과 마찬가지로 화장암도 불사 중이라 법당을 들여다볼 수도 없다.
대부분 건물이 노후되고 비바람을 견디지 못해
허물어진 곳도 있다.
화장암은 본래 중암(中庵)이라 하였는데
영조 34년(1758) 白蓮화상이 개창하여 화장암으로 개칭했다고 한다.
영조 44년(1768)에 影波聖奎(영파성규) 화상이
影閣(영각)을 건립한 이후 정조 23년(1799)에 良學대사,
현종 12년(1846) 守恩上人이,
1900년에 豊谷永安(풍곡영안) 화상이 각각 영각을 중수했다.
현존 건물은 법당과 요사채, 정문 등이 있으며
법당에는 여러분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전각은 공사 중이라 모두 출입조차 금지하고 있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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