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운달산 김용사(金龍寺) 제1부

2023. 6. 28. 20:40국내 명산과 사찰

 

우리나라 목조 탱화는 다양하지만,

보물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여래설법상은  6곳 뿐이다.

그중 3곳이 문경 지역에 있어 몇 년 전에 탐방한 적이 있다.

남장사와 남장사 관음원 그리고 대승사인데

대승사는 사불산을 끼고 김용사와 인접하고 있지만

그때는 일정이 맞지 않아서 김용사는 들리지 못했다.

<문경 8경> 중 하나인 운달계곡은

김용사 일원의 계곡을 일컫는데

맑은 물과 아름드리 수목이 어우러져

숲길 산책로 이름난 곳이라 하기에

이번 사찰 탐방 겸 둘러보기로 했다.

(이번 포스팅은 1,2부로 나누어 올린다) 

 

천년고찰 김용사(金龍寺)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운달산(雲達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운달이 창건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이다.

『운달산김룡사사적』에 따르면, 588년(진평왕 10)

조사 운달(雲達)이 창건하여 운봉사(雲峰寺)라 하였으며,

그 뒤 조선 중기까지의 사적은 전해 내려오지 않고 있다.

1624년(인조 2) 혜총이 중창하였으나,

1642년(인조 20)에 소실되어 1649년(인조 27) 의윤(義允),

무진(無盡), 태휴(太休) 등이 중수하였다.

사찰명인 金龍寺는 김용사와 김룡사로 혼용되어 불린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절 이름을 김룡사라 한 것은

옛날 문희(聞喜 : 지금의 聞慶)부사로

김씨 성을 가진 자가 있었는데,

관(官)에 죄를 짓고 도망쳐 이 산에 숨었다가

우연히 신녀(神女)를 만나 가정을 이루어

용(龍)이란 아들을 낳았다. 가운(家運)이 또한 부유해져

사람들이 김 씨 어른(金長者)이라 일컬었다.

하루는 큰 비바람이 분 뒤 그 처자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나,

간 곳을 알 수 없었으며, 지금 그 옛터와 섬돌이

절의 서쪽에 남아있어 절 이름을

김룡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금선대(金仙臺)의 金 자와

용소폭포의 龍 자를 따서 금룡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부속 암자로는 대성암(大成庵), 화장암(華藏庵),

양진암(養眞庵), 금선대(金仙臺) 가 있다.

 

일주문

일주문에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일주문에는 문 윗부분에 ‘紅霞門(홍하문)’,

아랫부분에 ‘雲達山 金龍寺(운달산 김룡사)’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은 근대 서예가

김규진(金奎鎭:1683~1933)의 작품이다.

@홍하문(紅霞門)의 홍하(紅霞)는

성철스님이 즐겨하던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산천 성철스님의 생가인 겁외사에도

벽해루라는 전각이 있는데 이 또한

홍하천벽해(紅霞穿碧海 )’라는 문구로부터 지은 것이라 한다.

이 구의 의미는

<아침의 붉은 해가 푸른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다>리는 뜻이다.

(본방: 산청 겁외사와 성철스님의 생가 참조)

일주문 뒤편

일주문의 주련:

入此門來莫存知解 無解空器大道成滿)

이 문에 들어서면 모든 알음알이를 내려놓아라.

알음알이 없는 빈 그릇이 대도를 성취한다고 하는 의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무명(無名)의 비석 1기와

퇴경당권상노대종사석비가 있다

 

 

 

보장문(寶藏門)

솟을대문이 솟아 있는 이 건물은 대문에

금강역사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일반사찰의 금강문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보장(寶藏)이란 누적된 된 진보(珍寶)의 고장(庫藏)이란 뜻이며.

이는 묘법(妙法)이 중생의 고액(苦厄)을 구제함으로

이같이 비유한 것이다.

경론으로는 원위(元魏) 서역삼장(西域三藏) 길가야(吉迦夜)·

담요(曇曜) 공역(共譯)인 《잡보장경(雜寶藏經)》이 있고

사형 집행을 앞둔 감옥에서 승조(僧肇)가 지었다는

보장론(寶藏論)이 있다.

@보장문의 편액은 독립운동가인

東農(동농) 金嘉鎭(김가진)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해우소

300년의 역사를 지닌 목조 건물이다.

소리풍경을 만들어 낸다는 남원 실상사의 해우소와는 달리

고태(古態)를 풍기는 해우소다.

@사찰 안내서에 따르면 절 입구에

경흥강원(慶興講院) 건물이 있다고 했는데

이 건물은 옛날에는 국내 최대 강원 건물의 하나로

동시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70평짜리

온돌방이 있었다고 하는데

불행히도 1997. 12. 31일 소실(燒失) 되었다.

 

천왕문

보장문을 지나면 가파른 돌계단 위에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 안에는 석조사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사천왕을 <하느님>으로 표기하고 있다.

김용사 스님의 말에 따르면 본래

목조 사천왕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도난당하고 새로 석조로 조성했다고 한다.

석조물인데도 사천왕상과 생령좌 등이 생동감 있게 조성되어 있다.

서방광목천왕
서방광목천왕의 생령좌
남방증장천왕
남방증장천왕의 생령좌
북방다문천왕과 동방지국천왕
북방다문천왕
북방다문천왕의 생령좌
동방지국천왕
동방지국천왕의 생령좌

 

 

범종각

범종각에는 대개 불전사물(佛殿四物)을 봉안하는 데

범종만 조성되어 있다. 현재 이 범종은 모사품이다.

원본인 범종은 사인 비구가 1620년 조성한 것으로

보물 제11-2호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인 비구의 이 작품은 원추형의 용통(甬筒)과

용의 형상을 한 용뉴(龍鈕)가 특색이 있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참고로 사인비구가 제작한 동종 8구는 다음과 같다.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보물 제11-1호),

문경 김룡사 동종(보물 제11-2호),

홍천 수타사 동종(보물 제11-3호),

안성 청룡사 동종(보물 제11-4호),

서울 화계사 동종(보물 제11-5호),

양산 통도사 동종(보물 제11-6호),

의왕 청계사 동종(보물 제11-7호),

강화 동종(보물 제11-8호) 등 8구이다.

 

보제루 

천왕문을 벗어나 경내로 진입하는 입구에

거대한 누각이 조성되어 있다. 보제루(普濟樓)다.

절에 따라 만세루(萬歲樓)·구광루(九光樓)라고도 하나,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보제루(普濟樓)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사찰 중심 불전의 정면에 있으므로

대체로 모든 법요식(法要式)은 이곳에서 행하고 있다.

김용사의 보제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의 2층 루(樓)로서

<보제루>와 <운달산 김용사>라는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진입로는 일반사찰의 보제루와는 달리

樓下進入(누하진입)이 아닌 측면에서 오르게 되어 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으며 좌우에 해운암과 설선당이 있다.

 

보제루 앞에는 2기의 노주석이 있다.

1기는 조선 후기 강희 51년(1712년),

다른 1기는 분실된 것을 보완한 것으로 보이며

1940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노주석은 용도는 사찰의 야간 법회 때 불을 밝히거나

숯불을 피워 주변을 따뜻하게 하는 데 쓰였다.

노주석은 주로 문경 일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조성 시기는 고려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없다.

김용사의 노주석은 물론 바로 옆

문경 사불산 대승사의 노주석과 같이

현재 발견된 노주석은 모두

조선 중기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져 있다.

해운암

설선당

 

대웅전 좌편 전각은 해운암이고 우측 전각은 설선당이다.

대웅전 앞 계단 좌우에 괘불대가 있다.

 

대웅전

대웅전은 17세기에 지은 것으로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를 잇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대웅전 건축 양식상 특이한 것은

건물의 기단 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기둥을 세워 높이가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기둥 모두 대웅전의 중심 쪽으로 약간씩 기울어져

건물 전체가 안정감을 주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법당에는 인조 27년 설잠(雪岑) 대사가 조성한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약사여래와

아미타불을 협시로 봉안하고 있고

삼존상 뒤에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조성되어 있다.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성균(省均) 대사가 조성한 것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24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25호인

현왕도(現王圖)를 비롯하여 삼장도와 신중탱이 조성되어 있다.

고종 26년에 사증 대사가 조성한 거대한 괘불탱화는

불교 행사 때 전시되는데 이는 보물 제16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방 김용사 괘불도 참조)

 

@삼장탱화

대웅전에는 1644년(인조 22) 조성된

천장(天藏)·지장(地藏)·지지(持地) 보살상을 묘사한

삼장탱화(三藏幀畫)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크기는 196x291.7cm로 비단이 아닌 지면에 조성되었다.

삼장탱화는 우리나라 불화에서만 볼 수 있는 탱화다.

@영산회상도

문경 김룡사 영산회상도(聞慶 金龍寺 靈山會上圖)는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룡사 대웅전

삼존불 좌상의 후불벽에 걸려 있는 영산회상도이다.

2018년 12월 20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524호로 지정되었다.

 

1803년 김룡사에서는 대웅전, 극락전, 영산전 등

각 전각의 후불도가 세월이 흘러 색이 어두워지고 낡아

이를 새로 조성하는 불사가 일어났다.

현재 전하는 불화는 대웅전의 영산회상도와

현왕도(현 직지성보박물관 소장)뿐이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12월 2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각각 지정되었다.

이 불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진 작품으로,

크기는 높이 5.2m, 너비 4.3m이다.

화면은 주존을 중심으로 보살, 제자,

호법신 등이 외호(外護) 하는

후불도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즉 중앙에는 주존인 석가모니불이 크게 그려져 있고

주존을 중심으로 앞에는 4위의 보살이 일렬로 서있으며,

좌우로는 8위의 보살이 서 있다.

화면 상단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비롯해 10대 제자,

그리고 범천과 제석천을 포함한 사자관을 쓴 건달과,

사자관을 쓴 야차와 4명의 금강이 있으며,

하단에는 비파, 검, 용과 여의주,

탑 등을 든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불이 설법하는 내용을 묘사한 후불탱화로

제작 당시부터 지금까지 김룡사 대웅전

삼존불 좌상의 후불탱으로 걸려 있다.

화기(畵記) 부분이 훼손되어 이를 통한 제작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김룡사사료수집(金龍寺史料蒐集)>에 수록된 기록에 의하면,

1648년에 제작한 불화가 낡아

1803년 새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작에는 당시 경북 일원에서 화명을 떨친

사불산 화승 홍안(弘眼), 신겸(愼謙)을 중심으로

유심(有心), 수연(守衍) 등 총 18일인 참여하였다.

1803년 조성된 김룡사 불화 가운데

규모 면이나 화격에 있어 이들의 역량이 총동원된 작품이다.

 

영산회상도에 나타난 사불산화파의 특징을 살펴보면,

측면 향을 한 보살의 얼굴형은 타원형에 눈 부분은 들어가고

이마와 볼을 튀어나오게 표현하였고,

채색은 홍색과 녹색을 선명하게 대비되도록

진채를 사용하였으며, 보살과 사천왕 등의 장신구와

지물은 돋을 기법에 금을 칠하여 화려함을 더하였다.

특히 존상 구성에서 지장보살이 권속으로 표현된 점이 가장 주목된다.

지장보살은 아미타불회도에서 8대 보살로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이지만 19세기 전반 사불산 화승들은

지장보살을 주요 권속으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김룡사 대웅전의 영산회상도는

조선 후기 후불도 양식을 고수하는 한편

화면구성, 존상 구성 및 상호표현, 채색법 등에서

사불산 화승 파의 특징적인 도상과 화풍이 잘 반영된 불화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대웅전의 이 영산회상도는 사불산화파의 역작으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19세기 경상도 불화 제작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작품이므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자료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현왕도(現王圖)

현왕도는 천도 의식을 위한 의식용 불화로,

상·하단을 잇대어 하나의 화폭을 이룬 바탕화면에 채색한 작품이며

김룡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다가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보관되어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25호 지정되어 있다.

화면의 중앙 상단에 현왕을 중심으로

전륜성왕과 대륜성왕,

주변으로는 관련 권속(眷屬)들이 배치되어 있다.

기존 현왕도와는 다르게 현왕의 지물로 검(劍)을 표현하여

새로운 도상과 구성을 도입한 19세기 사불산화파만의 특징적인

불화 형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또한 화기(畵記)를 통해 1803년에 수화승 홍안, 신겸을 비롯한

총 9명이 관여하여 제작한 불화임을 알 수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왕(現王)이란 죽은 지 3일 만에 죽은 자를 심판하는 왕으로,

『석문의범(釋門儀範)』현왕청(現王請)에 의하면

현왕(現王)은 명부회주(冥府會主)인 보현왕여래(普現王如來)로서,

대범천왕(大梵天王)⋅제석천왕(帝釋天王)⋅대륜성왕(大輪聖王)⋅

전륜성왕(轉輪聖王)⋅사천왕(四天王)⋅선악동자(善惡童子)⋅

판관(判官)⋅녹사(錄事)⋅감재직부사자(監齋直符使者) 등을

권속으로 두고 있다고 한다.

또한『권공제반문(勸功諸般文)』등 의식집에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위해 사후 3일 만에 지내는

천도재(薦度齋)인 현왕제(現王齋)의 주존으로 등장한다.

 

현왕도(現王圖)의 도상은 보통 일월관(日月冠)

또는 금강경(金剛經) 등 경책(經冊)이 얹힌 관을 쓴 현왕(現王)이

판관, 사자, 동자 등에 둘러싸여

심판하는 모습을 간략하게 그렸는데,

언뜻 보면 시왕도와 유사하지만 시왕도와

달리 지옥 장면이 묘사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김용사 영산회괘불 보물 제1640호

(본방 문경 김용사 괘불 참조)

 

신중탱

대웅전 법당의 천장과 외벽에는 다양한 그림이  조성되어 있다.

외벽의 용그림

향하당

 

극락전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

탱화로 아미타삼존도가 봉안되어 있고,

그 앞에 유리관 속에 50cm 정도 크기의

아미타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석조불상인데 채색을 입혔다.

 

 

극낙전의 신중탱

금륜전(金輪殿)

일반사찰의 삼성각과 같다. 탱화로 치성광여래를 중앙에,

산신과 독성(나반존자)을 좌우에 봉안했다.

치성광여래 탱화 앞에는 법륜을 든 치성광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탱화는 모두 19세기에 조성된 것들이다.

 

응진전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좌상과 아미타불좌상에서 출토된

발원문에는 1708년에 응진전이 건립되었고,

1709년에는 조각승 수연, 숭식, 효현, 지웅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응진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다시 지은 건물로서,

법당에는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협시로 삼존상 좌우에 모두 24구의 존상이 배치되어 있다.

총 24구 중 20구가 석조 십육나한좌상일괄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2호로 지정되어 있다.

탱화로는 영산회상도와 나한도가 모셔져 있다.

(본방 김용사 응진전 석조십육나한좌상참조)

 

 

 

홀수의 나한상은 좌측에, 짝수의 나한상은 우측에 배열되어 있다.

 

 

 

 

응진전의 신중탱

 

~  제2부로  계속 ~